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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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10-28 ㅣ No.5205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22/11/15

 

우리는 가끔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이 잘 안 될 때 그렇게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아니면 포기하고 말아 버릴 때가 있습니다. 단순 호기심이라던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꼭 하고 싶고 또 해야만 하는 경우에는 두 번 세 번 경우에 따라서는 될 때까지 시도하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자캐오라는 사람은 키가 작았고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왜 보고 싶어 했을까?? 집안에 누가 아파서 고쳐달라고 청하려고 했는가? 왜 그랬을까 궁금합니다. 키가 작아서 안 보이면 그냥 포기하고 말 듯도 싶은데, 굳이 보려고 돌무화과나무 위까지 올라가서 예수님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이런 자캐오의 열성을 바라보신 예수님은 그에게 말을 건네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자캐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서는 집으로 달려가 부랴부랴 이것저것 장만하고는 기쁘게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자캐오의 집을 방문하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사람들이 시기에 불타서 투덜거리기 시작합니다.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7) 당시 세리는 단순히 세금을 걷어내는 역할 뿐만 아니라, 세금을 제때 관계 당국에 바칠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미리 돈을 꾸어주는 형식으로 대납하고는 고리대금업자처럼 사람들에게 이자를 많이 부쳐서 자신의 이익을 채우곤 해서 율법에 따라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비난을 의식한 자캐오가 주님을 바라보며 외칩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8) 그러자 예수님께서 주위 사람들에게 마치 들으라는 듯이 그에게 큰 소리로 이르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9-10)

 

그러고 보면, 자캐오는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새로워지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는가 봅니다. 그냥 그가 살던 그 방식대로 계속 살아도 그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왜 새로워지고 싶었을까? 세금을 걷을 때마다 마음에 걸렸을까? 사람들의 비난이 신경에 거슬렸을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자캐오는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아니 어쩌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기 시작했을 그 순간부터 새로워지고 싶었는가 봅니다. 수입은 적어도 마음 편히 살고 싶어하며, 저 세상으로 떠나기 전에 이 생애에서 무엇인가 의미있고 갚진 삶을 살고 싶었나 봅니다. 아무튼,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의 선언을 듣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살고 있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주 예수님께서 일러주시는 복음의 길을 걷고 싶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자캐오처럼 예수님의 길에서 구원의 서곡을 발견하셨습니까?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갈망과 용기를 얻으셨는지요? 주님 사랑에 감화되어 주님 사랑의 포로가 되셨습니까? 그럼 이제 주님 복음의 길로 접어들기 위해 여러분 삶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변화시키시겠습니까? 회개의 선물을 시작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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