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성주간 수요일 ’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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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3-30 ㅣ No.4989

성주간 수요일 ’22/04/13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말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기 인식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야!’ ‘나는 그렇게 나쁜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어쩌면 나도 그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의 상황과 처지에 놓이면, 그렇게 안 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한쪽으로 어쩌면 겉으로는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그 사람이 하는 그런 방식을 통해, 그 사람처럼 나의 부와 신분상승을 노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나도 나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이기도 하겠습니다. 아니면, 정말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마태 26,21) 라고 알려주십니다. 제자들은 저마다 근심하며 묻습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2)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매일 하는 항변입니다. 매일 주님의 말씀과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면서도, 아니 그 반대로 살기까지 하면서도,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고 우겨 말하고, 애써 우리 자신은 위선자처럼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무의식 속에 스스로 주입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상은 내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는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마음 속에서 갖가지 반론과 변명, 자기방어의 시간을 되몰아치며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인할 때의 고통도 만만치 않습니다.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과 저주, 좌절과 파멸이 이어집니다. 마치 죄와 벌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벌을 내리시지 않으셔도, 우리 스스로 자신의 죄악에 대한 인식과 자신이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오는 아픔과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한 죄책감에 빠져듦으로써 우리 스스로 벌을 자초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배반할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25) 하고 묻자 뻔히 아시면서도 아니, 그 배반자가 바로 너다.’ 라고 말하지 않으시고, 단지,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25) 라고 답하십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선택을 미리 아시면서도, 유다가 그러한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막지도 않으시고, 유다를 나무라거나 탓하지도 않으십니다. 단지 네가 그렇게 말할뿐이다.’ 라고 하시며, 그를 끝까지 품어 안으시는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그 자비와 사랑이 우리가 오늘 죄중에 있으면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또 부끄러움에 빠져들게 하면서도 진정 회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여지를 주십니다. 우리를 다 아시면서도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핑계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께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시며, 위로해주시는 주님께 돌아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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