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저는 지금 시카고에서 공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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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06-09-11 ㅣ No.2006

 

 

 

 

 

찬미 예수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저는 휴가 동안 시카고에 있는 Catholic Theological Union 이란 신학 전문 대학원에서 Cross-cultural Ministry 전공 Ecumenical Doctor of Ministry (박사과정)에 등록하여 수업을 듣고 왔습니다. 시카고는 정말 더웠습니다. 매일 82도 84도의 더위가 계속되고 습도는 75도나 되고, 시애틀에서 비 다 그치고 갔는데도 비는 오고 그야말로 한국의 여름 같았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16일까지 기숙사에 들어와야 한다고 해서 부지런히 갔더니, 막상 들어가 보니 수업이 21일부터 시작한다고 21일부터 밥을 준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하고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한국시장에 가서 밥통도 사고, 냄비도 사고 이것저것 사서 거기 사는 수녀님들이 찌게 끓이는 법 등을 배워서 밥을 해먹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살다가 갑자기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참 황당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남자들은 참 불쌍하다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자기 먹을 것조차 스스로 준비할 수 없고 부인이나 다른 누구가 대신 준비해줘야 먹고 살아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밥은 밥통에 넣고 한 일주일동안 밥 다 먹을 때까지 보온에 두었다가 시간만 되면 꺼내먹고, 된장찌개는 물에다 된장 풀어서 호박, 두부, 양파, 파, 버섯 썰어넣고 멸치 넣어서 끓여 먹는데 준비하는 데만 한 시간 꼬박이 걸렸습니다. 반찬이라고는 김하고 멸치하고 장조림인데, 그나마 찌게에 이것저것 다 넣어 먹으니까 그게 반찬이겠거니 하면서 먹습니다. 혼자 해 먹으니까 재밌기도 하고, 남이 해 주면 이것저것 남기기도 하는데 이건 내가 손수 만드니까 버릴 것 없이 다 먹어치웁니다.


집중수업 기간 동안에 아침 6시에 일어나 성당가서 기도하고 7시 30분에 미사 드리고, 8시에 밥 차려먹고 설거지 한 다음에 학교에 가서 9시부터 수업하고 12시 점심시간에는 밥 차려 먹을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샌드위치 한 쪽 먹고 4시 30분 수업이 끝나고 돌아와 찌게 해 먹고 6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묵주기도하면서 걷고 와 막상 숙제를 해야 하는데 얼마나 졸린지 그냥 꾸벅 꾸벅 졸면서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간신히 버텨 나갑니다.

한 번은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는 빨래 돌아가는 동안 옆에 의자에 앉아서 책 읽느라고 꼬박 꼬박 졸면서 세탁하고 건조했습니다. 살아가는 것이 정말 전쟁 같고, 생존경쟁이구나 싶었습니다. 집을 떠나 신학교 때부터 제가 사제생활을 하는 동안 뒤에서 밥해 주고, 빨래해 주고, 청소해 주신 모든 분들께 새삼 감사드립니다.

공부할 시간은 모자라고 숙제는 많고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이것저것 그냥 끼니를 때우면서 지냅니다. 다음 주부터 정규 수업시간 때는 좀 시간적인 여유가 있겠구나 싶었는데, 집중수업 마치자마자 또 숙제를 내 줘서 본당에 송별미사를 하러 오면서도 숙제를 들고 와야 했습니다.


잠시 휴가를 이용해서 공부를 시작하고 나니 몸은 고되고 정신은 없지만, 편한 마음으로 움직이는 제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동안 한 본당의 주임사제라는 직책이 한 인간이 짊어지고 가기엔 너무나 벅찬 자리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2006년 6월 30일까지 첫 번 임기를 마치는 저에게 시애틀 대교구장님께서는 2009년까지 두 번 째 임기를 살아달라는 인사발령장을 내려주셨지만, 지금 사제 생활 19년차로 살아가는 저로서는 앞으로 사제로서 살 삶이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보다 훨씬 많은데, 내 사제 삶에 새로운 것을 충전하지 않고 그냥 본당 신부로서 일만하다가 세월을 다 보내는 것이 아쉬웠고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청력은 감퇴되고 눈은 점점 나빠져 가고 다시는 공부할 기회가 돌아오지 않겠구나 하는 마음에 선택한 것이 주교님께 받아들여져 공부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그동안 정들었던 타코마 성당을 떠나는 마음은 아쉽지만, 그나마 성당을 다 짓고 가게 되서 위안이 됩니다.


이렇게 늦은 감이 없지 않은 저에게 공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고 배려해 주신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님과 염수정 주교님을 비롯한 교계 여러분과 이곳 타코마 한인 성당에서 봉직하는 동안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신 시애틀 대교구의 Alex. J. Brunett 대주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배려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제 주위의 많은 분들을 통해 성 정하상 바오로 타코마 한인 성당에서 무사히 임기를 마치도록 허락해주시고 교회를 통해 또 새로운 세계로 저를 부르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시고요.

저도 기억하겠습니다.

 

심흥보 신부 드림

 

 

참고로 제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Fr. Heungbo Shim

Ecumenical Doctor of Ministry

Catholic Theological Union

5420 S. Cornell Ave. Apt. #405

Chicago, IL 60615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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