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상담신앙상담 게시판은 비공개 게시판으로 닉네임을 사용실 수 있습니다. 답변 글 역시 닉네임으로 표기되며 댓글의 경우는 실명이 표기됩니다.

q Re:혼란스럽습니다..

인쇄

사랑과영혼 [61.106.106.*]

2006-03-20 ㅣ No.4022

 

   † 찬미예수

 

    가톨릭(보편성) 교회는 2006년전 예수라는 젊은이가 33세를 일기로 로마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써 세워진 '보편의 예수 동호회'입니다.

 

지고지순의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용서의 하늘, 화해의 바다를 가로지어 가셨으며 마지막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도 사도 요한과 베드로에게 당신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맡기고 '주님, 주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를 외치시고 숨을 거두십니다. 이 말씀은 당신을 따르려는 인간에게 가장 큰 은총과 배려의 말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그 직후 지옥으로 직행(보는이의 관점에 따라서)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쓰레기를 그곳으로 몰아넣기 위해서였지요. 삼일 뒤 예수께서는 어느 정원에서 흐느끼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부활하심으로 나타나십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정원사인줄로만 알기도 합니다. 보고 만지고 믿으려는 토마에게도 당신의 상처를 일일히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가톨릭은 결코 이성 차별을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 어머니께 올바로 효행을 실천하려는 어여쁜 자녀, 그리고 때때로 응석을 부려야 하는 땡깡공주인 '나'와 또한 때때로 꼴통형으로 머물려는 '나'인 아들에게도 '너살고 나살자'형의 공자형을 초월하는 '너살고 나죽자'형의 주님께서 그 희생과 사랑으로의 숭고한 삶을 권면하시는 그러한 종교(근본적 가르침)입니다.

 

또한 가톨릭은 최초의 인간적인 신앙선배로써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님을 모시는(십자가의 주님께서 바라시는 데로 모셔야 정도입니다) 동호회입니다.

 

이것은 현대의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정체성과도 연관이 있으며 그 아내들 또한 무색 무취의 물같은 사랑이라는 부부삶의 여정속에서 비로소 쌓인 한같은 것이 역전됨으로써 뒤늦게 철드는 남편에게 상처를 역전으로 전가시키고 있는 현상과도 연관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절대로 악을 빌어 선을 강조하지 말아주십시오. 이것은 구약이 아닌 신약을 믿어야 하는 가톨릭 신자로써 일부의 경거망동형 개신교적인 발상이 아닌 것입니다.

 

여하튼 이 또한 긍정적인 견지로써 아내들이 원시적으로 살아온 남편들로 인하여 그 상처가 쌓여 몸안의 결석등의 병고등을 침묵보다 더 귀한 부부대화등을 통하여 치유받는 현상이기도 하겠습니다만, 무엇이보다 이때에도 기도가 바탕이 되는, 즉 더욱 맑은 영혼으로서 우리가 보고자하는 완전한 기도인 미사(겟세마니 동산에서의 12제자가 잠든 가운데 홀로 주님의 기도를 완성하시는 예수님을...)를 부부가 함께 참례하려는 삶을 통하여 일상안의 신비(미스테리움)또한 거룩함(싸끄라멘뚬)으로 진화받고 있슴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성공회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김대중 토마스, 안중근 토마스등의 수호천사가 그러하듯 한 때에 이르자 가톨릭 신자였던 영국의 당시 헨리 8세는 왕비를 폐하고 후궁과 재혼을 하려다가 충신인 역시 가톨릭 신자인 현 토마스 성인의 충언을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헨리 8세는 토마스 성인을 죽이고 로마 교황청과 단절을 하면서까지 하느님이 맺어주신 한가정의 왕비를 폐한뒤, 후궁과 재혼을 한뒤에 성공회라는 사제들도 결혼할 수 있는 새로운 풍습의 개신교(성공회의 사제는 목사, 계속하여 침례교, 감리교등으로 분파되기도 함)를 옹립하게 되는데, 이로써 성 토마스는 오늘날의 정치의 수호자로 오시게 되었기에 김대중 전임 대통령의 나름대로의 햇빛정책, 안중근 토마스 국방위 총사령관등의 총탄 세발에 십자가를 긋고 침략자 이또오를 포살하는 정당방위적인 희생의 용단등을 수호하여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원시시대부터 사냥에 익숙하여 온 남성들의 몫이며 아내는 여전히 가정에서 그 사냥감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으며 교회 또한 어머니들이 차고도 넘치는 세상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무튼 인간의 권좌욕이 빚어내는 모순의 정치와 만왕의 왕이신 쌍날칼의 역시 완전한 창과 방패를 주시는 하느님 권세에 대하여 우리는 다시 기도부터 하게 될 것인데 관련된 겸손의 쌍날칼 역시 작금의 한국 야구의 겸손=선명한 스트라이크 죤의 순리와 함께 세번째 한일전에서의 평상심을 잃어야 했던 일부 선수들의 애환도 바라보며 우리는 또한번 은하철도 999게임을 닮은 야구사속에서도의 혼연일체가 되어야 했던 한국인으로써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에 대한 용서는 가능하여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나 자신)에 대한 용서는 어렵다'는 그것을 완전하신 사랑 자체이신 주님과 상담할 수 있는 은총으로 초대받음으로 직시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자매님이 보신 가톨릭내의 남존여비적인 관점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회한이라고 사료됩니다.

 

그러나 보십시오...2005년동안 이어져온 가톨릭의 전승의 한자리에서 이나라 한국의 수호자가 성모마리아이십니다. 이나라 광복절이기도 한 8월 15일이 왜 한국의 수호자이신 성모님의 승천 대축일인지 묵상하심은 어떨런지요? 답은 간단합니다. 십계명 첫자리에 잘 나타나 있듯이 또한 우리의 성의(聖依) 첫 단추에 잘 나타나있듯, 하느님은 미신들의 그것으로부터도 해방을 선포하시는 사랑의 신성이자 인성으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절두산 순교성지의 수많은 초대 순교자들을 만들어야 했던 대원군과 관련된 민비(명성황후)의 생가가 현 묵주기도의 성지(충북 매괴성지)에 있기도 합니다. 이 또한 필연이며 매괴성지를 일본인들이 신사 참배지로 묶으려 할 때 천둥,번개를 보내주심도 미스테리움의 신비이자 거룩함으로 이르는 싸그라멘뚬으로 봉헌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따라서 자매님의 의미있는 교회사적 불만도 좋은 탐구의식으로 진화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자살, 자위, 자아해석, 자기애착등은 유다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니 보다 신중히 검토하실줄 믿겠습니다. 마음을 맑게,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주시는 성사생활의 보고가 넘치는 보편성의 윤리를 배반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도 가장 사랑받아야 할 자매님이 그리 생각하신다면 몹시 가슴이 아프실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아속에 비친 사람들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무죄 방면해주마!'라는 정치권자들의 칼날에도 굴하지 않은 초대 순교자들의 모범을 바라보십시오. 그리 만들어 주심은 하느님의 몫이기에 인간적 자아로 사서 걱정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 또한 은총인것입니다. 원하신다면 하느님께서는 '내가 이미 부활하였노라! 안심하라!..'하시며 그러한 지고 지순의 용기를 배가시켜 주시기도 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 천주교는 하느님 아버지를 흠숭배례하고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마리아를 성부께 대한 흠숭배례함의 아래격이며, 성인 공경보다 위격인 상경지례함으로써 모시고 있기에 지금의 자매님의 문제의식이라는 거름과 씨앗을 농심을 통하여 최초의 인간적인 신앙 선배이신 성모님으로 보시고자 하는 것이기에 남존여비 사상은 '나의 기도를 방해하는 어둠의 세력의 소산으로써 예수께로 보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이 이레동안 창조하시고 쉬신 세상의 좋은 환경 또한 동물을 닮은 인간인 우리가 오염시켰기에 이러한 숙제를 즐겨 봉헌할 수 있다는 것은 그저 감사한 은총이라 할 수 있을것입니다.

 

꽃만을 보려다가 하느님을 닮은 모성애가 변질되어 박아지화로써 허덕이는 여인네들...

꽃과 줄기와 가시를 보려다가 부성애가 상처받아 카사노바등으로 변질되기도 하는 우리네 남정네들...

 

결국은 이러한 가치 추구형이나 사랑 추구형들이나 그 뿌리를 망각하기에 얻는 죄의 소산인것입니다. 영혼의 병원인 고해소(독탕)를 찾으십시오. 미사는 인간적인 식견으로서는 대중탕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사생활에 인색한 가톨릭 교우들(내안의 분심들)을 위하여 이 사순과 성탄시기등을 통하여 합동 참회 예절이라는 남,녀 혼탕도 보내주심인데 역시 '내가 스스로 이성을 차별'한다면 찜찜하기 이를데 없을것입니다.

 

귀소본능의 남성적 본능이나 보호본능의 여성적 본능이나 결국 주님을 흠숭하는 것이 첫째이기에 사탄은 이러한 흠숭 배례를 막으며 변태적으로 이웃을 내 몸처럼만 사랑하라는 유혹등으로 속삭이며 내 마음의 어둠뒤에 숨어서 악을 획책하기도 할 것입니다. 빛이신 주님께 봉헌하면 됩니다. 심지어 악하여진 현대에 이르러 영성이 깊은 형제들에게도 남심(男心)의 그러한 것을 기도를 막고 쉽고 편안함으로 젖게 만들며(더 큰 암초가 기다릴 수 있는), 기러기 아빠들을 양산시키고 있는데 이는 자매님의 성공회를 향한 도피심리와도 유사하니 경계하셔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보지 말고 미사에 참례(성사생활중 대표적인 고해성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하여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통하여 사제의 소리를 통하여 하느님께 직접 치유받을 수 있는 성사생활 배가 은총에 감사드리도록 노력)하십시오. 신부나 사람이 맘에 안들어 교회를 떠나지도 마십시오. 수녀님들도 자매님의 그러한 분심에 휩쌓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녀님들처럼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 어머니에게 효성을 바치는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따를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 어머니도 이미 인간적인 성도 초월하심으로써 승천하시고 장미화관을 예수님으로부터 받으시기에(영광의 신비 4,5단), 우리도 그것을 따르려 하기에 그러한 분심들을 발전적인 고민으로 재봉헌 해야 할 것이고, 어느 때인가는 하느님 외에 세상 모든 우리가 여인으로도 느껴지고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참고로 교황성하가 수여하는 왕관을 나폴레옹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씀으로써 유배지에서 비로소 하느님의 권능앞에 참회하기도 하는데 아무튼 신앙은 결코 쉬운것만은 아닐 것이며 그러한 '복된 죄'에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소리에도 聖聖聖의 소리가 있고 姓姓姓의 소리가 있습니다. 종이가 개발되기전, 양피지에 수도자들이 악보의 전신인 기호등을 그려가며 봉송한 그레고리오 송가를 아침부터 성가정 지향으로 접하여 주십시오. 이성으로 갈라진 우리들의 그것이 남자도 아닌 것이, 여자도 아닌 것이의 여와 남의 그것조차 필요없는 성요한(소리)의 은총을 구가하기도 할 것입니다. 무색 무취의 부부가 신혼 때보다 더 신혼으로 다가올 수 있는 진정한 친구로써의 배우자와 진정한 연인으로써의 배우자로써 거듭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남,녀를 이리 만드신 은총의 사유가 담겨있슴을 보시고, 어떠한 경우에도 그 가운데의 성령의 열매를 따먹지는 말아주십시오.

 

2005년 1월 1일 뇌종양(대개의 뇌종양도 사람의 뇌의 한가운데 공간에서 종양이 시작된다 하더군요)으로 선종하며 조건부 대세를 받아야 했던 손요셉 형제가 생각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동네 형제수퍼의 쉬는교우 요셉 형제에게는 하느님이 현존하시기에 어젯밤 노동자의 주보이신 요셉의 현존을 알릴 수 있어 좋았는데 사순 3주간 월요일인 오늘은 거듭 말씀드리건데 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요셉 대축일이기도 함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형제수퍼의 마음씨 착한 쉬는 교우 요셉 형제는 경사났다 하시더군요. 그러나 저는 그를 미사에 이끌고 갈 능력 받음에 여전히 인색한채 자매님께서 다만 이미 그 자녀에게 지상에서의 첫 수호천사로서 명명 받으신 성모이기에 계속하여 변명(?)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아무튼 성요셉께서도 인간적인 식견이지만 그 추운 겨울날 만삭인 아내를 위해 여인숙 하나 구하지 못하는 큰 바보로써의 달란트를 취하심으로써 안중근의사의 아내처럼 우리들의 가슴 한가운데서도 '있는듯, 없는듯' 봉사하는 진정한 미사 해설자등으로도 오시고 계십니다.

 

가톨릭은 이미 오래전부터 남,녀 호주제의 평등화를 위해서도 기도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짜 가톨릭론등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추스려 봉헌하시고 새로운 기도생활+봉사생활+공부생활+성사생활+공동체 생활의 성가정을 봉헌할 수 있도록 무수리가 아닌 현 가정의 왕비로써의 한주간의 스케줄을 의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역시 제 경험에 의하면 인간의 자아로는 이러한 스케줄 실천도 작심삼일도 힘드실 터인데 창세기 1~3장의 하느님 말씀이 도움을 주실 것이라 사료됩니다.

 

우리네 인간은 포도나무이신 주님보다 잔가지인 해석에 연연하는 경우가 많다 하십니다. 그러나 2000여년전 사도시대보다 더 성령이 충만한 시대가 오기에 봉사가 아무리 외롭더라도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인간에게 가장 커다란 축복인 '새로 태어남'의 기쁨을 잃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상처중일때는 성부께 기도해달라고 성모 엄마께 꼬치 꼬치 그것들을 청하십시오. 그러나 상처는 너무 세세히 기억하면 충격 받을 수 있으니 이때에는 보다 범위를 넓게 기도하십시오.

 

미사(Missa)는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제사를 재현하며, 최후의 만찬때 그리스도께서 친히 교회에 물려준 교회의 유일하고 거룩한 만찬제사입니다.

 

친구가 참된 벗을 찾아가는 때인, 길 잃은 양이 착한 목자를 만나는 순간인, 어리석은 내가 지혜를 찾아 얻는 때인 묵주기도, 성체조배, 미사, 영성체를 통하여 당신이 곧, 사랑이심을 깨닿고 또한 즉시 봉헌함으로써 사랑이 회심으로 진화하는 생명체임을 주님과 함께 기뻐하시며 뛰노실것입니다.

 

보이시지요? 지금 이시간도 우리를 위해 봉헌 해주시는 세계 곳곳에서의 미사성제를...사제와 하나되어 교회와 하나되어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이 미사에 참례합시다...

 

 

 



184 0댓글쓰기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