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상담신앙상담 게시판은 비공개 게시판으로 닉네임을 사용실 수 있습니다. 답변 글 역시 닉네임으로 표기되며 댓글의 경우는 실명이 표기됩니다.

q Re:용기가 나지 않아서요..

인쇄

사랑과영혼 [61.106.107.*]

2006-08-31 ㅣ No.4424

 

 

   † 찬미예수

 

   반갑습니다. 형제님도 겸손이 승리하였기에 그 초대에 부응하신 것입니다. 너무 낙심친 마세요.

   우리는 오늘 하루 결코 남을 비교하지 않는 단단한 평화를 간구하며

   새로 태어나게 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본당을 옮긴 그것을 상기하며 지금의 주님과 나의 생각으로 침묵을 청원해 보세요.

 

   그러면 신부님께 대한 지나친 배려보다는 그저 단순하게 이끌어 주실테고

   그렇게 이끌어 주신데로 님이 성사생활에 입문하시었듯,

   본당 주임 신부님께 '저 이사 왔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필자 역시 님과 같이 수많은 갈등과 고민을 받은 죄인이랍니다.

   이러한 갈등과 고민 없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하면서

   너와 나의 기도가 부족하였기에 자신을 합리화 하는줄조차 모르고 지나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님의 현재의 '양심의 이정표'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을 잘 가꾸면 하느님께서 더 좋은 몫으로 써 주시며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남편만을 가꾸는 아내'와 '가정과 정원과 여자를 가꾸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다만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도 지금 큰 병에 걸려 있고, 고통이라는 선물로 오로지 주님께 더욱 매달릴 수 있기에

   늘 밝고 힘차게 살아갑니다. 초인적인 의지로 쉬지도 않는 것 같더군요.

  

   그러다 문득 남편이 잘 가꾸어 주던 마당의 정원을 보았나봅니다.

   인간적으로는 문득이 아니라 그 반대일 수도 있겠군요.

 

   사람들은 그녀의 정원이 무척 아름답다 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하늘로 오른 남편의 정성에 비하면 큰 동물이라도 튀어나올 엉터리 정원이라 합니다.

 

   그 형제는 하느님이 써 주시고 계십니다. 보고 들은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사랑이신 그분이 고통안에서 기뻐하고 슬픈 사랑안에서도 기뻐 뛰놀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반드시라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성과 예수님의 인성은 오늘도 합해져야 합니다.

 

   그냥 단순하게 새 본당의 수고하시는 작은, 또는 큰 어른께 인사드리러 왔노라고 하면 됩니다.

 

   이사람처럼 긴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정 고민 된다면 신부님께 대한 그 배려의 씨앗을 일구며 어떻게 내가, '용건만 간단히'

   그렇게 인사를 드릴까? 하고 평화의 기도를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신부님은 새로 오시는 신자들께 그런 나눔(서로 인사)을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떠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본당 사무실에서도 새 신자 환영 주소등을 주보에 개제하는 추세인데

   요즘같은 컴퓨터 시대에 이메일 아이피도 함께 넣으면 좋을듯 싶습니다.

   그러면 본당의 뜻있는 교형들이 개인적으로도 환영 인사를 줄텐데 말이지요.

   아무튼 사무장 직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을 수 있기에 근처의 어느 본당은 또 사무장이 잘렸는데

   그 후에도 1억을 해 먹은게 들통나, 그 부모가 해결해 주고 있다는군요.

 

   예수님의 곁에서 회계를 보았던 유다도 같은 길을 걸어야 했는데

   요즘은 유다의 그것을 다시 조명하기도 합니다. 공부생활 병행 해 두시고요.

   따라서 형제님은 절대 예수님의 초대에 부응한 것이지,

   유다처럼 자신의 이권을 위하여 주님을 찾은 것이 아님을 깊이 자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사랑의 법칙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할 수 있으니 오직 그 첫자리에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이에 강박관념등이 찾아오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도 내어 맡겨보십시오.

   무관심이 치유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픔중에 참아 이겨낸 그것이 하루밤의 열매로 하모니라는 노래로서 나누게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것은 아이들의 EQ 교육 작전으로도 그만일 것입니다.

 

   더불어 겸손만이 살길임을 유념하시어 어떠한 경우도 성사생활의 끈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아이처럼 구름 위의 연을 기억하며 그 줄을 놓치지 않는 신심이면

   수많은 기적을 만나고 바라보기도 할 것입니다.

 

   여기서도 시공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사가 늦어 죄송하였습니다라고 한마디만 하여도

   이날 밤 신부님께서 주님께 엄청 감사드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 역시 님과 비슷한 갈등과 고민속에 시간이 흐르고 있답니다.

   윷놀이 용어로 '도낀~ 개낀~'이라 할 수 있지요.

 

   스스로 광야의 똥고집이고 싶은 저는 성무직을 찾아오고 있답니다.

   그러면서 행동이 뒷받침 되지 못하는 가장으로서

   아름다운 풍요조차 볼 수 있는 가난이겠지만 죄악의 가난도 걸어오고 있습니다.

   남자의 명예욕이 아닌

   안정욕을 가질 수 있는 아내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언젠가부터 수녀님이 아내를 부르더군요.

   그리고 본당의 빈첸시오 회에선가 주는 빈곤층 돈을 아내에게 전해 주시더군요.

 

   아내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답니다.

 

   그러다가 자존심(인간의 악의 통로일 수도 있슴, 좋은 자존심은 주님을 믿고 닮고 따르는 것, 스스로 존귀한 주님과 함께하는 것) 관계로 세번째 달에 그것을 끊자 하였습니다.

 

   미사때에 세분의 수녀님은 언제나 자리 하고 계시더군요.

 

   그런데 저는 일이 잘 안 풀린다며 시골같은데로 도피할 궁리도 자주 하였습니다.

   그리고 묵상중에 내가 나중에 잘 되면 그 첫 봉급으로

   저 수녀님들에게 하얀 손수건 한장씩 선물하리라! 하고 다짐하였습니다.

   그것도 아내를 통해서요.

 

   무슨 만화를 그리는 것도 아니고 ^-^ 암튼 재밋습니다.

 

   그리고 말이지요.

   인간이 역시 재밋는 것이

   지나고 나면 아무 기억도 안나기도 한답니다.

 

   주님보다 돈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도

   천석꾼의 천가지 걱정, 만석꾼의 만가지 걱정의 터널을 지나

   로또라도 당천 된다면 그저 덤덤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람처럼 남는 돈을, 남는 사랑을 주님께 드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언젠가 면도도 며칠 안한 산적 졸개가 되어

   묵상중에 계신 세분중, 젤 고운 수녀님께 드리대며(예쁜건 알아가지고...)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제가 수녀님들 환영곡으로 오늘 안나할머니 장례중에

   성모 찬가를 준비하였으니 기도 기억해 주세요~' 한 적이 있답니다.

 

   보좌 신부님도 감동 먹어서인지, 충격을 받으셔서인지 성체 거양조차 한동안 못하시더군요.

 

   이후 보좌 신부님은 청년 성가대원들에 대한 핍박이 더욱 노골화 되어 지셨습니다.

   아무튼 착각은 '북한에서도 자유'니 안심하십시오.

 

   형제님도 저처럼 욕심같은 시행착오 해매이지 마시구요.

   그저 본당 어른이신 신부님께 드리대세요. 속으로라도 엄청 고마워하실 것입니다.

 

   지금 곧, 고해성사의 대문인 십계명을 묵상해 보세요.

   주님이신 촛불을 켜고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이미 켜 주셨지만 말씀입니다.

 

   그분의 신성과 인성이 함께 하는것이 장땡이겠지요?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247 0댓글쓰기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