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님께 드리는 사랑의 편지

SO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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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cathol7] 쪽지 캡슐

1999-06-14 ㅣ No.376

 추기경님 요사이 날씨가 매우 덥습니다. 건강하신지요?

   

 추기경님께서 관심 가져주신 덕분에 저희 대학 모임이 날로 커져 가고 있습니다.

 작년 7월부터는 서울대 fiat 모임만이 아니라 다른 대학교 학생들도 명동 성당에 모여서

 대학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모임은 서울대 내에서 대학내의 모든 가능한 평신도 사도직 활동에 필요한 힘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기도회 내에서 자체 봉사자를 양육함은 물론 예비자 교리반 봉사자도 양육해서 현재 예비자 교리반도 작지만 훌륭하게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1999년1학기)에는 '함께 하는 여정'이라는 서울대교구에서 실시하는 예비자 교리반 교육을 저희 봉사자들이 이수했습니다. 그 봉사자들이 주축이 되어 평신도 대학생, 대학원생들이 직접 봉사하는 예비자 교리반을 운영하여 사목자의 손이 전부 다 닿지 못하는 공간에서 사도직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다른 대학 학생들이 모인 명동 모임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성모님과 함께 하는 다락방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일반 회원들은 그 시간에 기도하러 모이고 각 대학에 파견될 봉사자들은 그 모임 시간은 물론 다른 시간에 모여서 별도의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토요일 오후가 유혹이 많은 시간이지만 성모님의 도움으로 처음에 네 다섯명이 시작했던 모임이 이제는 40여명이 넘는 모임으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모두 다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신 일들이고 그 시간을  성모님께서 함께 해 주셨기 때문이고  추기경님께서 격려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은 교구청 별관 김석원 신부님 사제관에서 모임을 아늑하게 가질 수 있었는데 모임이 차차 커지다보니 3주전부터는 더 이상 그곳에서 모임을 갖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땅한 모임 장소가 마련되지도 못한 상태여서 두 주동안 명동 성당의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기도 모임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장소의 혼란으로 인해서  멀리서 명동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사람들도 생기고 봉사자는 물론 회원 모두가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두주동안 명동 범우관의 한 모임방과 문화관의 소강당을 사용했는데 모임 시간도 저희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또 시간당 4만원정도에 달하는 사용료를 지불해야만 해서 매우 난처한 경우를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식으로 운영될 경우 봉사자들의 봉헌과 김석원 신부님의 지원금이 매달 32만원씩 정말 별 의미 없이 낭비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은 장소의 불안정으로 말미암아 대학생들을 주님과 만나게 해서 젊음을 주님께 바칠 수 있도록 키워내야 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없다는 일입니다. 저의 좁은 소견의 소치일 수도 있지만 한국 가톨릭의 서구 유럽의 가톨릭 교회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너무도 명확한데, 그 일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오히려 교회 내에서 갈 곳을 못 찾는다는 현실이 제일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서론이 길기는 했지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추기경님!

 편지를 쓰는 도중 '오늘은 이녀석이 왜 이리 설을 길게 풀어 나가나?'하고 의아해 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가끔 주님의 복음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에 봉착하면, 주님께 '이 일이 내 일 아니니 주님 알아서 하십시오!' 하고 배짱을 부릴 때가 있습니다. (98년 서울대 개강 미사때도 사실 그랬습니다.) 이번 일도 제 힘으로는 도대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어서 이제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는 마음으로 이렇게 추기경님께 편지를 드립니다.

 

  서울 각 지역에서 많은 대학생 젊은이들이 모여 오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은 명동이 제일 좋은 장소인 것 같습니다. 추기경님! 저희가 구하는 바는 다만 젊은 대학생들이 모여서 기도할 수 있고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아늑한 공간하나, 그것 뿐입니다. 도움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대장이 빨치산이다보니 그 대장을 따르는 이들도 정규군이 아니어서 어디가서 인정도 못받고 군인이면 당연히 먹어야 할 건빵(?)도 그동안 못 먹여줘서 제가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야전기지까지 잃어서 제가 후배들보기가 민망합니다. 다만 한가지 위안 받을 수 있는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하고 끝가지 참고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책망하고 훈계하고 격려하시오.'(디모테오후서4:2)입니다.

 

바쁘신데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리스도의 최전선에서 비상 SOS가 왔다고 여기시고 보급로를 열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99, 6월 14일

                                   빨치산 대장 이광호 베네딕도 올림

 

 추신) 추기경님! 지난번에 주고 가신 '실탄'은 이미 벌써 다 떨어져서 탄띠와 탄피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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