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수요일의 어느 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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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연 [wjyhs2] 쪽지 캡슐

2000-09-22 ㅣ No.914

+ 찬미예수님

 

저는 난곡동 본당의 3지역 1구역 1반에 소속된 원재연 하상바오로입니다.

 

지난 수요일, 저는 아내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고집을 피워서 기어코 저희 반모임에 참여하고 말았습니다.

 

저희 가정은 저희 부부는 물론 아이들(2남1녀)도 모두 신자들이므로

 

미사참례를 비롯한 성당활동에 모두들 긍정적입니다.

 

그런데, 왜 ? 저의 아내가 반모임에 참석하려는 저를 만류했는지 아십니까 ?

 

그날 저는 오후 6시 약간 넘어서 퇴근한 직후 아내로부터, 오늘 저녁에 반모임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같이 가자 !"고 했더니, 한사코 자기만 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동안 어리둥절했고, 자꾸만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봐달라"고 애원하는

 

아내의 얼굴을 멍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지난 7월 저희 집에서 있었던 반모임 때, 저희 반장 자매님이 형제분들도

 

앞으로 "많이 참석해달라"는 부탁을 듣고 그자리에서 그렇게 하겠노라고 기꺼이

 

약속했던 사실을 떠올리면서,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내가 약속한 바를 지키기 위해서도

 

반모임에 반드시 나가야겠다"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는 반모임에는 주로 자매님들이 많이 오고, 또 형제분들의 모임은 따로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반신반의하면서 그래도 지난 번에 반장님이 참석하라고

 

했으니, "나는 참석해야 겠다"고 하면서 저희 식구들의 ’총출동(?)’을 독려했습니다.

 

반모임이 예정된 신자분의 집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골목에서 지난 번에 만났던 신자분들을

 

하나씩, 둘씩 만났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반장님이 모임에서 전달해줄 <<난곡본당25년사>>와 예수님의 석상을 커다란 상자에 담아서

 

무거워하시길래, 일행 중 젊은 형제는 저뿐이었으므로 팔을 걷어부치고 낑낑거리며

 

그 상자를 모임이 있는 신자분의 집으로 날랐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상석(?)에 대접을

 

받았고, 아내의 고집을 완전히 꺾었다는 생각에 내심 승리감에 흠뻑 취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곧 왜 그토록 아내가 혼자만 가겠다고 우겼는지 깨닫게 되면서,

 

갑자기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저의 개구장이 두 아들 놈이 그 집의 살림살이들에 함부로 손을 대면서,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소음들을 남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화분에 정성스레 꽂혀진 영양제 주사기를 꼽았다

 

뺐다하는 큰 놈을 말리면, 어느 새 작은 놈은 참석한 신자분들을 위해 준비한 과자

 

봉지들을 몽땅 틀어안고, 혼자서 다 먹겠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나는 온갖 인상을 지푸린 나지막한 고함과 협박과 회유를 동원하여 두 놈의 장난을 말리고

 

또 달랬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젖먹이 딸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평화롭고 고요하던 그곳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이럴 줄 알고 집 사람이 나보고 아이들 보면서 집에 있으라고

 

했구나 !" 하는 생각을 했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묵상 나눔에서 내 차례가 되자, 나는 별다른 할 말도 없고 해서 "아이들이 너무 버릇없게

 

굴어서 정말 죄송합니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러자 내 옆에 계시던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아이들은 다 그렇지요 !"하면서

 

웃어 넘기며 오히려 위로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무안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나는 화장실에 들락거리고, 현관 밖으로 들락거리면서 좌중을 휩쓸고 다니는

 

아이들, 과자 부스러기를 함부로 흘리는 아이들 때문에 계속 바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반장님은, "본당에 보고할 때는 이런 아이들의 참석 숫자도 다 보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남녀노소 할 것없이 전 신자가 반모임에 함께 나오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굉장히 위로가 되는 말이었습니다.

 

이날 저희 반모임에 나온 사람은 연세가 높으신 형제님 한 분과 저,

 

이렇게 2명의 남자를 포함하여 대략 10명 정도로 좁은 거실이 꽉 들어차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반장님께서는 거듭 참석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였고, 저는 그때마다

 

"그래도, 고집 피워서 온 보람이 있었구나!" 하면서 옆에 게신 분들과 신앙생활의 경험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했습니다.

 

과연 "두,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하겠다"(마태18,2)하신

 

주님의 말씀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절히 내 마음에 메아리쳐 왔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계속 반 모임에 나와야지 !  물론 우리 식구들 모두 데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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