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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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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락준 [tutti] 쪽지 캡슐

2004-10-28 ㅣ No.2962


* ♬ 오늘의 성인 10월 28일 ♬ *




▶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사도 ◀

시몬의 이름은 사도들의 이름 목록에서 열한 번째에 놓인다. 가나 출신이고 혁명당원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는 것 외에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시몬은 사도들의 명단 네 군데에서 모두 언급되고 있는데 그 중의 두곳에서는 그를 ’혁명당원’이라고 부른다. 혁명 당원은 극단적인 유대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유대인의 한파이다. 그들에게 구약 성서의 구세주 약속은 유대인들이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를 이루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느님만이 그들의 왕이고 로마인들에 대한 여하한 세금 납부도 -로마인들의 통치 그 자체가-하느님께 대한 모독이라는 것이다.

혁명 당원들 가운데 일부는 분명히 그들의 종교와 독립의 이상을 수행하는 데 있어 마카베오의 영적 후계자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현대의 테러리스트들과 비숫하다. 그들은 외국인들과 ’타협적인’유대인들에 대해서는 약탈과 살인을 저지르는 공격을 감행하였다. 그들은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의 파괴로 종지부를 찍은 로마에 대한 반란의 주된 책임자들이다.

루가6,15, 행전1,13에는 유대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혁명당원이란 별명이 붙어있는 시몬은 가나안 사람으로서(마태10,4. 마르3,18), 그리스도의 제자였다. 서방 전승에 의하면, 성 시몬은 에집트에서 설교하였고, 성 유다와 함께 페르시아로 갔다가 그곳에서 순교하였다. 동방 전승은 성 시몬이 에데싸에서 평화로이 운명한 것으로 되어있다

루가 복음과 사도 행전에서는 유다라 불리고 있다. 그러나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은 그를 타대오라고 부른다. 루가6,16 에서"야고보의 아들 유다"라고 알려지며, 사도 행전에서는 유다라 불리고 있다. 그러나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은 그를 타데오라고 부른다. 성서에서는 그를 가리웃의 유다와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사도들의 이름이 나타나는 곳을 제외하고는 복음의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학자들은 그가 유다서의 저자가 아니라고 한다. 신약성서에서 요한의 편지 다음에 나오는 "유다의 편지"의 저자는 사도 유다가 아니고 예수님의 친척 유다입니다.

실제로 ’유다’는 ’유다 이스가리옷’과 같은 이름이다. 그런데 그 이름은 분명히 달갑지 않으므로 줄여서 그저 유다라고 부르는 것이다. 타대오라고도 하는 유다는 최후 만찬 때 주님을 보고 "주님께서 왜 세상에는 나타내 보이지 않으시고 사도들에게만 나타내 보이시는지” 여쭈어 본 사도였다.(요한 14,22).


▶ 아나스타시아 (Anastasia) ◀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로마(Rome)에서 순교한 성녀 아니스타시아는 동정녀였다.

그녀는 총독 프로부스(Probus)에게서 불과 매로 고문을 받았으나 끝끝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래서 총독은 그녀의 가슴을 도려내고 이빨을 뽑았으며 손발을 잘라냈다고 한다. 그래도 살아 숨을 쉬면서 배교하지 않자 박해자는 하는 수 없이 참수시켰다는 것이다.

성 키릴루스(Cyrillus)는 그녀가 목말라하는 것을 보고 물을 갖다 주었다가 순교하였다. 그 당시 아나스타시아는 훌륭한 집안의 딸이었고, 동정을 지키려고 혼자 서원하였으며 순교할 당시에는 20세였다고 한다. 현재 이 두 성인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크게 공경을 받는다.


▶ 데메트리오 (Demetrius) ◀

성 데메트리우스(또는 데메트리오) 혹은 드미트리 툽탈로는 어느 부유한 코사크족의 아들로서 수도사제가 되었다.

그는 1702년에 로스토프의 주교로 임명되기 전에 이미 두 수도원의 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탁월한 설교가였다. 특히 그는 정치권력으로부터 교회의 독립을 제창하였다. 또한 그는 활동적인 교육가이자 학자였으며 일생동안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는 서방 교회의 표상이 될 만한 성인들의 전기를 썼고, 신앙적인 드라마와 시 그리고 신심적이며 교육적인 글을 수 없이 남긴 위대한 저술가였다. 이런 저술 속에는 양들에 대한 목자의 의무를 역설한 “영적인 알파벳”도 포함되어 있다. 성인은 짧게 강론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내용은 짧으나 심금을 울림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문필가로서의 그의 영향은 러시아 종교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인정되며, 아름다운 신앙 시를 포함하는 “일기”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 치릴로 (Cyril) ◀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로마(Rome)에서 순교한 성녀 아나스타시아(Anastasia)는 동정녀였다.

그녀는 총독 프로부스(Probus)에게서 불과 매로 고문을 받았으나 끝끝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래서 총독은 그녀의 가슴을 도려내고 이빨을 뽑았으며 손발을 잘라냈다고 한다. 그래도 살아 숨을 쉬면서 배교하지 않자 박해자는 하는 수 없이 참수시켰다는 것이다.

성 키릴루스(Cyrillus, 또는 치릴로)는 그녀가 목말라하는 것을 보고 물을 갖다 주었다가 순교하였다. 그 당시 아나스타시아는 훌륭한 집안의 딸이었고, 동정을 지키려고 혼자 서원하였으며 순교할 당시에는 20세였다고 한다. 현재 이 두 성인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크게 공경을 받는다.


▶ 피델리스 (Fidelis) ◀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피델리스란 장교가 이탈리아 밀라노(Milano)에서 그리스도인이 잡혀있는 감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성 피델리스는 자신의 직권으로 군인 2명을 포함하여 다섯 명의 신자를 석방시키고 알프스(Alps)로 피신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이 이탈리아 북부 코모에서 붙잡히게 되자 피델리스 역시 체포되어 고문을 받은 뒤에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피델리스는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해오던 그리스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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