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21/08/18

인쇄

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07-30 ㅣ No.4750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21/08/18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만큼 일하고, 어느 정도 벌어야 할까? 사회의 소득구조와 분배구조는 어떠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만 사람들이 소외되는 사람 하나 없이 다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포도밭 일꾼의 비유를 들어 여러 사람을 향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십니다. 포도밭 임자가 포도밭 일을 시키기 위해 이른 아침에 일꾼들을 데려오고, 또 점심나절에도 데려오고, 일이 끝나기 전까지 일꾼들을 데려옵니다. 그런데 임금 산정을 할 때,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나눠줍니다. 그러자 일찍 와서 일한 사람이 불평합니다.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마태 20,11-12) 그러자 포도밭 주인이 응답합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이처럼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13-16)

 

인류를 향한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은 공부를 잘하고 일을 잘하며, 돈을 많이 벌어오는 사람에게는 더 주고, 공부를 잘못하고, 일을 잘못하며,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덜 주는 사회의 성과급과는 다릅니다. 아버지 하느님께는 가정의 부모처럼 돈을 벌어와 자녀들에게 먹여 주는 것과 같은 상급을 주실 듯합니다. 그래야만 하느님 아버지께서 세상에 똑같이 만들어 내셨지만, 사회의 제도와 본인의 삶 여하에 따라 다른 처지에 놓이게 된 사람들 모두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장애우와 환우, 한정치산자, 이민자, 다문화 가정 등등. 같은 시기의 사회에서 같은 시간 동안 일하고 같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회의 이익 추구와 분배구조에 따라 차별되는 구조가 아닌, 각자가 처한 상황과 처지가 어떠하든 모든 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방식대로 상급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인간 사랑 방식이 현세의 사회 경제체제 논리와는 다르더라도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부모의 심정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자비로운 하느님 은총의 축복이라는 것도 겸허하고 감사로이 받아들이며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171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