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대림 제4주일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 (Misericordiae Vultu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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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5-12-20 ㅣ No.3019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대림 제4주일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 (Misericordiae Vultus)3

(다해) 루카 1,39-45; 15/12/20


지난 주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 9-16항에 이어 오늘은 17-25항 끝까지 보겠습니다.

17. 주님께서는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며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모르는 체해 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버리시리라(미카 7,18-19 참조).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이사 58,6-7.10)


18. 저는 자비의 선교사들을 파견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하느님 백성을 보살피는 교회의 어머니다운 배려의 표지가 되어 참으로 신앙의 근본이 되는 이 자비의 신비가 지닌 부요에 하느님 백성이 깊이 들어가게 해 줄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로마 11,32). 실제로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자비의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19. 저는 하느님의 은총과는 멀리 떨어진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간절히 요청합니다. 저는 죄와 맞서 싸우시지만 죄인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아드님의 이름으로 이를 요청합니다. 인생이 돈에 달려 있고 돈 앞에서는 그 무엇도 가치와 존엄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돈이 곧 힘이라는 끔찍한 덫과 허상에 빠져 범죄조직의 폭력에 의지하지 마십시오.

 

20. 정의와 자비는 두 가지 대립하는 실재가 아니라 오히려 한 실재의 두 가지 차원으로 충만한 사랑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정의가 하느님의 뜻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것임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단순히 의인들과 죄인들로 나누는 율법의 준수를 정의로 여기는 관점에 맞서시며, 죄인들을 찾아 그들에게 용서와 구원을 주는 자비의 위대한 은사를 보여 주시고자 합니다. 율법에서 죄인으로 여겨지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우리는 그분의 깊은 자비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를 의롭게 해 주시는 자비로 구원을 가져다 주십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용서입니다(시편 51[50],11-16 참조).

 

21. 자비는 결코 정의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에게 다가가시는 하느님의 활동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에게 참회하고 회개하여 믿도록 하는 많은 기회를 주십니다. 하느님의 분노는 잠시이지만 그분의 자비는 영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와 용서로 정의를 넘어서십니다. 죄인은 용서의 온유함을 느끼고 회개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은총으로 모두가 받은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22. 희년에는 대사도 수여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용서하여 주실 준비가 되어 계시고 또한 늘 새롭고 놀라운 방법으로 끊임없이 용서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은총의 힘을 느끼지만,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죄의 힘도 느낍니다.

 

교회는 성인의 통공으로 살아갑니다. 성찬례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인 이 통공은 우리를 성인들과 복자들과 영적인 결합을 이루게 합니다(묵시 7,4 참조). 성인과 복자들의 거룩함은 우리의 나약함에 도움을 줍니다.

 

23. 이 자비의 희년에 고귀한 종교 전통과의 만남이 촉진되기를 빕니다. 이 희년에 종교인들이 모두 닫힌 마음과 서로 무시하는 마음을 없애고 모든 폭력과 차별을 몰아내기를 바랍니다.


24. 마리아의 온 생애는 사람이 되신 자비의 현존을 따라서 이루어졌습니다. 마리아께서는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어 당신 마음 안에 하느님 자비를 고이 간직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 자비로운 눈길로 우리를 끊임없이 바라보시며 우리가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자비의 얼굴을 바라보게 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25.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당신 생명을 나누어 주시려고 언제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두십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 희년에 교회가 하느님의 말씀을 널리 전하여, 용서와 지지, 도움과 사랑의 행위와 말씀이 강렬하고 분명하게 울려 퍼지게 하소서. 언제나 용서하고 위로하며 끊임없이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교회가 모든 이의 목소리가 되어 확신에 차 끊임없이 노래하게 하소서. “주님, 예로부터 베풀어 오신 당신의 자비와 자애 기억하소서”(시편 25[24],6).


         

칙서를 마치며, 대림 제4주일, 자비의 주님으로 다가오시는 아가 예수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제안하셨던 ‘자비의 희년에 바치는 기도’를 다같이 바칩시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이 자비로워지라고 가르치시며

주님을 본 사람은 누구나 아버지를 뵌 것이라고 말씀하셨나이다.

저희에게 주님의 얼굴을 보여 주소서.

저희가 구원을 받으리이다.

주님께서는 사랑이 넘치는 눈길로

자캐오와 마태오를 돈의 종살이에서 풀어 주시고

피조물에서만 기쁨을 찾던 간음한 여인과 막달레나를 구원하셨으며

베드로가 배반을 한 뒤에 눈물을 흘리게 하시고

참회하는 강도에게 낙원을 약속하셨나이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았더라면!”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이 듣게 해 주소서.

주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보이는 얼굴이시며

용서와 자비로 모든 이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얼굴이시니

이 세상에서 교회가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주님의 보이는 얼굴이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주님을 섬기는 이들도 나약함으로 갈아입고

무지와 잘못에 빠진 이들과 함께 아파하기를 바라셨으니

주님을 섬기는 이들을 만나는 모든 이가

하느님의 보살핌과 사랑과 용서를 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소서.

주님의 영을 보내시고 그 기름을 부어 주시어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며

자비의 희년이 주님의 은혜로운 해가 되어

주님의 교회가 새로운 열정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며

억압받는 이들과 갇힌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해 주소서.

자비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통하여 비나이다.

주님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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