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더 이상 낭만은 없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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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현엘리야 [star63] 쪽지 캡슐

2001-08-02 ㅣ No.4866

아,,,우선 감사,,감사,,,이런 호응이 있으리라곤 생각도,,,암튼 감사,,,각설하고

 

열차의 식당칸은 과연 그대로였습니다. 근데,,아뿔싸,,벌써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거의 다 20대의 젊은 사람들,,,,쌍쌍이들,,,,라면을 시켜놓고, 맥주를 마시고, 그러고 있었습니다.아,,요것들이 어른(?)이 와도 자리를 안 비켜?,,,,안 비키면 할 수 없지. 서서 마시는 수밖에,,,다시 여기서 캔맥주를 까기 시작,,근데 맥주를 먹어도 눈은 말똥말똥,,3개를 아무 말도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마시니까,,너무 재미도 없고 해서 아하,,방에서 마셔야 겠다하고 캔을 하나 사고 새우깡을 하나 골라서 드디어 빠삐용의 독방으로 향했습니다. 조그만 창이 하나 있는데 양쪽으로 벌리는 커튼을 열어놓고,,,반쯤 누운 자세로다가 맥주를 음미했습니다. 어느 역엔가 정차를 했는데 노란 가로등이 정말로 낭만적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내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노란 가로등이 켜진 길을 걸어서 뒷모습만 보이는 사람이 참으로 좋아보였습니다. 어느새 맥주도 바닥이 나고 슬슬 졸리는 것 같아서 자리에 누웠습니다. 에어컨을 적당한 풍향과 풍량으로 조절하고 아까같이 다시 옷을 벗어서 걸어놓고 신발은 가지런히 발밑의 조그만 공간에 자리했습니다. 아아,,설레임,,,아직도 기차에서 잠을 잔다는 생각에 아주 기분이 좋았지요,,아마도 이 정도 술을 마시고, 몸도 피곤하니 숙면을 할 수 있겠지,,,내일 회의에,,아니 오늘 아침 회의에 기분 좋게 출근할 수 있겠거니 하면서 말이지요,,,,,,,

 

근데,,,,잠이 잘 오지를 않더군요. 돌아 누워도 보고, 이불을 들었다가 놓았다가,,숫자를 세다가 말다가,,,베개를 했다가 말았다가,,돌아 누웠다가 반듯이 누웠다가,,,,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자는 건 포기했습니다. 이런 좋은 시간에 자는 것도 사실 그렇다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반쯤 누워서 창박을 보고 있으니까,,,기차에 얽힌 단상들이 생각났습니다.

 

대학생때 한번은 서클 친구들과 춘천을 갔습니다. 청량리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출발을 했습니다. 가면서 있는 자리를 놔두고 몇몇이는 객차가 이어지는 중간부분으로 나가서 기타치고 노래하고 고함 지르고,,그러다가 지나가는 여학생,,아니,,화장실 가는 서클 여학생들을 상대로 삥땅을 시작,,,,,소주 한병과 안주하나를 거의 강권해서 사게 하고는 물컵크기의 종이컵으로 술 산 주모한테 우선 한잔씩 돌리고,,술이 떨어지면 다시 삥땅,,,,떨어지면 다시 삥땅,,,,아마 그때 상당량의 음주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엘리자벳도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 돈은 하나도 안 들이고 말이지요,,,,

 

어릴 때는 부산에 있는 외가집에 누나와 함께 방학을 지내러 열차를 가끔 탔습니다. 누나하고 가면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생각이 안 나지만 외할머니가 저희를 다시 서울로 보내실 때는 뭐 그리 가지고 가라는 것이 많았는지,,,특히나 외할머니의 삼각형 주먹밥은 정말이지 맛이 있었습니다. 나무 도시락에 보기좋게 삼각형 주먹밥을 넣고 깨를 조금 뿌려서 냄새도 구수하고 맛도 그만이었지요,,,지나가는 홍익회 아저씨한테 사 먹는 사이다,,그리고 할머니가 따로 챙겨주신 계란을 한 5개씩 이상은 먹곤 한 것 같습니다. 주머니엔 용돈까지 있으니,,그야말로 일석삼조,,,부산으로 가는 방학 여행은 참으로 즐거운 것이었습니다. 서울에 오면 상당량의 용돈을 물론 어머니한테 압수를 당했지만,,,,,우리 누나하고 저는 그래서 항상 주머니를 따로 찼습니다. 무시무시한 세관원 엄마를 피해서 미리 꼬불치는 것이지요,,,,,

 

이래 저래 열차가 대구를 지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회사에서 농땡이를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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