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1주일(나해) 마르 4,26-34; ’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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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06-16 ㅣ No.3565

연중 제11주일(나해) 마르 4,26-34; ’18/06/17

 

 

 

찬미예수님. 저는 박재성 시몬 부제입니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이렇게 사목실습을 나왔습니다. 여름 2달간 머물텐데요. 수색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배우고, 또 여러분이 주신 사랑에 조금이나마 제가 보답할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몇 년 전 어느 배우가 시상식에서 인상 깊은 수상 소감을 남겼습니다. ‘다 차려놓은 밥상에 난 그저 맛있게 먹었을 뿐이다.’ 그의 수상소감을 듣는 동료들의 눈에서는 존경의 눈빛이 나왔습니다. 동료들의 모습에서 그가 평소에 보였을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유추해 볼 때, 그는 분명 그가 해야 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잘 했을 것입니다. 그가 져야 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않았을 것이고, 스탭을 포함하여 주변 사람들도 챙겼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의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전 예언자와는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개인의 책임을 중시했다는 점입니다. 예제키엘 이전의 예언자들은 공동체의 책임만 강조했습니다. 이전 예언자들이 말하는 공동체의 책임은 공동체를 다스리는 왕이 짊어지는 책임과 같았습니다. 그도 그랬을 것이, 앞선 시대. 그러니까 왕정시대를 말하는 열왕기와 역대기를 보면 국가의 흥망성쇠는 국가의 왕이 하느님을 잘 따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이전 예언자들은 왕의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왕들의 행동으로 그 이스라엘의 국가가 망하게 됩니다. 국가가 패망하게 된 사건 전후에 활동했던 이가 바로 에제키엘입니다. 에제키엘이 활동하던 시기는 기존의 국가, 정치, 사회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대가 변하는 시기였습니다. 국가가 망하는 것을 본 그는 공동체를 다스리는 왕만 잘 해서 될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는 개개인의 책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개개인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모습과 참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 첫 독서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며,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시든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이가 나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17,24) 이 말씀은 책임지는 사람의 판단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말해 줍니다. 바로 하느님의 뜻을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다만 왕만, 권력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독서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은 살피지 않고, 공동선을 지향하지 않는 이에 전하는 경고의 말이며, 하느님의 뜻을 살피고 공동선을 지향하는 이에게는 용기를 주는 말입니다.

 

사실 책임을 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임을 늘 고백합니다. 그렇기에 실수나 잘못이 없을 수 없습니다. (고해를 보고 또 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책임진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수에 고개를 숙일 준비를 해 놓는 것, 문제가 생겼을 때, 네 잘못을 먼저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 바로 이것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더 큰 사랑을 가진 이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기에 책임감은 진정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과 같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씨앗을 심은 것뿐인데, 줄기가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의 마음이 꼭 이와 같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떻게 커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의 마음이 커질 때는 자신도 모르게 자라납니다. 또한 예수님은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마르 4,31) 라고 말씀하십니다. 작은 겨자씨가 땅에 심겨 자라나면 새가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줄 정도로 큰 가지로 자라납니다. 사랑의 마음은 스스로는 작을지 몰라도, 누군가에게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줍니다. 그러니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누군가를 지켜주는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능력이 조금 부족해 보일지라도,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크기로, 열매로 자라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용기가 오늘 복음의 의미입니다.

 

비록 지금 돈이 안 된다 하더라도, 역사를 보존하거나, 가난한 이의 살 곳을 보장하거나, 부당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라면, 공동선을 위한 사랑의 마음이라면, 겨자씨와 같은 큰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믿으며 살아갑니다. 2독서의 말씀대로 우리는 나중에 결국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서야 합니다.”(2코린 5,10) 그 심판대 앞에서 내가 짊어지었던 책임에 보상이 따를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는 우리는 작은 것에서부터 내가 먼저 책임질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청합니다.

 

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가 그러했고, 복음에서 예수님이 그러했듯이 나에게 맡은 바를 용기로 맞설 때, 책임은 짐만이 아니라 사랑을 증거 할 기회가 됩니다. 잠시 묵상 중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랑의 기회를 떠올려보며 보아야겠습니다.

 

 

연중 제11주일 꽃꽂이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id=170319&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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