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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간 토요일 ’21/03/06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서한에 드러난 사회복지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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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02-19 ㅣ No.4555

사순 제2주간 토요일 ’21/03/06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서한에 드러난 사회복지 활동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서한에 드러난 한국 천주교 초대교회 사목자들과 신자들의 사회복지 활동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합시다.

 

한국천주교회는 세계 교회사상 특이하게 가성직제도를 운용했습니다. 이는 정규 사제가 없는 상황에서 신자들끼리 사제의 역할을 맡아서 선교했다는 점입니다. 무지로 인한 불법적 제도이긴 하지만, 그중 고해성사에 관한 부분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천주교의 고해성사는 죄를 사해주고 그 잠벌을 보속(補贖)으로 없애는데, 그들이 준 보속이 하느님 사랑에 응답하는 이웃사랑이라는 그리스도교 정신을 매우 깊이 이해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사회복지라 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한국천주교회사를 쓴 프랑스 외방선교회 달레(C. h. Dallet) 신부님의 기록에 의하면, 심한 죄는 체벌로 다스린 데 반하여 대부분의 소죄들은 보속을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 베풀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희생하기' 등의 희사로 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천주교를 믿는 이들이 천주교회를 통해 이 땅에서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분들은 자신의 희생으로 이웃에게 자선을 베풂으로써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구현하고자 한 것이며, 그래서 그 구체적인 형태로 사회복지 활동을 고해성사의 보속으로 정하여 의무로 부과하게 된 것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서울 한양에서 1845327일 외방전교회 대표 리브와 신부님에게 보낸 열 번째 서한에서, "조선에서는 어린 아기들의 대부분이 반점으로 얼굴이 흉해지는 병(즉 천연두)으로 죽어 가는데, 그 병을 퇴치할 수 있는 처방을 저에게 명확히 적어 보내 주시기를 스승님께 청합니다."고 적고 있습니다.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은 "이 모든 질병이 물의 비위생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어집니다. 그러니 물을 정화하는 방법을 아시면 분명하게 일러주시기 바랍니다."고 적고 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이 도양골에서 1850101일 그분의 마카오 신학교 시절 스승인 르그레주아 신부님에게 보낸 이 일곱 번째 편지에는 최 신부님이 고국에서 선교하면서 필요한 두 가지 청을 담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공중 위생을 위한 물의 정화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선교에 필요한 성물' 등을 보내 달라는 청입니다.

 

천주교 사목자인 최 신부님이 선교를 하면서 스승에게 청하는 내용에서 직접 선교에 필요한 성물이나 상본 등에 앞서 일반인들의 공중 위생을 위한 물의 정화 방법을 청하는 내용은 참으로 천주교회와 교회의 선교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김 신부님과 최 신부님은 당시 프랑스 외방선교회 선교사제들의 신학 원칙과 종교 신심에 지나치게 충실하다고들 하는 얀세니즘적인 엄격한 신학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분들이 고국에 귀국하여 선교하면서 그분들에게 신학과 사목을 가르친 스승에게 이러한 청을 한다는 것은 그분들이 사회복지를 교회 선교의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인 한 방편이라고 교육받았거나 그분들이 보아온 사목의 형태를 선교지에서도 자연스럽게 적용하고자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은 죽음을 앞둔 박해의 선교 현장 속에서도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를 풀어주고 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려는 노력을 교회 사목의 일차적인 선교 목표요 방법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한편 이분들이 받은 교육은 정통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예수님도 제자들을 파견할 때 첫 번째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교리교육과 두 번째 그 교리가 현실로 드러나는 이른바 하느님 사랑에 응답하는 이웃사랑으로서의 사회복지 그리고 세 번째로 그러한 사업을 계속할 사도양성을 지시하였습니다(마태 9,35-38 참조).

 

최 신부님의 이러한 사목 정신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분은 열성적인 교우 최경환 프란치스코에 대해 보고하는 18511015일의 여덟 번째 편지에서 프란치스코가 몇 시간 기도하고 몇 시간 신심독서를 하는지를 말하기에 앞서 이웃사랑의 형태로서의 사회복지 활동을 언급합니다. "흉년이 되면 프란치스코는 주변에 사는 가난한 이들을 백방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과일을 추수할 때가 되면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최 신부님은 일반 대중의 문맹을 극복하기 위한 한글교육을 강조했으며, 또 교우들을 위해 '천주성교공과'(天主聖敎工課)와 같은 기도서와 '성교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등의 천주교 교리서를 한글로 번역하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리고 또 서민들에게 맞는 수준에서 교리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쉬운 한글로 된 '천주가사'를 지어 보급했습니다.

 

그리고 최 신부님은 18591011일에 보낸 열 일곱 번째 편지에서, 185782일에 '장 주교 윤시 제우서'(張主敎輪示諸友書)라는 제목의 사목 교서에 나타난 매스트르 신부님이 세운 아동복지시설 '영해회'에 대한 한국 내의 활동과 한국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관심 있게 기술합니다.

 

최 신부님은 또한 선교사들이 조선에서 사목하기 위해서는 당시 조선의 언어인 한글을 익혀와야 한다는 것을 언급했습니다. 아울러 당시 조선의 문화와 사회제도를 설명하면서 양반제도에 대해서 신분적인 차별과 무노동 고소득이란 면에서 비판적인 이해를 가져야 한다고 일러둠으로써, 만민이 평등하고 부지런히 일해 사는 건전한 사회상을 펼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리델(Ridel) 이 주교님은 옥중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소, 이 나라에 머물게 두시면 이 땅에서 죽을 것이오. 그 동안 자선사업을 하겠고. 예컨데 병원이나 고아원 같은 것을 설치하여 빈궁한 병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며, 무의무탁한 고아들이나 내버린 아이들을 거두어 양육하여 주는 등 갖가지 박애사업에 노력하겠소.“

 

이상의 사목자들의 서한들을 보면 당시 사목자들은 사회복지에 대한 명확한 시각과 교회 선교와 복지의 통합된 사목의 방향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목자분들의 열정적인 노력과 아울러 당시 신자들도 신앙생활에 있어 이웃 사랑에 힘썼습니다. 선교사 달레 신부님은 "교우들이 재산을 몰수당하고, 박해를 피해 이 산 저 산으로 숨어 다니면서도 굶어죽는 일이 없었다."고 전합니다. 이는 식사 때마다 얼마 안되는 음식도 나누어 먹었으며, 또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그 끼니에 먹을 쌀의 양에서 한줌의 쌀을 꺼내어 별도로 저장했기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이를 "좀도리 쌀" 혹은 "줌쌀"이라고도 하고, 이는 현재 천주교회의 모든 자선 헌금과 헌미 운동의 근간을 이루는 행동 정신입니다.

 

이들은 박해 속에서 사람들의 밀고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심한 경우에는 교우촌 전체가 불에 타서, 다른 교우촌으로 도망을 다녀야 했고, 또 전염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형편이 좀 나은 교우들은 이들을 한 식구로 받아들여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체포된 교우들의 석방을 위해 모금을 하고 사식을 넣어 주었으며, 순교한 이들의 가족 중에 과부, 홀아비, 노인, 고아가 된 이들이 생기면 격려하는 등 박애정신은 물론 가톨릭 교회의 기본 원리인 사랑을 실천하여 두터운 공동체적 연대를 보여주었습니다.

 

 

 

-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사, http://fr.catholic.or.kr/peters1/Hcswk/hcswk1.htm 참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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