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선물

진정한 필승 코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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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 [drhur] 쪽지 캡슐

2002-10-07 ㅣ No.575

 

 진정한 신앙인이시자 선구자이신 안중근토마 의사!

 

 그분은 참으로 예언자이셨읍니다.

 

 축구만 우리의 자랑이자 혼이 아닙니다.

 

 그분의 의거가 없었다면 우리와 아시아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분의 고뇌와 신앙!

 

 참으로 자랑스런 증거자 이셨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런 한국의 신앙선조인 안중근 그분을 아는 것이 진정한

 

 코리아 신앙을 아는 것입니다.

 

 허신부는 앞으로  안중근 의사에 대해 연구와 자료를 수집하겠습니다.

 

 앞으로 코리아 자랑스런 신앙인의 제일편으로 연구사업을 펼치고자합니다.

 

 여러분의 동참이 필요합니다. 저에게 안중근 의사에 관한 자료가 있다면 무엇이든 보내주셔요!

 

 安重根   

내용 安重根(1879∼1910) 의사. 본관은 순흥. 아명은 응칠(세례명은 토마스. 황해도 해주에서 진사 안태훈의 3남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며 사격·승마·궁술 등 문무를 고루 익혔다. 1894년 결 혼, 2남 1녀를 두고 1895년 영세 입교한 후, 아버지와 함께 빌렘 신부를 도와 황해도 일대를 전교하는 한편, 동학혁명 후 화적떼로 변 한 동학패잔병과 싸워 명성을 떨쳤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뮈텔 주교에게 민족교육을 위한 대학 설립을 건의하였으나 거절당하고 1907년 진남포에 삼흥학교, 돈의학교를 세운 뒤, 1908년 만주를 거쳐 연해주로 망명, 대한의군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 장 및 아령지구군사령으로 의병을 이끌고 국내에 들어와 함북 경흥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1909년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등과 함께, 러시아 장상 코코프체프와의 회담차 아러삔에 오는 이또오를 살해하기로 결의, 9월 26일본인으로 변장하고 하얼삔 역에 잠입하여 이또오를 사살하고 하얼삔 총영사 가와까미,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만철이사 다나까 등에 중상을 입히고 체 포되었다. 재판 중 자신은 독립전쟁을 수행하다가 체포된 포로일 뿐이며 자신의 행위는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의 대의를 위한 정당한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1915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은 후 영세신부인 빌렘신부에게 모든 성사를 받고 가족들에 게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과 장남 분도를 성직자로 키워 줄 것을 당부하는 서신을 남긴 뒤 1910년 3월 26일 성화를 몸에 지닌 채 총 살되어 순국하였다. 서예에 뛰어나 재옥 중 많은 유필을 남겼고 또 당시의 역사적 현실을 정확히 분석한<동양 평화론>과 자신의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 등을 저술하였는데 <안응칠 역사>에서는 `신앙인으로서의 안중근’이라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1962년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이 추서되었고 1979년 9월 2일 안중근 의사 탄생 100주년 기념미사가 명동성당에서 성대히 거행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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