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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영혼 [61.106.105.*]

2005-05-26 ㅣ No.3449

 

 

    가톨릭은 개신교와 마차가지로 ''하느님을 흠숭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의 주님의 계명을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톨릭은 하느님 아버지를 모든 존경의 최상위격인 흠숭배례(숭배)로 지향하고 있으며 성모마리아님을 다만 흠숭의 아래격이고 성인 공경의 위격이라 할 수 있는 상경 지례로써 지향함으로써 이러한 주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가를 부르는 평화의 도구가 고음들을 밑에서 차고 올리는 발성이기보다는 하느님 품에 안긴 평화의 도구로써 살포시 그 첫음을 세상에 파견하려는 이치와 상통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여 우리는 그런 맛들임으로 인한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으로써의 '즐김이 준비'가 필요합니다.

 

'반대자들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로 잡아 주어야 합니다(2디모 2,25)'를 잠시 묵상합시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개신교우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눈을 따르는 과정에서의 자아가 앞서는 해석에 젖어 성모님을 맹목적으로 모실 수가 있긴 합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어디에든 현존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우선적으로 믿지 못하고 세상의 가장 넓고도 깊은 바다인 고해소에 들어갈 때, 심지어 성모님의 관심과 사랑조차 잊으며 환자의 입장에서 나의 죄를 속속들이 그리스도께 고해하고 치유받음에 망설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개신교의 유래는 예루살렘의 예수님 무덤위에 성당이 건립되어 있기도 한데 일지기 초대 교황인 성베드로부터 현재 265대의 베네딕도 16세 교황을 모시고 있는 가톨릭 교회의 일부로써 중세때의 가톨릭 공동체의 문제점(면죄부 사건)을 혁신하겠다는 당시의 신부출신 마르틴 루터에 의하여 생긴 교파의 한부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즉, 가톨릭의 입장에선 갈라진 형제들이라고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오늘날의 수많은 개신교중 마르틴 루터와 관련있는 루터파 개신교는 묵주기도를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성심껏 바치고 있다 전해지고 있는데 다수의 반면, 개신교인들이 여전히 가톨릭은 성모마리아의 교회다라고 확대해석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성모님은 한 가정의 어머니이시기에 즉, 예수님을 낳으신 성모이시기에 가톨릭인이나 개신교인들이 마땅히 하느님 어머니로써 모셔야 할 것입니다. 자녀인 우리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도하는 엄마의 그 사랑을 잘 계승받고자 우리는 성가정의 모습들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의 믿을 교리인 성모님 사랑의 4대 교리를 그 개신교 형제에게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동정성, 무염시태, 성모승천이지요. 나머지는 인간의 자아가 빚은 군더더기인것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는 일반 자매님들로부터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것입니다. 그런가하면 평생 동정성은 성직자, 승려들로부터 공통적인 귀감을 바라볼 수 있을것입니다. 무염시태라고 하는 것은 원죄없는 영육을 뜻하는 것인데 하느님의 모상을 믿는 인간이 원죄없이 태어났슴을 많은 사람들이 잊기도 합니다. 문제는 사람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원죄를 그 자아등으로써 반복하고 있슴을 간과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칫 오염시태로 발전하기 쉬운것입니다.

 

네번째의 성모승천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들어올림을 받으심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이 믿음으로 개신교 형제들에게 당당히 설명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교회의 두 기둥이신 베드로와 바오로 성인께서도 일지기 자주 논쟁을 벌이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인간적인 논쟁을 하지 마시고 오직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기 위한 논쟁을 우리 가톨릭 신앙인들도 때론 당당히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개신교우들이나 특히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을 포섭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과 논쟁에서 이기려 하진 마십시오. 더우기 그들과 다투었다가는 그들에게 끌려가 다시 내 자신이 개신교 신자로써, 또는 여호와의 증인으로써 우리에게 다시 나타나 우리 자신을 그리로 끌고 가려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신앙은 이처럼 매우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개신교나 가톨릭 신앙인들 심지어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 모두가 가정의 평화를 듣고 믿고 있고 FAMILY의 속 뜻에는 Father & Mother I Love You가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개신교인들이 알아두어야 할 결정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그리스도교)인들은 모두가 부활사상을 핵심으로 받아들여야 하기에 과거와 미래를 믿는 윤회사상이 아닌 이 과거와 현재를 모두 봉헌함으로써 오직 그분의 평화의 도구로써의 이 순간을 함께 나누고 영위하려는 의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고 관대하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저녁이면 기쁘게 포기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따라서 모두와 평화를 나누고 서로 격려할 수 있는 의지를 청원하여보십시오. 하느님도 끊임없이 우리들의 평화를 청원하고 계시잔습니까?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그것처럼 세상 모든 물질과 생명체들이 기억력이 있기에 우리가 모두와 좋은 말만 나누자는 의지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는 것입니다.

 

성모님처럼 내가 최선을 다하기 이전에 다만 ''이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개신교 형제와 서로 평화의 사도로써의 새로운 복음 나눔을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담긴 말만을 행하는 움직이는 침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다만 개신교인들을 이기려 하진 마십시오. 상대가 어떻게 나오던지 오직 나의 평화를 잃치 않겠다는 의지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바둑계의 이창호 선수의 얼굴만 보아도 우린 그것을 더듬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일을 시작하기 전후에 기도를 바치게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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