평일강론

연중 13주간 월요일 7/2(예수님께서는 걱정[?]있는 이를 부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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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07-02 ㅣ No.3579

연중 13주간 월요일 7/2(예수님께서는 걱정[?]있는 이를 부르신다.)

수색 예수 성심성당 박재성 시몬 부제 강론

독서 : 아모 2,6-10.13-16

복음 : 마태 8,18-22

 

찬미 예수님, 오늘 하루 주님의 사랑안에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교회적인 용어로 성소, 소명, 부르심와 같은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이 단어들은 모두 하느님의 초대를 의미합니다. 누구는 사제가 되고, 누구는 결혼을 하는 것도 부르심이고, 일상생활 안에서 하느님을 의식하며 하는 선택도 부르심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라(마태 8,22)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태오 복음에서 3번 나옵니다. 첫 번째는 오늘 복음에서, 두 번째는 세리인 마태오를 부를 때, 세 번째는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왔을 때입니다. 이렇게 세 번 나를 따라라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장사를 걱정하던 제자와 세리인 마태오는 예수님과 함께 한 것으로 보이고, 오늘 나오는 율법학자와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따라간 이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걱정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은 아버지의 장례가 걱정이었고, 세리 마태오는 세리라는 직업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마음 속 걱정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타인과 같이 사는 걱정을 가진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합니다. 반면에 예수님과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자신만 보면서 과한 자신감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율법학자는 어디로 가시든지 따라 나서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이 사람은 정작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고 따라나서겠다고 큰소리만 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거리를 두십니다. 또 부자 청년은 스스로 자신은 율법을 모두 지키고 있다며 우쭐하며 말합니다. 그러나 돈을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울며 떠나갑니다. 옆 사람은 보지도 못하면서 자신은 잘하고 있다고, 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은 예수님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많은 걱정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걱정은 어떤 걱정입니까. 무조건 걱정이 없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 걱정이 만일 타인에 대한 걱정이라면, 그 걱정을 통해서도 우리는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옆에 있던 사람은 그 걱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부르십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마태 8,2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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