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용산역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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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maggy311] 쪽지 캡슐

2002-11-22 ㅣ No.1765

 

 

  요즘 일때문에 용산역을 지나다닐 일이 많다.  낮에 그곳을 지나며

 

담벼락밑에 방치된 침대 매트리스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웬 쓰레기

 

무단 투기? 그리고 왜 치우지 않는걸까?’  속으로 생각하며 무심히

 

지나쳤다.  밤에 그곳을 다시 지나며 바로 그 쓰레기인줄 알았던

 

매트리스의 주인들을 만났다.  추위에 얇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사람들. 그들은 바로 노숙자였다.  요즘 같은 추운 날씨에 세상에!

 

 

 

  초저녁부터 그렇게 불쌍하게 누워있는 그분들을 보니, 아무리 바닥은

 

두껍지만 저렇게 얇은 이불로는 추울텐데 왜 영등포역 처럼 안에서 잘 수

 

있는 곳으로 가지 않을까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의문은 곧 풀렸다.  

 

옆의 언니의 말씀이, 낮에 이곳에서 교회 사람들이 배식을 한다고 한다.

 

 

  아 그래서 이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분들이 밤에 여기서

 

주무시는구나라고 짐작이 갔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충격적일까?  TV로

 

혹은 길을 지나며 반 술주정뱅이 같은 사람이 길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은

 

많이 보았으나 그렇게 불쌍히, 광장 담벼락밑에 둘둘말린 이불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는 사람들을 직접 보니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순간 내 자신이 무척 한심했다.  그동안 투덜투덜거리며 살았던 모습과

 

세상 고민은 혼자 다 가진 것처럼 심각하며, 때론 내 처지에 대해서

 

하느님께 원망도 하며, 혼자 극한 상황에 있는듯 절규했던 그 모습들이

 

하느님은 얼마나 가짢(?)았을까?

 

 

 그 순간 그동안의 나의 모든 고민과 기도는 침소봉대처럼 느껴졌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우물안 속에서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멍청하고 어릭석은 개구리가 바로 나였다.  따뜻한 방안에서 마치

 

시베리아 벌판에 있는듯 유난을 떨며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정말 만감이 교차됐다.

 

 

 

  오늘, 내 자신이 무척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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