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둘째 미사 ’21/11/02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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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10-23 ㅣ No.4826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둘째 미사 ’21/11/02 화요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은 죽은 모든 이, 그들 가운데 특히 연옥 영혼들이 하루빨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오늘 세 대의 위령 미사를 봉헌해 왔습니다. 이러한 특전은 15세기 스페인의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는 모든 성인 대축일111일부터 8일까지 정성껏 묘지를 방문하여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안타까워하면서 말합니다. “신부님, 우리 남편은 재주가 없어요. 하는 일마다 다 잘 안 되요. 직장도 몇 일 못나가고, 사업한다고 벌이는 일도 날리기만 해요. 직장 다닐 때 승진은커녕 쫓겨나듯이 나와 버렸고 돈도 잘 못 벌어와 나 고생 시키는 남편이 원망스럽기만 하고 불쌍하기까지 해요.”

 

그렇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게 남편이 못나서 그런 것인가요? 아니면 사회가 선한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고 부려먹고 이용해 먹으려고 해서 그런 것인가요? 착하고 선한 것이 죄인가요? 잘못인가요? 아닙니다. 선하고 성실한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살게 하는 사회가 문제입니다.

 

오늘 두 번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로마 5,18)

 

어쩌면 바보 같고 모자란 것 같은 내 남편이 우리 인간 사회를 망하지 않고 살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약삭빠르게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남에게 줄 것 안주고, 남의 것 빼앗으며 승승장구할 때에 바보처럼 뺏기기나 하면서 밀려나듯 살아가는 선하고 착한 사람들이 그나마 이 사회를 지탱하고 살아가도록 유지시켜 주고 있습니다.

 

약육강식과도 같은 사회에서 너도 나도 아귀다툼 하며 무한경쟁의 각박하고 잔인하다 못해 비인격적인 물질적 이전투구로 아비규환의 전쟁터 한 가운데서 우리를 살려주는 이들은 권력자들과 승리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소외되고 밀려난 것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대신 피해 받고 희생당한 사람들 덕에 우리가 오늘을 죄스러운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것을 바라십니까?

여러분의 남편이나 가족이 사회생활을 한답시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짜게 해 놓고, 남을 제치고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바라십니까?

 

아니면, 바보스럽고 오늘의 현세를 힘겹게 살아도, 다른 사람에게 원망과 협박 안 받고 살아가길 바라십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삶입니까?

지위가 높고 물질적으로 풍족한 자리에 오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인심을 다 잃고, 그나마 자기가 가진 것 지키겠다고 가족과 친지 일가친척 모두에게서 등을 지고 원망을 받는, 소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의 삶을 사시길 바라십니까?

 

아니면, 비록 높은 자리를 꿰차지는 못했어도, 삶이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아도, 오늘 굶지 않고 가족과 일가친지들과 나름 관계를 가지며 살아가기를 바라십니까?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5-26)

 

어쩌면 바보 같은 내 남편은 실제로 바보천치가 아니라 주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주 예수님처럼. 주 예수님의 후예답게 주 예수님을 따라 세상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폭행에 대신 희생되고 봉헌된 번제물처럼!

 

오늘 첫 번째 독서 지혜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지혜 3,1-6)

 

자신의 잘못과 죄악 때문이 아니라, 선하고 착해서 그리고 주님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현실을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28-30)

 

주 예수님을 믿어 현세 안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진실하고 충실하게 이루시는 여러분, 여러분 앞에 펼쳐지는 세상이 여러분을 기꺼이 반기지 않을지라도, 주 하느님께서 주님을 믿고 따르는 많은 백성들과 함께하시며 내려주시는 은총과 축복의 힘으로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이루며, 마지막 날 돌아가신 성인들과 함께 주님 품 안에서 온전히 받게 될 영광의 새생명을 지금 여기서부터 얻어 누리게 되시길 빕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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