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대림 제3주일(가해) 마태 11,2-11; ’22/12/11

인쇄

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11-27 ㅣ No.5231

대림 제3주일(가해) 마태 11,2-11; ’22/12/11

 

 

 지지난 주일에 우리는 소공동체에서 어떻게 복음 나누기 7단계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았습니다. 서울대교구에서 1993년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소공동체 사목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냥 단순히 복음을 읽고 개인적으로 묵상하고 나눔을 하는 것으로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저는 구요비 주교님을 본당 신부님으로 모시고 구로동에서 구역반장 모임에서 복음을 읽고 나눔을 하면서 모임을 했습니다. 그 후 한국천주교회에서 아시아 주교회의가 주관하는 소공동체 사목 연수에 서울대교구의 사제와 수도자를 파견하고, 당시 구로동 성당에 새로 주임사제로 부임한 정월기 프란치스코 신부님이 아시아 주교회의 소공동체 연수를 받고 오셔서 우리 신부 수녀들이 먼저 복음나누기를 해보자고 하셔서 시도해 보았습니다.

 

처음 복음나누기 7단계를 하였을 때는 정말 한마디로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깊이 묵상한 다음 진솔하게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비추어 나누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롯한 성경의 본질적인 내용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와닿는 단어를 순간적으로 고르고, 표피적으로 묵상하고 나눈다는 것이 너무 가볍고 형식적이며 마치 아이들 장난처럼 느꼈습니다. , , 자신이 고른 말씀을 예언자처럼 외친다고는 하나, 겉으로 세 번 속으로 세 번씩 소리를 내서 외친다는 것도 쑥스럽고 거북해서, 속으로 삭이고 감추며 점잖은 것을 우선시하는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맡고 있던 가톨릭노동청년회의 사주간 회의 중 한 주간에 복음나누기를 하는 날이었는데, 평소에 복음을 읽고 나누는 것을 회원들이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한번 복음나누기 7단계로 나누자고 제안하고 그대로 하였더니, 회원들이 아주 쉽게 진행해나가고 나눔도 술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 이 복음나누기 7단계라는 것이 우리 같이 성경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성경을 읽으면서 그 성경 기사가 나온 역사적 배경과 공동체의 논쟁문제를 파악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구체적인 공동체의 현실을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 것인지를 깨닫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이른바 역사전통적인 접근방법과는 달리, 처음 성경을 접하고 비전문가인 평신도들이 읽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데는 아주 좋은 방법론이구나!’라고 깨닫게 되었고, 그날 이후로는 평신도들과의 모임에서 이 복음나누기 7단계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단 자신의 마음에 와닿는 복음 말씀을 나누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누는 복음의 말씀이 뜻하고 이르는 말씀이 어떤 가르침인지를 따로 실천약속을 위한 안내라는 항목으로 적어서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신자들과 복음 나누기를 하면서, 겪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어떤 신자들은 살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겪어온 여러 가지 경험들이 있어서 그런지,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내가 오늘 여기서 이 말을 하면, 저 사람이 내일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이 말로 나를 우습게 여기거나, 나에게 손해가 되지는 않을까? 오늘 내가 여기서 이 말을 하면, 내일 다른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이 이야기를 가지고 안줏거리로 삼으면서 나를 우습게 여기지나 않을까? 이렇게 나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열고 자신의 삶을 나누면, 주위의 사람들도 같이 마음을 열고, 어렵고 힘겨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줄 텐데, 항상 그렇지만은 않았던 과거의 나쁜 경험들이 내 마음을 닫게 하고, 다른 이와 나의 삶을 나누고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나누기를 2의 고백소라고 말하며, 그 모임에선 나눈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언급하지 않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배려해 주도록 안내합니다. 그런가 하면 나누는 이도, 정말 자신이나 누군가의 삶에 큰 영향을 주고받을 내용이나 고해성사 거리는 나눔에서 나누지 않도록 안내합니다. 사랑이 많은 사람 그리고 자기 나눔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을 정도로 여유와 내적 영적 힘이 있는 사람은 내가 나누는 만큼 남도 나누고 우리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쉽게 자신을 열고 나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마음을 열 수 있는 만큼, 자신의 인격과 삶을 내놓을 수 있는 만큼 나누게 됩니다.

 

이런 분 중에는 복음을 나누지 말고 그냥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복음에 대한 설명만 해주면 좋겠다고 바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나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되는 성경연구나 성경공부와는 달리 복음나누기는 예수님에 대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자신의 삶 안에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이 자신의 삶에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지를 적용하고자 자신의 깨달음과 삶을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과 예수님에 대해 혼자 알게 된 것에 대해 감탄하고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복음나누기는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면서 어떤 은총을 내려주셨고,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시고자 하시는지를 깨닫고, 예수님께서 내 삶에 함께하시면서 나를 이끄시고 힘을 주시며 지지해주시는 삶의 현장과 역사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복음나눔을 듣는 이는 그 사람의 나눔을 통해 주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면서 그에게 어떤 은총을 내려주시며, 어떻게 그를 이끄시고 활동하시는지를 발견하고 감격하고 감사드리며, 내게도 그와 함께하시면서 활동하시는 주님께서 나와도 함께하시면서 활동해주시기를 청하게 됩니다. 또 고통받고 방황하고 혼돈 속에서 힘겨워하는 그의 삶 속에 주님께서 어떻게 함께하시면서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 그와 함께하도록 이끄시고 초대하시는지 깨닫게 해주십니다.

 

주님을 믿고 싶은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다가오셔서 마음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고 함께하시며 주님을 드러내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여 결국 믿게 해주십니다. 하지만, 믿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마음과 영의 눈과 귀를 막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와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처럼 복음을 나누면서, 주님을 자신의 삶 한가운데 초대하고 주님과 주님께서 사랑하셔서 나와 함께하도록 보내주신 형제자매들과 삶을 나누면서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복음을 나누며 나를 열고 주님께서 나와 내 형제자매들을 통해 활동하시기를 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모임에는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은총을 내려주시고,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함께 활동하는 이들에게는 은총을 내려주셔서 열매 맺어 주십니다. 하지만, 복음에 빛에 비추어 나를 살피고 주님 사랑에 힘입어 나와 내 삶을 나누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통해 드러나는 주님의 사랑이 그 사람의 딱딱한 마음 안에서 시들어 버리고, 결과적으로 주님과 형제들과 떨어져 고립되며, 혼자 외롭고 힘겨운 사투를 하게 됩니다. 주님도 형제들도 주님과 형제들과 삶을 나누기를 꺼리며 멀어져 가는 이에게는 어떻게 함께할 수도 도움을 줄 수도 없게 됩니다.

 

어느 시골 본당의 한 구역은 농촌의 비닐하우스였습니다. 그 동네에 가서 구역반모임을 하게 되면, 하루 종일 비닐하우스에서 일하고 비닐하우스로 된 한 집에 모여 복음나누기를 하게 됩니다. 온종일 구부리고 일해서 허리도 아프고 피곤하고 배고픈데도 밥먹기 전에 복음나눔부터 합니다. 그중 어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글자를 읽지 못하는 분도 계시고, 잘 보이거나 들리지도 않지만, 옆에서 돌아가면서 읽는 성경구절을 귀로 듣고서는 성경말씀을 고르고 그 성경말씀에 비춰 자기 삶의 보석 같은 나눔을 합니다. 그럴 때면, 보이고 안 들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누고자만 한다면, 참 하느님의 생명을 누리고 기뻐하시는구나!’ 하는 감탄과 감사를 올리게 됩니다.

 

형제자매들과 복음을 나누면서, 주님 말씀에서 예수님을 뵈옵고 기뻐하신 적이 있습니까?

형제자매들과 복음을 나누면서, 주님 말씀에서 길을 찾고 기뻐하신 적이 있습니까?

형제자매들과 복음을 나누면서, 주님 말씀에서 참 진리를 깨닫고 기뻐하신 적이 있습니까?

형제자매들과 복음을 나누면서, 주님 말씀에서 새 생명을 얻고 기뻐하신 적이 있습니까?

형제자매들과 복음을 나누면서, 형제자매들의 삶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을 발견하고 기뻐하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복음을 나누면서, 우리 삶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발견하고,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깨달으며, 환희 속에 잠기며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와 연관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선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7)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또, “풍요로운 우정으로 꽃피우는 하느님 사랑과 만남으로써, 또는 그 사랑과 새롭게 만남으로서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고립감과 자아도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더욱 인간다워질 때, 곧 우리 자신을 벗어나 우리 존재의 가장 완전한 진리에 이르도록 이끄시는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길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인간이 됩니다. 바로 여기에 복음화 활동의 원천이 있습니다. 따라서, 삶의 의미를 되찾아 주는 사랑을 받았는데, 어떻게 이 사랑을 다른 이들과 나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8)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마태 11,6)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0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