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주님 성탄 대축일(가해) 요한 1,1-18; ’2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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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12-09 ㅣ No.5245

주님 성탄 대축일 밤미사(가해) 루카 2,1-14; ‘22/12/24

 

 

 

 

 

여러분 성탄 축하드립니다.

 

오늘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따지고 보면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집 막내아들'보다 훨씬 더 많은 예지와 능력을 갖추고 계신데도, 예수님은 그것을 돈을 버는 데나, 온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는 데나, 박사학위나 미디어에 나오는 스타들이 되는 데에 그 예지와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그냥 평범한 어린 아기로 오셨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가 몹시 어렵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면은 물론이고 삶의 여유가 없어지고 아주 팍팍하게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아기를 한번 보십시오. 아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지 않아도, 우리가 바라보는 그 자체로 행복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그때 이 사람과 결혼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그때 이 길로 접어들지만 않았어도, 내가 그때 이리로 이사 오지만 않았어도, 내 자식이 그때 그렇게 되지만 않았어도,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 않았을텐데 하며 아쉬움과 후회 속에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과거가 어떠했든 이유가 어떠했든,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나셨어도, 심지어는 가난한 목동들이 보기조차 안쓰럽게 가난하고 헐벗게 태어난 예수님. 그래서 어쩌면 역설적으로 가난한 목동들에게 기쁨을 선사하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오늘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오늘을 만족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의 처지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인생의 오늘에 선물로 오신 예수님을 마음에 담으면서, 스스로 안분자족하고 안빈낙도하면서 기쁘게 살아갑시다. 그리고 오늘 아가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선물이듯이, 우리도 오늘을 쓸쓸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일가친척들과 이웃들에게 선물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줍시다. 교황님께서는 우리에게 성탄 비용을 줄이고 우크라이나와 난민들에게 사랑을 나누자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모신 것으로 행복하고, 이웃 형제자매들에게는 예수님을 모신 우리의 행복을 전하여 함께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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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탄 대축일 서울대교구장 성탄 메시지(가해) 요한 1,1-18; ‘22/12/25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봅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2)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을 구원하시는 빛으로 오시기를 고대해 왔던 구세주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님 성탄을 맞이하여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그리고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 또한 북녘 동포들과 전쟁의 참화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포함한 세상 온 누리에 주님 성탄의 은총이 충만히 내리기를 기도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천여 년 전 유다 지방의 베들레헴이라는 다윗 고을, 산골 마을 어느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다윗 가문의 메시아가 말구유에 누워 계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영광스러운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라, 아주 초라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진 아기 예수님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얼기설기 엮어진 마구간 지붕 사이로 밤하늘의 별들이 들어옵니다. 아기 예수님의 그 맑은 눈동자가 하늘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발밑만 보지 말고, 가끔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우리네 삶이 고달프고 팍팍하여 그저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멀리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품이 좁아지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각자 극과 극으로 달려가며, 서로 대립하고 대치하고 배척하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음을 사회 여러 분야에서 보게 됩니다. 기술 발전이 가져온 사회관계망(SNS)을 통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시공의 제약을 넘어 통교를 가능케 하는 고마운 기능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내면까지 이어주는 인격적인 교류로 깊어지기보다는, 자기주장 또는 자기과시의 무대가 되거나 상대적인 박탈감과 소외감을 조장하는 자리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현대의 기술 문명이 외적이고 피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도록 부추기는 영향 때문인지 현대사회는 눈을 들어 멀리 보고, 높게 보는 법을 잊어버린 듯 보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아기 예수님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삶의 의미와 가치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와 더 높은 가치가 있음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발밑만 바라볼 때, 혹은 앞만 바라보고 달릴 때 옆 사람은 경쟁자로 보일 뿐이지만,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저 높은 곳을 향할 때, 서로는 길동무가 되고 더 가까이 다가가고 만나게 됨을 체험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 만연하고 있는 배타와 배척, 대립과 대치를 넘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경청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눈을 들어 저 멀리, 저 높이 바라볼 수 있을 때, 서로는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이고 이웃임을 알게 됩니다. 피상적인 가치, 물질적인 가치에 매몰되어 서로를 경쟁자로만 여겨 밀치기보다는 더 깊은 의미와 더 높은 가치를 볼 수 있을 때, 실은 우리 모두가 서로 이웃이고 함께 나아가는 길동무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류 문화가 여러 면에서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어 자랑스럽지만, 우리에게는 더 큰 가치를 두고 추구하고 증거해야 할 궁극의 한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북이 참된 평화를 건설하여 전쟁으로 갈라지고, 패권으로 갈라지고 있는 세계에 평화의 길을 보여주고 제시하는 그런 새롭고도 선도적인 한류입니다. 참된 평화는 그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경청하고 포용하는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눈을 들어 저 높은 하늘을 바라봅시다. 눈앞의 가치, 피상적인 가치를 넘어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가 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은 눈을 들어 더 높은 가치를 바라보라고 우리를 깨우치십니다.

 

성탄의 기쁜 은총이 여러분과 가족들, 그리고 온 겨레와 세상 모든 이들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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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성탄 대축일 꽃꽂이

https://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5&id=189497&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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