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주님 수난 성지주일(나해) 마르 15,1-39; ’20/03/28 성 요셉의 해 교황교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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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03-10 ㅣ No.4594

주님 수난 성지주일(나해마르 15,1-39; ’20/03/28

성 요셉의 해 교황교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IV

 

 

 

 

 

 

 

오늘은 아버지의 마음으로마지막 그림자 속에 있는 아버지를 봅시다.

 

7. 그림자 속에 있는 아버지

폴란드 작가 얀 도브라친스키(Jan Dobraczyński)는 저서 아버지의 그림자’(The Shadow of the Father)라는 소설을 통하여 요셉 성인의 삶을 전했습니다. 저자는 그림자의 좋은 이미지를 이용하여 요셉을 정의했습니다. 요셉은 예수님께 하느님 아버지의 지상 그림자였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을 지켜보고 보호하며, 예수님께서 길을 혼자 가도록 두지 않으셨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에 한 말을 떠올려 봅시다. “너희는 마치 사람이 제 아들을 업고 다니듯,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가 이곳에 다다를 때까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줄곧 너희를 업고 다니시는 것을 광야에서 보았다.”(신명 1,31) 이와 비슷하게 요셉은 살아가면서 부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버지들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단순히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를 돌보겠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이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린이들은 아버지가 없는 고아들처럼 보입니다. 교회도 아버지들이 필요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말합니다.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끌어 주는 인도자가 수없이 많다 하여도 아버지는 많지 않습니다.”(1코린 4,15) 모든 신부와 주교는 바오로 사도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내가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1코린 4,15)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자녀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나는 다시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갈라 4,19)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자녀들에게 삶의 경험과 현실을 접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제지하거나 과도하게 보호하거나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녀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자유를 누리며 새로운 기회들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마도 요셉을 전통적으로 가장 순수한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일 것입니다. 이는 그저 사랑의 표징이 아니라, 소유와는 반대되는 것을 표현하는 모습의 종합입니다. 순수함은 삶의 모든 면에서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것입니다. 사랑은 순수할 때에만 참된 사랑입니다. 소유욕이 강한 사랑은 결국 언제나 위험합니다. 그러한 사랑은 구속하고 옥죄며 불행하게 만듭니다. 하느님께서는 순수한 사랑으로 인류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자유로이 두시어 우리가 심지어 방황하거나 그분께 맞서도록 두셨습니다. 사랑의 논리는 언제나 자유의 논리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특별히 자유롭게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결코 자기중심적이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마리아와 예수님을 자기 삶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요셉은 단지 자기희생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행복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요셉에게서 좌절이 아니라 믿음만을 봅니다. 요셉의 오랜 침묵은 불평이 아니라 믿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서막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고 다른 이들에게 위세를 부리는 독재자는 필요 없습니다. 권위와 권위주의를, 봉사와 복종을, 논의와 억압을, 애덕과 복지 사고방식을, 권력과 파괴를 혼동하는 이들을 거부합니다. 모든 성소는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 곧 성숙한 희생의 결과로 생겨납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성숙함은 사제직과 축성 생활에서도 필요합니다. 우리의 성소가 혼인이든지 독신이든지 동정이든지 상관없이 희생에서 그친다면, 우리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은 실현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 우리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은, 사랑의 아름다움과 기쁨의 표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불행과 슬픔과 좌절을 보여주는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아버지들이 자녀들의 삶을 자신들을 위하여 살도록 하려는 유혹을 뿌리칠 때 예상 밖의 새로운 앞날이 열립니다. 모든 자녀는, 자녀의 자유를 존중하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때에만 드러낼 수 있는 특별한 신비를 간직한 존재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무용해졌을 때 비로소 아버지와 교육자의 역할을 다하였다고 느낍니다. 자녀가 자립하여 자기 삶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 그리고 자녀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 자신의 보호에 그저 맡겨져 있었던 것뿐이라는 것을 언제나 알고 있었던 요셉의 입장이 되었을 때입니다. 결국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이해시키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마태 23,9)

 

부성을 보여주어야 할 때 소유가 아니라 더 큰 부성을 보여주는 표징이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분명 어떠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요셉과 같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그림자이며, 그분은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시고”(마태 5,45), 성자를 따라가는 그림자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가라.”(마태 2,13)고 요셉 성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교황 교서의 목적은, 이 위대한 성인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키우고 그분의 전구를 청하며 그분의 덕행과 열정을 본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인들의 고유한 사명은 기적과 은총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모세처럼, 그리고 중개자”(1티모 2,5)이시며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1요한 2,1)이시며 살아 계시어 그들을 위하여 빌어 주시는”(히브 7,25; 참조: 로마 8,34) 분이신 예수님처럼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는 것입니다.

 

성인들은 모든 신자들이 성덕과 자기 신분의 완성을 추구하도록도와줍니다. 성인들의 삶은 복음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참조)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성인들의 삶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입니다. 바오로 성인께서는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1코린 4,16)라고 분명하게 권하십니다.

 

많은 거룩한 이들의 모범 앞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자문하십니다. “그분들이 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왜 못하겠습니까?” 그리고 당신을 너무 늦게 사랑하였습니다, 예전에도 지금도 아름다우신 분이여!”라고 환호하면서 결정적 회개에 이르렀습니다.

 

요셉 성인에게 우리 회개의 은총을 얻기 위하여 도움을 청하며 기도드립시다.

 

구세주의 보호자시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시여.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외아드님을 맡기셨고,

마리아께서는 당신을 신뢰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보호 속에서 성장하셨나이다.

 

복되신 요셉이시여,

저희에게도 아버지가 되시어

삶의 여정에서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저희를 위하여 은총과 자비와 용기를 얻어 주시고

모든 악에서 저희를 지켜 주소서. 아멘.

 

 

전문: https://cbck.or.kr/Notice/20210030?gb=K1200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우리의 죗값으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기꺼이 내어주시며 희생제물이 되신 것을 기념하며 감사드리는 오늘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자기 희생과 인도자요 보호자이신 요셉 성인을 되새기며, 사랑받는 아버지로서 온유하고 다정하며, 순종하고, 수용하며, 창의적 용기를 지니고 노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간직하고 우리의 신앙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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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 주일 꽃꽂이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id=181934&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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