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달봉 신부의 짧은 오늘의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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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현 [dalbong6] 쪽지 캡슐

2003-09-16 ㅣ No.2292

어제는 그동안 없었던 프라도 사제 양성 모임이 있었습니다. 오랜 만에 좋은 벗들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역시 사제는 사제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많은 힘을 얻고 올 수 있었습니다. 더 좋은 목자, 더 착한 목자로서의 삶을 살자고 함께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요즘 난곡동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 거의 저의 글로 도백(?)가 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이용하고 고민은 나누고 신앙을 성숙시키는 자리가 되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루가 복음 7,11-17절까지의 말씀으로 나인 마을의 과부의 외아들을 살려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전해집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나인이라는 동네로 가시는데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도 함께 따라갔다. 예수께서 성문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마침 죽은 사람을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과 마주치시게 되었다. 죽은 사람은 어떤 과부의 외아들이었고 동네 사람들이 큰 떼를 지어 과부와 함께 상여를 따라오고 있었다.

주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울지마라." 하고 위로하시며 앞으로 다가서서 상여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 예수께서 "젊은이여, 일어나라."하고 명령하셨다.

그랬더니 죽었던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 위대한 예언자가 나타나셨다."고 말하기도 하였고 또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와 주셨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예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근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떠나면서 여러분들에게 약속했던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번 성지순례를 통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많이 닮아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가는 곳 마다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려고 애를 썼고 그 마음을 닮게 해 달라고 많은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너낀 그리고 닮으려고 하는 마음은 바로 측은한 마음 곧 예수님의 측은지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측은지심이란 희랍어 원어로 애 간장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함께 느낀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과부의 슬픈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측은한 마음이 드시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측은지심이야말로 기적을 행하시게 된 오직 한가지 동기이며 원인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늘 그런 마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많은 사람들을 대하셨습니다. 우리가 꼬투리는 잡으려고 하는 마음으로, 우월한 마음으로, 잘 난 마음으로, 생색내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 예수님은 한없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보다 못 한 사람들 대할 때 그저 안되었다하는 단순하고 지나가는 마음으로 대할 때 그 분은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한 마음으로 그들을 보셨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예수님의 그 측은지심을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더더욱 그 마음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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