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주님 세례 축일(다해) 루카 3,15-16.21-22; ’2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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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1-04 ㅣ No.4895

주님 세례 축일(다해) 루카 3,15-16.21-22; ’22/01/09

 

 

 

 

 

 

 

주님 세례 축일을 준비하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나신 아들 예수님을 맨 처음에 누구에게 보여 주고 싶으셨을까?’

 

우리는 탄생의 구유와 동방박사의 출현 그리고 세례 사건을 예수님께서 공적으로 세상에 드러나신 공현의 세 사건으로 여깁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나셔서 맨 처음 목동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당시 목동들은, 오늘날의 막장이란 표현처럼 세상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마지막에 잡는 직업처럼 힘든 자리였습니다. 남들은 다 자려고 들어간 사이에도, 자신들을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밤새 양들을 지켜야 하는 작업환경에 처해 있어야 했다고 합니다. 아가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사람 중에 이스라엘의 맨 끝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굳이 안 찾아가도 자기들끼리 자신들이 처한 조건과 형편에서 잘 사는 부자와 권력자들에게는 찾아가지 않으시고, 꼭 찾아가야만 그나마 위로와 힘이 되는 이들에게 찾아가신 것입니다. 어쩌면 뭇 사람들이 말하듯이, “예수님은 약한 사람이나 찾아가는 것이야!”라는 말이 맞기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약한 사람들입니까?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한다면 주님께서 기꺼이 자신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나름 뭔가 갖고 있고, 일정한 자리에서 내세울 것이 있으며, 하다못해 자존심으로라도 견디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 힘겨울 것이며, 예수님도 우리를 찾아오실 수 없으실지 모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여기고, 암암리에 마지막 끈처럼 잡고 있는 그 알량한 자존심이 결과적으로 우리를 주님께 다가서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다음에 아기 예수님께서는 동방박사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주 하느님을 믿고 있다고 여기고 또 스스로도 세상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이스라엘인들은 정작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여 주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어야 할 자신들의 사명을 망각한 채, 자신들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심지어는 다른 민족들을 노예로 삼아 자신들이 경제적으로 좀 더 잘 살고, 사회적으로 좀 더 편안하고, 생활 환경적으로 좀 더 화려한 생애를 누리고자 애쓰고 있었기 때문에,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에는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고, 어쩌면 안중에도 없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정작 동방에서 박사들이 이스라엘의 당대 통치지도자들을 찾아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라고 물었을 때, 정작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또 누구보다도 먼저 경배하려 갔어야 할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구세주 예수 아기의 탄생을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통치권을 잃을까 봐 두려워 겉으로는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8) 라고 호의적으로 말하면서도, 뒤로는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16)

 

그런데 나름 자신들이 땅에서 이렇다 할 위치에 있기도 했겠지만, 알 만큼 알고 누릴 만큼 누리고 있을 법도 한 왕이라고까지 불리던 동방박사들은 하늘 별세계의 전도에 새로운 별이 출현하였음을 발견하였고, 심상치 않은 기운임마저 깨닫고, 심지어는 그 별이 세상을 구원하실 왕의 탄생을 가리킬 정도의 커다란 의미라는 사실을 발견한 그들은 그 별의 주인공을 찾아 경배하러 나섭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가 그 옛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그때, 세상 그 많은 사건과 상황을 접하며 무엇을 찾아 나섰습니까? 또는 그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섰을 때, 무엇이 계기가 되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딜 때의 기대는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지금에서와 되돌아볼 때, 그때의 기대와 결과가 사뭇 만족스럽습니까?

 

, 그럼 세 번째 공현으로 간주하는 오늘의 세례 축일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자기 몸 하나 편안히 뉘 울 곳조차 없어 말구유에서 가난하게 태어나심으로써, 목동들이 볼 때도 자신들보다 더 처절하게 가난하게 나신 아기의 모습을 통해 목동들에게 위로를 주시더니, 자라고 나서도 우리의 허를 찌르십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백성들에게 세례를 주셔도 모자람이 없으실 분이, 거꾸로 세례자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청하십니다.

 

이처럼 공생활을 시작하는 예수님의 행태는 높고 낮음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가치를 근본부터 뒤흔드십니다. 백성들이 마음속으로 요한이 혹시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세례를 받으러 몰려들 때도, 세례자 요한은 이미 제자들에게 같은 말로 예언을 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루카 3,16)

 

세례자 요한이 그렇게 높이 쳐주던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의 말대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베풀러 오신 것이 아니라, 거꾸로 받으러 오십니다. 마치 우리 같은 죄인들처럼. 그리고 마치 예수님의 그런 행동을 기다리기라도 하셨다는 듯이, 말없이 지켜보던 하늘에서 반응하십니다. 백성들 뒤에서 서서 기다리다가 자기 차례가 되자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 데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22)

 

그럼, 여기서 성찰해 봅시다. 우리가 높은 곳에 오르고 하나라도 더 벌어서 부자가 되고자 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사회적으로 권력을 장악해서 사는 데 필요한 물질을 다 구해서 편안하게 살고 풍요롭게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예 부유해지고 권력을 장악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가 봅니다. 만일 그런 곳에 관심을 가졌다면, 애초에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올 것이 아니라, 외고나 과학고나 족집게 과외를 받으러 갔을 텐데, 예수님께서는 허튼 곳에 와서 시간이 황금 같은 상황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첫발을 내디딜 방향과 줄을 잘못 서서 기회를 놓치는 듯합니다. 아니면, 애초에 잘 먹고 잘사는 데는 관심이 없으셨던가!

 

그럼 우리는 왜 세례를 받고 성당에 옵니까? 사회경제적으로 잘 살기 위해, 주님의 복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서, 남보다 더 빨리 더 좋은 기회를 잡는데, 도움을 받으려고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세례자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제물로 삼아 봉헌하고 죽어간 예수님을 믿는 성당이 아니라, 철학관이나 삼성당이나 만신이나 점쟁이에게 갔어야 하겠지요!

 

우리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신분 상승이나 자본축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도를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시간과 기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재질과 재물을 사용하여, 나의 구원과 주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형제자매들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스스로의 몸으로 채우며 봉헌하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내려 주신 세례의 은총으로 주님 말씀을 통해 드러난 주님 사랑의 뜻을 실현하여, 스스로 거룩해지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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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 축일 꽃꽂이

https://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id=185647&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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