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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오해하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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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숙 [pcsky] 쪽지 캡슐

2000-08-06 ㅣ No.1037

하느님,

하느님, 오해하지 마세요."


예정에 없던 나만의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져서
못처럼 느끼는 여유로움에 편안하게 뒹굴며
그동안 마지막 장을 남겨놓고 있던 책을 읽었다.

직장인 성서봉사자 교육를 담당 하시던
원장수녀님으로부터 로핑크 신부님의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라는 책을 읽고 공부좀 해보라는 메일을
받았었다. 그것을 거의 한달만에
지금에야 비로소 책장을 덮었다


예수님은 물론 하느님의 질서가 지배하는 공동체를 원하셨다.
하느님의 질서를 실천하는 그런 공동체-
예수님을 믿기에 예수님이 제시한 규범과 질서를 따라야 하는데

우리는 성당에 가면 "음, 맞아."
그러고 성당 문 밖에 나오면
다시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 전투하듯이 긴장하고, 시기하고, 헐뜯고,
경쟁을 벌이고… 뭐 그렇게 산다.
우리는 이런
’신앙 따로 행동 따로’의 생활을 여건상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고 사나요?"하는 말도
아주 쉽게 들을 수가 있다.

로핑크 신부님의 저서는 이런 ’따로 신앙’의 시작을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서 찾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 나라를 ’저 위’라는 개념으로
순전히 미래적이며 초월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질서를
’지금 여기서’ 실천하여야 하고,
그 하느님의 질서는 산상설교를 통해 예수님께서 명백히
제시하셨으며, 이것은 그냥 사유적인 윤리 도덕이 아니라
실천윤리라는 것이다.


로핑크 신부님은 단호히 이렇게 말한다.
"참 하느님 공경은
아름다운 말이 아니라 올바른 실천에 있다."


비록 교리를 물으면 "에유, 나는 몰러유."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착하게 살아가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이 사회에 모범이 될 대조사회로서의 하느님 나라 모습이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나서
마태오 복음서의 ’여장규칙’(10,9-10)을 보고
이 복음대로 살겠다는 청원을 했던 프란치스꼬 성인과
이를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중세 지도자들의 갈등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는 ’믿는다’고 하면서 믿는대로 살지 못했다.
자기 모순인 것이다. 내가 믿는 것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말씀인데 나는 예수님의말씀과
지시를 그저 고이 액자에 넣어놓고 바라보는
’박제 복음’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신앙고백은 결국 입에 발린 소리이고,
입에 발린 믿음인 셈이다.

믿는가? 그렇다면 믿는대로 실천하라!


"하느님, 오해하지 마세요.
제 믿음은요 이기적이예요."
"저도 먹고 살아야지요.
언제 하느님이 먹을 것 주셨어요?
내 힘으로 벌어먹었지."

사랑의 실천을 못하는 믿음이

저 깊은 곳에서 아우성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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