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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6.*]

2006-04-01 ㅣ No.4055

 

   요한 복음 7장 1-2,10.25-30절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전교하기가 힘든 사람이 배우자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전교하거나 남편이 아내를 전교하기는 너무나 힘이 듭니다. 장성한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식적으로 가족이기 때문에, 그래서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 쉬울 것 같지만 그 정반대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교만 때문일 겁니다.

 

오늘 예수님은 참 답답하고 서글퍼집니다. 세리들도 창녀들도 병자들도 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은 예수님이 널리 알려지고 사람들의 추종을 받는 것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떼밀어 출세하려고 합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르는 것이 자랑이고 선한 사람이 되어가는 표시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이고 신앙 안에서 서로 형제자매라고 부른다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이웃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서 힘씁니다. 쉽게 포기하지 말고 가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늘 순교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둡니다.

 

오늘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할 때입니다.

 

(생활성서 별책부록 소금 항아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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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님께 전하고픈 하느님의 처방전

 

1. 기도생활

 

   동생의 성화및 정개(같은죄를 반복치 않겠다는 결심)의 빨랑까(지렛대)를 채워달라는 기도를 용기 잃치 마시고 더욱 굳건히 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성모님은 성부를 움직이게 하시는 겸손(모든 덕의 어머니)의 힘이 있기에 성모님과 함께 이루는 묵주의 기도는 만명이면 만명의 자녀 모두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묵주기도(예수님의 생애가 담긴 기도)를 즐겨 바칩니다.

 

길을 걸을 때 바쳐도 좋습니다. 한 뜸 한 뜸, 십자수를 놓으시는 성모님의 그것을 얻어 한 걸음, 한 걸음, 세상에서 가장 단정한 평화의 도구로 돌아가고픈 나의 갈망을 이루어 주십니다.

 

끝없는 어느 곳을 향하며 걸은다 한들 이미 자매님은 다리가 하나도 안 아플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단정한 이웃이 조금씩 내 곁을 스치는 것이 보일 것이고, 또 지쳐 힘들어 자세가 흐트러진 이웃도 더러 보일 것입니다. 지금은 이들을 위해 일일히 기도할 여력이 없지만 내가 우선 단정한 자세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그런 바른자세로 스스로를 교정할 수 있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묵주기도를 그렇게 즐기다보면 인간이 듣지 못할 주파수로 사람들이 기분 좋을 때 흥얼 거리듯 신부님, 수녀님의 그것을 닮는 평화의 음성을 조금씩 회복하여 천상의 기도를 지향 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탁한 기운이 내 음성에서 묻어 나오더라도, 그리고 내가 비록 편도선이 약하더라도 그렇게 나의 그것을 노래하다 보면 당신의 수호천사도 몹시 고마워 하겠지요.

 

하느님은 잡곡밥도 좋아하시기에 나의 온갖 죄의 그것도 사심없이 바치길 권유하고 계십니다. 자매님도 동생이 깊은 고민을 토로하면 고마워 하시겠지요. 그 절절한 사랑을 왜 모르시겠습니까?

 

교회에서 자살한 분을 위해 공식적으로 미사를 드리지 못하는 사연이 있기에 자매님은 더더욱 모친과 성인병의 일종인 암으로 돌아가신 부친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악을 쳐부수러 지옥에도 쳐들어간 돈키호테(창녀 엘돈자를 성녀 덜시네아로 변모시켜 그녀에게 다시 힘을 얻고 병고에서 일어서나 곧 죽음)도 고맙기에 자매님이 부모를 위해 주님께 매달린다면 주님도 결국 들어주실 수 밖에 없을테니 기도합니다.

 

가톨릭의 2006년동안 성화되고 전승되어 온 찰고기도는 참으로 풍성합니다. 거룩한 하루살이로서의 새 생명을 얻을 때(인간의 가장 큰 축복)부터 다시 하루의 거룩한 죽음을 맞고 있을 평화의 도구들에게는 천상의 뷔페처럼 그 영육간의 양식(기도) 메뉴표도 차고도 넘칠 것입니다.

 

아침기도, 묵상, 미사, 영성체, 성체조배, 묵주기도, 십자가의 길, 영적독서, 저녁기도 및 성찰, 영적지도, 피정, 기타 등등...우린 이렇게 부자입니다. 하느님의 상속권은 당신 자녀에게 인간적 자아의 그것처럼 남,녀 차별을 두지도 않으십니다. 누구나 외아들이신 예수님과 한마음, 한몸으로의 권리와 의무를 권면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다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진정한 부자이길 원하기도 하는데 무조건 봉헌하심 됩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내 마음속에서 악령을 쫒아 내고 깨끗하게 비웠더니 악령이 나중에 갈 곳이 없어 더 큰 악령을 데리고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도 기도하면 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쫒으려 했기에 이번엔 주님께 보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주님께 보내기전 잔 계산에 허덕여야 하는 엶은 '나'를 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서라도 다만 주님을 우선 믿는(나아가 닮고 따를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한 것입니다. 내 마음의 악령들도 예수께로 보낼 수 있도록 청원하십시오.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시며 완전하시기에 우리의 좋은 선의는 무조건 들어주실 수 밖에 없습니다.

 

자매님은 인간의 물질적인것보다, 가족적인 것보다, 나아가 더 중요하고 귀한 영혼의 병고도 호소하셨습니다. 이는 매우 귀한 은총입니다. 우리가 자칫 물질을 우상화하며 가족만을 편애하며 정작 중요한 영혼을 소외 시키려 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상기 열거한 것을 모두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갖지 마시고, 다만 완전한 기도인 미사(예수님 최후의 만찬)를 보지 않고 참례로 하려는 자매님의 그 마음으로 성찰도 즐기시고 정개도 즐기시고, 통회도 즐기시고, 고해도 신부님을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 완전히 無(그래서 신부님의 로만칼라가 겸손의 뒤로 잠그는 것이고, 수단이 모든것도 포용할 수 있는 겸손의 거룩한 죽음을 뜻하는 검은 색이라지요?)로 보실 수 있도록 오직 하느님께 나의 그 것을 치유받을 수 있도록 청원하시면 그 조차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보속도 즐기십시오. 이것은 부족한 나의 분심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 중에서 발가벗겨 십자가에 기꺼이 못박혀 돌아가시는 예수님의 그것을 묵상 할 수도 있을것입니다.

 

'아버지 이잔을 하실 수만 있다면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데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데로 하여주소서'

 

지치고 힘들때에 성체조배의 은총으로도 끊임없이 초대하시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온갖 내면의 시끄러움, 분심등도 성체조배 때에는 가만 내비두면 지가 먼저 지쳐 달아납니다. 성체조배실에서 잠드는 것도 참 좋습니다. 세속의 찜질방보다 300배 600배 따듯한 기운이 넘치는 성체조배의 은총가운데 영육의 찜질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우리가 그만큼 부자란 이유입니다.

 

무관 지옥외에 모든 것이 천국이기에 자매님의 동생에 대한 사랑도, 동생이 자매님에게 변화되었다 하는 것도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하며 처절한 주님의 하소연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의 늑방안에 홀로 고통 받으시는 주님께 자리를 더욱 청소하고 정돈하여 내어 드립니다.

 

자매님이 단정한 것 좋아하신다면 성체 조배실의 방석, 장대의자, 성체조배 시작, 마침 기도문등을 함께 정돈하심 좋을듯 합니다.

 

하느님은 완전한 분이시기에 조상대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영육간의 잘못된 유전자도 자매님의 대에서 끊고 자손 만대에 새출발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결혼은 생명의 연장이기에 인간적인 판단으로 정하신건지 하느님이 권고해 주신건지 어려운 문제이지만 성직자께 따로 상담하십시오. 아무튼 급하게 맘 먹지는 마시고 풍요로운 구속의 하느님 은총도 누리십시오. 어차피 하느님의 은총을 잊을 때 사탄이 그것을 이용하기도 할 것이니 성화시켜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무조건 두드림으로써 구하여 얻는게 좋을 것입니다.

 

2. 공부생활

 

   기도를 하면 공부도 자동으로 더욱 순탄하게 이어질 것입니다. 이들은 장차로도 별개가 아닐 것입니다. 주님께 바치는 기도를 통하여 마음이 정화되면 아무래도 양서 내지는, 성서 내지는, 성경쪽으로 더욱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인간의 정욕, 탐욕이란 것이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에 반하는 그 것들을 파생시키기에 기도로 성화받는 평화의 도구들은 이 성령 열매의 씨앗을 잘 가꾸려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자유 의지로써 역시 풍성한 성화의 글들도 접하십시오. 말씀은 성가로도 성가는 말씀으로도 오듯 노래속에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를 아름다운 노래처럼 부를 수 있는 우리들의 미래가 이어지고 있기에 고통은 사실 하느님이 주시는 최고의 은총이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당겨서 감사할 수 있는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역시 교회에서는 공부생활을 위한 풍성한 배려가 흐르고 있습니다. 공부라는 것이 우선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국 한 스푼을 뜨고 맛을 보는 것도 좋은 공부이지 않겠습니까? 너무 어렵게 생각 안타보면 성당에서의 성서 백주간등도 쉽게, 그리고 올곶게 참여 하도록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럴 땐 매일의 삼종기도(영혼의 양식 세끼 식사)를 묵상/공부함도 참 좋습니다.

 

3. 봉사생활

 

   우리 인간은 심리적으로 내 단점을 상대에게 전가시키는 그것이 만연할 수 있기에 주님께 보속하는 마음으로 미사등에 참례하는 자세는 매우 좋은 봉사이며 동생이 죄짖지 않도록 배려하고자 하는 자매님의 그 마음도 또한 버금가는 좋은 봉사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상대가 죄를 짖게 만드는 것은 악의 소산임을 우리는 더욱 선명히 분별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선과 악이 타협할 수 없기에, 때때로 전쟁을 치루어야 하기에, 빛의 자녀인 우리로 하여금 어둠은 빛에 백전 백패 할 수밖에 없기에, 자매님이 그렇게 깊은 고통을 그분과 나눈다 생각합니다.

 

지금 곧 성호경을 바쳐보십시오. 자매님의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봉사의 기도로 성체성사를 세워주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위해 음지에서 봉사하시는, 평생을 헌신하고 있는 수많은 성직자들, 봉사자들을 보십시오. 열심히 산 당신에게 여행을 허락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바라보며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기부터 하는 것도 좋습니다.

 

보기에 참례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육의 장애우를 만날 때 내가 정신의 장애우이기에 서로 손잡고 도움을 나눌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은 틀림없이 자매님과 동생을 큰 몫으로 써 주시려 하기에 오늘의 시련을 믿고 맡기고 계신 것이며 또 부모님의 그 고통도 함께 치유해 주시고자 티 없으시기에 지상에서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성모님의 겸손도 허락하실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느/님/감/사/합/니/다'의 여덟 글자를 앞머리에 올리며 함께 바쳐보십시오. 이 또한 좋은 기도방법중 하나입니다.

 

4. 성사생활

 

   성사생활은 신비(미스테리움)속에도 함께 하시는분이 주님이시기에 거룩함(싸끄라멘뚬)의 여정으로 이끌어주시고 또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자매님의 그 장인 정신이라면 무엇에 걸려 넘어지는 적지않은 교우가 아닌 회두/회심으로의 진화하는 생명체이신 사랑의 힘으로 새롭게 동생과도 '꿈의 단계▶갈등의 단계▶조정 극복의 단계'로써 다만 주님이 바라시는 슬기롭게 대처함의 의지를 피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을 닮는 지상은 이처럼 누구에게나 호흡과도 같이 기도가 허락될 수 있으며 그 가운데 고통은 정말 뜻 깊은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경험하는 자만이 더더욱 주님을 애타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감사 은총인 성사생활을 지상으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어깨동무 하고 순례할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이웃에게 죄짖지 않도록 즐겨 민감하려는 자매님은 분명 좋은몫입니다.

 

5. 공동체 생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초대 공동체라 했지요? 인간인 우리가 한분이시며 삼위이신 주님을 상처받게, 아프게 하면서 환경을 침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고맙게도 영육간의 병원인 고해소를 허락하시어 우리를 끊임없이 치유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이 글을 자매님의 깊은 주님께 바치려는 와중에 아들 녀석이 아직도 판공을 보지 않았다 해서 오늘은 큰소리로 꾸짖어야 했습니다. 다른날 같으면 아빠의 죄를 함께 들추려는 녀석이 많은 공감을 하면서 역시 이 글처럼 이야기가 길어지니 간간히 지루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아마 자매님도 꾸중 듣는 동생의 그러한 표정들이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우리 주님을 믿고 닮고 따르려는 의지를 잃치 않는다면 이 모든 것도 함께 정기 영육의 목욕탕, 또는 주님의 병원으로 초대받아 그렇게 성화 될 것입니다.

 

독탕이거나 특실의 병실이기도 한 고해성사는 한달에 한번이 좋습니다. 십계명을 성찰하시다 보면 먼지와 같은 나의 죄가 보일 것이고 그것을 주님께 내어맡겨 치유받으면 됩니다. 하느님을 얼마나 믿느냐가 관건이며, 우리 본당은 두달에 한번의 고해자까지는 판공성사를 면제해 주기도 합니다.

 

주일 미사는 신자들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아무리 성모님도 계신 보호 울타리라 그런지 몰라도, 얼마나 아버지 말씀을 멸시하고 있기에, 얼마나 말을 안들으면 일년의 고작 두번(부활 판공, 성탄 판공)이 신자의 의무라 규정하겠느냐고? 아들인 너는 도대체가 아직까지 성찰(정개)/고해/보속의 수순도 외우지 못하느냐고 따져야 했습니다. 이 또한 자매님과 마찬가지로의 저의 그동안 잔소리로써의 여파인듯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큰 은총이겠습니까?

 

우리가 수호천사이신 성세명의 그분(천국은 모두가 하느님과 한마음 한 몸이십니다)을 닮아가듯 그렇게 가까운 분들께 죄의 하나 하나를 양파껍질 벗기우듯 그렇게 두번째 아담(예수님)과 하와(성모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자아를 무조건 하느님 제대위에 올려 바칠 수 있는 여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첫 토요일 신심일입니다. 첫 토요일 신심은 전례를 우선시하는 다수의 우리 가톨릭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의 영광과 함께 빛의 신비를 각 장미 꾸러미를 함께 받고 묵상하면서 인간인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서 묵주기도 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슴을 보게 됩니다. 묵주기도하는 이들은 천국에서도 성모님 망또로 보호받기 때문입니다.

 

모처럼 자매님 덕분에 첫 토요일 신심의 한 여정을 함께 걸을 수 있어 좋습니다. 자매님이 제게는 성모님이십니다. 자매님의 어머님도 당연히 저에게 성모님이십니다. 지난날 우리 성당의 신부님을 외사랑하던 어떤 정신 이상의 여인이 교우들에게 묵주까지 빼앗겨 짖밟힘을 당할 때 그녀에게 당신이 성모님이라 하였더니 나중에 아들과 함께 성체조배도 정말 열심히 바치더군요. 이것은 단순하고 특별한 평화의 사건입니다.

 

성령강림을 주보로 허락 받으신 당시의 신부님은 이럴경우 정신이상의 자매에게 호통을 치는 다수의 신부님과 달리 언제나 자애로운 미소를 잃치 않고 그녀의 악수를 대충 받아주시기만 했는데 왜 그러셨을까요?

 

평화의 도구이신 자매님이 다만 이제로부터 영원히 평화의 도구로써 거듭나시길 기도 기억하겠습니다. 사순 5주일 미사때에 자매님과 동생을 함께 기도 기억할 수 있게 되어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지금 스케줄 표에 메모해도 되겠지요?).

 

이왕이면 자매님과 동생분의 세례명도 함께 주시면 좋을 뻔 했네요. 오늘도 말이 좀 길어 죄송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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