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구유는 왜 만들가요? ^^*

인쇄

김락준 [tutti] 쪽지 캡슐

2012-12-26 ㅣ No.11051

 
 
 


성탄절이 다가오면 본당마다 구유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어린 자녀와 함께 만들어 불을 밝혀놓고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가정도 많다. 
이 아름다운 성탄절 풍습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구유는 성 프란치스코가 1223년 이탈리아 그레치오성당에 
처음 설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프란치스코는 베들레헴 순례 때 
예수가 탄생한 마구간 구유를 보는 순간, 하느님의 아들이 
가난한 모습으로 인간에게 오신 데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사실은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대성당 위층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난 유명한 중세화가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1337)가 
성인의 생애를 묘사한 28개 프레스코화 가운데 
13번 째 작품<그림>을 통해서다.  

 

  (아기 예수를 안는 성 프란치스코. 지오토 디 본도네 作.)
 
구유 만드는 풍습은 왜 생겼을까? 그림 속 프란치스코는 무릎을 꿇고 양 팔을 벌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다. 그의 작은 형제들(수사)과 신자들은 물론이고 소와 염소까지 구유 옆에 앉아 이 엄숙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여인들도 문가에서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를 보고 있다. 또 좌우 양편에서 수도복을 입은 수사 4명이 고개를 들고 목청 높여 찬미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고 걸식으로 살아가던 탁발 수도자 프란치스코가 이처럼 구유 예절을 엄숙하게 거행한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당시 유럽 사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카타리파(Cathari)라는 이단 종파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웠다. 카타리파는 인간이 사는 현세는 악의 창조신에 의해 지배되는 곳이기에 결혼, 물질, 육식, 재산 소유 등을 배척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그리스도가 살과 피를 지닌 인간으로 태어났을 리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은 단지 영적 존재라는 게 이들 주장이었다. 이들은 교계제도조차 거부했다. 카타리는 '청정파(淸淨派)'라는 뜻이다. 문제는 이들 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급진적 성향의 개혁가, 청빈과 금욕의 이상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이들을 추종했다. 특히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중남부에서 혼란이 심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이에 대항해 예수가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성탄 구유를 생각해냈다. 문맹자가 많은 중세시대에 그림이나 구체적 형상은 교육적 효과가 높았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구유는 빠르게 확산돼 오늘날 빼놓을 수 없는 지구촌 성탄절 풍습이 됐다. 결과적으로 성 프란치스코의 구유는 이단 확산과 교회 분열을 막는 데도 기여한 셈이다. (평화신문-김원철 기자)


 

 

 






153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