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3주일(나해) 마르 7,31-37; ’2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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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08-14 ㅣ No.4768

연중 제23주일(나해) 마르 7,31-37; ’21/09/05

 

 

  

 

 

  

안녕하십니까, 사랑하는 등촌3동 성당 신자 여러분,

여러분도 2021년도 하계 서울대교구 사제 인사발령장을 보아서 잘 아시겠지만, 저는 지난 820일자 서울대교구 사제 인사발령으로 새로 이 등촌3동 성당에 주임사제로 부임한 심흥보 베드로 신부입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유아, 어린이, 청소년, 청년 사목은 물론 본당 사목 전체를 관할할 부주임사제 유동철 리노 신부님이십니다.

얼마 전에 동생 수녀와 휴가를 하면서, “나 어느 성당으로 가게 될까?” 하는 말을 던졌더니, 그 말을 들은 동생 수녀가 오빠에게 제일 잘 맞는 성당, 주님께서 보내고 싶으신 성당으로 가실 거야.”라는 말로 응해주었습니다.

제가 힘 닫는 만큼, 이곳을 제게 가장 잘 맞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자리로 삼아 살겠습니다. 비록 제 힘으로는 다 이루지 못할지라도,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주님 사랑 안으로 이끄시는 주님 성령의 힘으로 채워주시고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여러분도 이 본당 이 자리가 제게 가장 잘 맞는 곳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매일매일 이 성전 이 제대에서, 아버지 하느님께 제가 바칠 수 있는 열과 성을 다하여 주님의 성찬례를 봉헌하면서,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면서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축복을 내리시어 성가정을 이루게 해주시고, 주님 사랑 안에서 화목하고 평안하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마르 7,34), 열려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살면서 누가 뭐라고 하긴 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들리지도 않고, 물어볼 수도 없고, 자신이 무슨 표현을 하려고 해도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되지도 않고 해서, 얼마나 답답하고 힘겨운 생애를 살았을까 하는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평생 말 한마디라도 제대로 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는지 모릅니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해서 사고를 몇 번이나 당하고 또 그렇게 못 듣고 말을 제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괄시를 당하고 살았을까 쉽게 연상이 됩니다. 그가 자기 귀로 사람의 말을 듣고 싶어서 얼마나 기도를 절절히 했으며, 때로는 자신을 그렇게 낳아준 부모를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저주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어쩌면 그의 그 간절한 기도가 예수님을 그에게 오시도록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귀를 열어 주실 때, 얼마나 신이 났을까 싶습니다. 그동안 눈치만 보면서 막연히 그런 뜻이겠거니 추측이나 하면서 살아왔던 그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직접 들었을 때, 누군가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자신에게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 때, 얼마나 큰 기쁨을 느꼈을까! 사랑하는 어머니가 자신을 부르는 다정하고 사랑 가득한 목소리가 어떤 것인지 직접 알아차렸을 때, 그에게 펼쳐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과 놀라움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웠을까 싶습니다. 갑자기 들려오는 새 소리, 물소리, 이러저러한 소리들이 그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신기하게도 여기게 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터질 듯 솟구쳐오는 울먹임, ‘, 이게 사는 거지!’ ‘이렇게 하는 것이 사는 거야!’ 하는 그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우리는 지금 듣고 말하는 데 별 어려움 없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듣고 살고 있습니까? 어떤 소리를, 어떤 소식을 듣고 있고 또 어떤 소식을 듣고 싶어 하는지?

가정에서 때로는 잔소리처럼 들리기까지 하는 부모님과 배우자의 정겨운 목소리, 자녀들의 귀엽디귀엽기까지 한 때로는 투정 어린 목소리 등등,

직장에서 상사의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업무지시 소리, 동료들의 힘찬 업무수행 소리, 불평 어린 뒷자리 소리 등등,

출퇴근하면서, 동네에서, 사회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목소리, 우려의 목소리, 탄식과 경고의 소리 등등.

 

누군가는 그런 소리도 했습니다. “세상 다른 모든 사람이 무슨 못 들을 것을 그리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저이는 듣지도 못할까?!” “세상 다른 모든 사람이 무슨 못 할 말을 그리 많이 퍼부었기 때문에, 저이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까?!”

이쯤 되면 우리 스스로 식별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간직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소리와 소식들은 무엇인지? 우리를 멍들게 하고 죄짓게 하는 소리와 소식들이 무엇인지?

 

오늘 예수님의 말씀과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이를 치유하시는 기적을 본 사람들이 놀라서 수군거립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37)

이 시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색해 보고 실현해 봅시다.

우리 주위에 누군가가 나에게서 기쁜 소식과 좋은 말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이가 나에게서 어떤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지? 내가 그에게 가서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지? 내가 무슨 말을 하여 그를 기쁘게 하고 구원해 줄 수 있을지?

 

에파타!”(마르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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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 꽃꽂이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id=184197&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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