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5 인의 도시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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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욱 [supark59] 쪽지 캡슐

2006-07-03 ㅣ No.6464

 

기: 2006.6.30~7.1

장소 : 평창 휘닉스 파크 및 봉평일대.

참석인원: 최창수 프란시스코, 임기수 요셉, 고명환 요한, 양해명 베드로, 박성욱 스테파노.


금요일 오후 전화통은 불이 났습니다. 매사 일일이 큰 형님처럼 꼼꼼히 잘 챙겨 주시는 최창수 프란시스코 형제님으로부터 계속 전화가 온것입니다. “박형제 저녁 7시30분까지 세이브 앞으로 와요. 우린 미리 장을 좀 봐야돼” “ 아 예, 잘 알아 모시겠습니다. 총알 같이 가겠습니다.”

 

금요일은 하필 월말이라 오전부터 많이 바뼜습니다. 그러나 일을 서둘러 끝내고 빠른 퇴근길에 올랐습니다.  집에 도착 하자마자 배낭과 준비물을 챙긴 후 약속 장소인 세이브 마트로 향했습니다.

차를 옥상 주차장에 세우고 1층으로 내려가니 최창수 형제가 곧 도착 했습니다. “자 나를 따라와요, 살게 많으니” 최창수 형제는 서둘러 앞장을 서며 연신 메모한 것을 체크하면서 진열대를 두리번 거렸습니다. “자 수박 한덩어리 사고, 다음은 상추,고추,아. 대파를 사야지” “저 형님,대파는 왠 대파..” 제가 어이 없다는 투로 따지니 “아, 다 필요할때가 있어요” 하더니 한단을 집는게 아닌가.

저는 속으로 “살림을 하실려나.” 그러나 계속되는 형제님의 구매형태는 큰손 바로 그것 이었다. “아, 고추장도 좀 사야돼, 그리고 고추장은 순창이야” 하며 한개도 아닌 두개.. 최창수 형제는 연신 메모장의 구매품목을 지우며 빠르게 이동을 했습니다. “황태구이도 좀사야지, 아 그리고 식용유도 좀 가져와요 ” “아니 식용유는 뭐하시게요? ” “아 황태구이 할때 기름을 둘러야지 맛있어요” 하며 식용유 한병을 고르시는게 아니가. 제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졸래졸래 쫓아 다니는 동안 거의 마지막 쌀 코너에 당도 하였습니다.

 이 와중에 고명환 총무가 오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나니 계산서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치밀한 준비에 내심 감탄을 했습니다.

 

차에 물건을 싣고나니 요셉 형제 가  도착했습니다. “아. 양베드로는?” “ 아, 집앞으로 가서 픽업하기로 했습니다” “아 근데, 뭘 이렇게 많이 샀어, 거기가면 다 있어요” 최창수 형제왈 “아,

현지서 사면 20~30% 비싸요, 그래서 여기서 다 샀어요” 그말에 이해는 하는 것 같으면서도 요셉형제는“제 경험 담으로 볼때 대부분 돌아올때 반은 버리더라구요” 그말에 최창수 형제 “우린 배불리 많이 먹읍시다” 이말에 모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올랐습니다.

요한 형제 “제가 운전은 책임 질테니 재미있게 모두들 가세요” 이말에 저는 한편으로 미안하고 한편으로 여간 다행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우림시장 앞으로 가서 차를 세우니 양 베드로형제가 도착해서 자리배정을 다시 한 후 출발을 했습니다.

 

당초 이 여행은 최창수 형제가 회사 콘도를 사용하게 되어 계획 되었는데 운평회 간부들께서 워크숍 겸 친목도모 차 겸사겸사 가게 된 것 이었습니다.  

 

모두들 출발기도를 마친후 제가 멕시코 출장 갈 때 사가자고 온 데낄라를 한잔씩하며 “데낄라!브라보" 하며 담소를 나누며 갔습니다. 운전을 하는 요한 총무 “ 아,냄새에 취할려고 하는데요, 제꺼 남겨야 돼요” 최창수 형제“ 아, 그래 알았어 걱정 하지마”

 

차는 어느새 영동 고속도로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었습니다. 문막 휴게소 에 도착하니 밤10시가 조금 넘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요한 총무만 국수로 간단히 요기하고 우린 서둘러 목적지인 휘닉스 파크로 향했습니다. 평창쯤 오니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요한 총무 “저희가 도착하면 비 그칩니다” 하며 자기의 신통력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전 속으로“신부님 닮아가나” 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까지 길안내를 열심히 해준 우리 네비게이션 께서 꼼짝을 않하는 것 이었습니다. 지금부터가 중요한데 말입니다. 전 갑자기 몸 둘바를 몰라 했습니다.

속으로“이거 영 체면이 말이 아닌데” 면온IC를 빠져나와 겨우겨우 어둔길을 헤쳐가며 목적지인 휘닉스 파크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니 그렇게 내리던 비는 어느새 멈춘게 아니겠습니까. “거참 희안 하네”

최창수 형제 께서 체크인을 하시고 우린 첫 밤을 동거(?)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이 참 깨끗하고 잘 지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11시쯤 되었습니다. 서둘러 짐을 정리한 후 저녁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야지만 12시부터 하는 독일 과 아르헨티나 8강전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창수 형제 바로 주방으로 가시고 요한 형제와 양베드로 형제 마주보고 앉아  마늘을 까기

시작했습니다. 아까 최창수 형제가 통마늘을 샀었거든요.

저와 요셉형제가 “아니 형님 깐 마늘 사시지 고생되게 통마늘을 사셨어요” 최창수 형제 “ 모르시는 말씀, 국산 통마늘이 몸에 좋습니다”

이사이에 두 형제들은 열심히 마늘을 까고 있었씁니다. “어이 박형제, 파좀 씼으시구요, 김치좀 꺼내세요” 어느새 전 주방 보조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이”

 

최창수 형제는 집에서 정성껏 준비해 오신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열심히 볶고 계셨습니다. 이어지는 황태구이 “아 냄새죽인다” 모두들 허기진 배를 달래며 최창수 형제의 빠른 손놀림만 주시 하고 있었습니다. “자, 다됐습니다. 상좀 보세요” 이때쯤 마늘 두형제 들은 반쯤을 까고 있었습니다. 요한 총무 “나머지는 낼 아침 까겠습니다”

이어서 만찬이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저기서“아맛있다,죽인다” 형님 한잔, 아우 한잔 하면서 우리들의 첫 날밤은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의 젓가락이 두루치기에만 갈뿐 황태구이는 외면을 당하는 것 이었습니다. 최창수형제는 이런 아우들의 모습이 불안한 듯 “황태구이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짜지” 하며 연신 중얼거리 시는 것 이었습니다. 결국은 “그만 먹고 이거 버리자” 하시면서 주방으로 내 가시는 것 입니다. 우린 여기서 큰형님의 자상하신 아우들 사랑을 읽을 수 가 있었습니다. 억지로라도 먹을걸..

 

축구경기는 아쉽게도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은 아르헨티나가 끝내 졌지만. 축구경길 끝으로 우리의 만찬도 그렇게 끝이 나고 있었습니다. 요셉형제가 “형님 설거지는 제가 낼 아침에 하겠습니다” 그러자 “아냐, 설거지는 지금 바로 해야지 잘 닦아져요, 걱정하지 말고 빨리들 주무세요” 그러나 우린 큰형님의 설거지가 끝날 때가지 잘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2시쯤 취침. 큰방에 세분이서 주무시고, 큰형님이 거실, 저는 독방을 자청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침에 밝혀질 것 이었습니다. 큰방에 저 혼자 자는 게 좀 미안 했지만 이내 방문을 닫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큰형님, 순식간에 달려와서 “문을 닫고 자면 더워서 안돼, 갑갑하고.” 전 “ 아..그게 아닌데.. 에이 모르겠다” 전 잠에 떨어졌고 새벽에 요란한 알람소리에 깨어보니 제방에 벗어논 요한 형제의 바지 속에서 들려 오는 것 습니다. 새벽 5시였습니다.

전 이해 했습니다. 새벽미사 때문 에 항상 알람을 5시에 맞혀 놓았던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 소리에 눈을 떠보니 7시경 이었습니다. 이미 큰형님하고 요한 형제가 일어나 있었습니다. 최창수형제는 절 보더니 웃으시며 “잠이 안와 못잤어, 박형제는 눕자마자 바로자대” 그러시더니 “소리 대단 하더라” 하시는 것 이었습니다. 아니 그럼 코고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렸단 말인가. 하면서 전 속으로 “ 그러게 방문을 닫으셨어야 지요”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저멀리 산밑으로 피어오르는 안개는 아침의 정취를 한층 더해 주었습니다. 아침 역시 큰형님의 현란한 손놀림으로 준비한 맛있는 식사를 했습니다.메뉴는 돼지고기 김치찌게. 그리고 라면을 넣어 마무리..

식사를 하며 오늘의 일정에 대해서 서로 상의를 했습니다. 먼저 봉평에 가서 이효석의 숨결을 느끼고, 봉평장에 가서 메밀로 점심을 하고 성당을 들려보고 속사리 로 가서 반공(?)교육 받고 서울로 올라 가는 일정 이었습니다.

 

방을 정리하고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고 차에 올랐습니다. 저는 제일 먼저 점검할게 네비게이션이었습니다. “얘가 오늘 실력 발휘좀 해줘야 하는데” 그러나 어제와 상황이 같았습니다. 그래서 탈착을 해서 자세히 기능검토를 해보기로 하고 확 떼는 순간 얘가 땅에 그만 떨어졌습니다. 아니 근데 애가 정상적으로 돌아 온 것 이었습니다. 기계도 가끔은 맞아야 하나 봅니다.

우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주 자랑스럽게 이효석 생가를 세팅했습니다. 곧 메밀꽃필무렵의

작가 이효석 생가에 도착했습니다. 생가를 보며 전 이 천재 소설가의 생가가 그의 찬란한 문학세계와 오버랩이 잘 안되는 것 이었습니다. 독일에 있는 괴테의 생가도 가보았지만 우린 왜 이리 초라한가. 조금 씁쓸했습니다. 이어서 인근에 있는 이효석 문학관으로 향했습니다.

이제부터 일행들의 생리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어제 너무 과식들을 한 것 같습니다. 도착 하는 곳마다 안보이면 화장실 입니다.

주변 모두가 메밀꽃밭 이었습니다.우리 모두는 문학관으로 들어가 이효석의 문학세계에 흠뻑 빠졌습니다. 경성제대 영어영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36세에 요절한 천재 작가, 시 의 이상, 미술의 이중섭 과 더불어, 소설 특히 백미 라 할 수있는 단편소설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은 바로 천재 소설가 이효석 이 아닐까. 현란한 언어의 마술사, 인간의본능을 추구한 심미주의자. 저는 여지 것 느끼지 못했던 그의 문학세계를 다시 돌아보는데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 요셉 형제도 문학관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 보면서 그의 정취를 느껴 볼려 하는것 같았습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와 우린 봉평읍 으로 향했습니다. 맛의 달인 요셉형제가 소개해준

현대막국수 집으로 갔습니다.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는 또 폭우가 쏟아지고, 우린 요한 형제 의 신통력에 또 한번 감탄을 하고. 메밀국수와 수육, 메밀묵,메밀 전 으로 점심을 맛있게 했습니다.  형제님들 모두 신부님이 좋아하실 음식들 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기고 하고..

이 음식점은 예전에 요셉형제가 한번 와본 곳으로 그때는 좀 조그맣고 허술해 보이는 시골집이었다며 지금은 많이 번창하고 아들이 물려받아서 한다고 했습니다.

주인으로부터 이곳은 성당은 없고 조그마한 공소가 있다고 해 모두 서둘러 나와 공소로 향했습니다. 희안하게 비는 또 그쳤으며. 산밑에 있는 조그만 공소에 곧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 수녀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박 요세피나 수녀님은 선하고 동안 이셨는데 연세가 64세 이셨습니다. 젊었을때 상당히 미인이셨을 것 같았습니다. 10평 남짓한 공소안 에 들어가 모두들 기도를 드린 후 수녀님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이곳은 춘천교구,진부성당 소속으로 역사는 30년정도 되었답니다. 신부님은 매 주일 3시에 방문하시고, 수녀님이 이곳으로 부임하신 2년전 에는 신자들 수가 8명 이었는데  지금은 30명~ 40명정도 되고 단체는 레지오만 있다 하셨습니다.

이곳은 모든게 부족하지만 열심히 주님과 함께 하신다 말하시면서 점점 늘어나는 신자수에

수용시설이 모자라 걱정을 하시고, 비오면 곳곳이 샌다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우리모두

숙연해졌습니다. 특히 최창수 형제가 굉장히 안쓰럽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시설쪽 에서 도울일 이 뭐가 있을까 골똘이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정성것 모은 헌금을 전달

하면서 공소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수녀님이 소개해주신 흥정계곡 으로 향했습니다. 수녀님은 차 앞까지 마중을 나오시면서 “난곡동 성당은 참 좋겠다. 이런 좋은 젊은 분들이 계시니...” 

 

흥정계곡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전 마음속으로 우리 현실하고 잠시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이란 뭘까? 란 화두가 제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잠시 흥정계곡의 아름다움을 감상한후 우린 속사리로 향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가는 도중 큰형님이 잠시 수녀님께 작별

인사나 하고 가자 해서 다시 공소로 향했습니다. 슈퍼 앞에서 큰형님은 수녀님께 드릴 음료수를 사셨습니다. 마음이 몹시 쨘 하셨나 봅니다. 차 소리에 수녀님은 반갑게 또 나와 주시고

우린 시간이 되면 다시 오겠노라 하고 수녀님과 작별을 하였습니다.

 

차에 타니 비가 또 억수로 내리는 것 이었습니다. 폭우속에 우린 속사리 이승복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한때 반공교육의 상징이었고, 우리 유년시절의 우상이었던 이승복 어린이.

무엇보다 놀란 것은 나이가 동년배 라는 사실. 요즘애들은 이승복 어린이를 과연 어떻게

알고 있을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우린 요한 형제의 오늘의 마지막 추천 장소인 황기백숙이 일품인 장수촌으로 향했습니다. 장수촌 백숙을 먹는동안 그맛도 맛이지만. 그 큰 창문너머로 소낙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잔을 하니 모두들 그 옛날 추억하나씩은 떠올리는 듯 했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5시가 다 돠가자. 우린 서둘러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니 8시가 조금 지난시간 이었습니다. 차를 저희 집앞에 파킹시키고 내리는 순간 뒷좌석에서 파열음이 들리는 것 이었습니다. 이런 이런 요한 형제를 줄려고 남긴 데낄라 병을 큰형님이 문을 여시다 그만 깨드리신 것 이었습니다. 큰 형님 미안해서 요한 형제에게

“미안해 요한, 맥주나 한잔하자” 그래서 우리 모둔 뒷풀이 겸 요한 형제를 위해서 인근 술집

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이 모두에게 의미 있었고 공동체의식을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는 데에 모두

공감하면서. 하반기에는  모두 더욱 열심히 성당 생활하고 봉사 활동 하자는 데에 또한번

공감하면서 파이팅을 했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일행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여행사진 몇 커트를 본당앨범에 올려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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