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영화 <친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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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연 [wjyhs2] 쪽지 캡슐

2001-08-11 ㅣ No.1391

  

그렇게도 많은 무려 팔백만의 사람들이 보았다는 영화가

비데오로 나왔다기에 얼른 빌려 보았다.

 

그런데 이게 왠걸 정말 실망투성이 영화였다. 적어도 내겐 그러했다.

내가 본 친구라는 영화는 "타고난 깡패와 노력하는 깡패가 한판 붙어, 결국 타고난 깡패(=통)가 노력하는 깡패(=보통)를 이긴다"는 참으로 싱겁고 어이없는 영화였다. 이걸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해서인지, 맨 앞부분에 거대한 튜브에 매달린 네 명의 소년들이 바다 위에서 논쟁을 벌이는 대목이 나온다.

"바다 거북이 하고 수영선수 조오련 하고 누가 더 빠를까?" 뭐 이와 비슷한 대화이다.

 

<친구>는 그저 한번 쯤 웃으면서 현실의 각박함에서 벗어나 힘들었지만 보람되었다고 생각하는 과거의 시간에 대한 회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약간의 긍정적인 카타르시스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수준은 남자들이면 늘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군대 생활의 무용담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그런 종류의 허망한 말장난들이다. 영화를 보고난 뒤엔 별로 남는게 없어 허탈하고 괴롭기까지 한 영화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친구>라는 영화가 우리사회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은 바로 폭력에 대한 동경 내지 깡패 생활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등일 것이다. 물론 어른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18세 이상만 볼 수 있다는 얄팍한 상술을 통해, 덩치만 크고 생각은 아직 유치한 중고생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여, 이들에게 계속적인 주입식 장면의 효과와 군중심리를 자극하여, 아무 쓰잘데기 없는 폭력의 행사를 당연시하고 멋지다고까지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모 일간지에 최근 실린 기사는 이러한 내 생각을 확신시켜 주었다. <친구>, <신라의 달밤> 등 최근 거듭되는 이른바 거액을 투자한 대형 한국영화들이 관객을 동원하려고, "영화산업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라는 거창한 허울을 쓰고 순간적이고 충동적인 고객유취 행위를 하고 있다.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다.

 

오늘의 우리에겐 단말마적, 단세포적 자극과 잠깐 동안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영화보다는,보다 깊고 오래되고 다소 눅눅하면서도 끈끈하고 질기고 그윽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영화가 필요한데, 아직까지 속인들의 생각은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아마도 신자들이 나서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친구>의 장면은 더욱 허탈하고 가소롭기까지 하다. 친구간의 우정 때문에 적이 된 친구를 차마 직접 죽이지는 못하고, 그 자기가 직접 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법정에서, 감옥에서 자기가 했노라고 우기는 어느 깡패의 이상한(?) 우정을 보여주면서 이게 마치 인생에서 배워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되는 것처럼 클로우즈 업하는 해프닝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들이 속기 쉬워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끌리고 그럼으로 해서 관련된 모든 행위들을 미화시켜 버리는 그러나 결코 그곳으로 빠져들어서는 안될 분명한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깡패간의 의리는 저버려야 할 대상일 뿐 결코 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순진한 청소년들에게, 그 자그마한 소위 "의리"는 깡패들의 모든 잔인하고 추악하고 끔찍한 범죄(살인, 구타, 상해, 인격모독 행위 등등)를 한꺼번에 합리화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젊은 친구들이 깡패들처럼 비참한 인생을 체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깡패들간의 소위 ’의리’는 철저히 부정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판 저질 흥행물, 청소년들의 잘못된 우상 영화 <친구>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나는 새삼 인생의 의미와 신앙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참된 문학작품이 탄생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다른 뾰족한 방법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우리 자신이 그 훌륭한 작품의 주인공들처럼 진실되이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삶은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예술작품 그 자체이기 때문에,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연히 진실한 작품들도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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