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동창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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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석 [ryu4337] 쪽지 캡슐

2007-10-17 ㅣ No.8247

벌초하려 아침일찍부터 서둘렀슴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 진입로부터

길게 늘어선 차량행렬로 인해 오후 3시가 되서야 대전에 겨우 도착할수 있었다

이미 도착해있던 당숙어른과 육촌형님께 인사를 드리고 요기할것을 구하러

솔밭동네의 언덕길을 내려왔다.

대전 대사동에 있는 솔밭동네..

이곳은 어렸을적 나의 고향으로 소나무가 숲을 이룰정도로 빼곡히 들어서있고

그 소나무사이로 수북히 떨어진 노란 솔잎을 갈퀴로 굵어모아  굼불로 썼고

그아래 텃밭에 호박,고추,배추등 이른바 남새를 심어 생계를 유지했었던

달동네였다.  

학교가는길로 들어서자마자 우측에 하드와 과자등을 가끔 사먹었던 재월네 가게가

여전하나 옛날만큼 아이들로 북적거리지는 않았고  좌측으로는 그 당시의 최고부자였던

전만기 어른의 집이 있으나 담은 반 정도 허물어져있고 이끼가 잔뜩 낀 문패가

비뚤게 걸쳐져있었다.

안을 들어다보니 온갖 잡풀이 무성한채 인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옛날에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곳인데...아무리 공동화현상이라지만

대전 중심가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곳인데..이 정도일줄이야!!!"

모교인 대신초등학교까지 갔지만  김밥,치킨파는 집에 한곳도 없어 학교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교문안으로 들어섰다.

운동장에는 사람한명이 보이지않았고 교문앞 석고상은 몇겹으로 흰페인트로

덧칠했지만 군데군데 파인곳이 많아 점차 흉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교실로 가는 우측 계단은 무너지고 깨진곳이 많아 자칫 아이들이 다칠까봐

염려스럽기까지 했다.

학생수가 우리 다닐때보다 1/25로 줄어들어 곧 폐교될지 모른다는 얘기를

며칠전에 들어서인지  모교 교정이 더욱더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학교 교정을 주욱 돌아보다가 문뜩 초등학교 동창들이 생각이 났다.

그중에서도 나와 4년을 같이 공부했던,무척 좋아했던 김연희가 가장 그리워서   

느티나무아래 벤치에 앉아  그녀와의 추억속으로 잠시 젖어들었다.

 연희는 집이 부자여서 옷도 멋있게 입고 얼굴도 이쁜데다 공부를 너무 잘해

그 당시 남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특히 가을운동회때 갸날픈 몸매로 날렵한 덤블링 솜씨를 보여 황홀경에 빠져들게했고

전학년 장기자랑시간에 멋진 현대무용을 선보여 가슴을 콩콩 뛰게했다.

전국구 퀸카인 연희와 2년을 짝꿍으로 지낸데다 4년을 같은 반이었으니

남학생들의 시샘은 극도로 달해 짝꿍에서 하야(?)하라는 투서를 받은적도 있었고

연희와 짝꿍하는 것을 빗대어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라는 별명을 들은적도 있었다.

그런 연희를 중학교때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먼발치로  본적이 있었고

대학교때 학생회관 앞에서 마주친적이 있었지만 부끄러워서 말조차 건네질못했다.  

"벌써 수십년이 흘렀구만..아마도 연희는 부자집 마나님이나 아주 훌륭한

선생님이 됬겠지"

 

상념을 접고 부리나케 충남대 병원쪽으로 향하니 마침 치킨집 하나가 눈에 띄웠다.

문밖에서부터 싸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별수가 없어 안으로 들어서니 치킨을

튀기는 기계는 어지럽게 널려져있었고 기름은 물처럼 잔잔히 담겨있었다.

문앞 테이블에는 뚱뚱한 아주머니가 두분의 아저씨랑 큰소리로 설전을

벌이고 있었고 주방안에는 남자 한사람이 그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저씨 장사안해요?"

"합니다!! 뭘드릴까요"

"푸라이드 반,양념반 주세요!!!"

아마도 세사람은 가게 계약건으로 싸우는것 같았다. 아주머니 가게옆에

주인아저씨가 새로운 치킨가게에 세를 줬고 이로인해 아주머니가 월세를

깎아주던지 계약 취소를  요구하는것 같았다.

"영희엄마 손님왔어 "

한참 열내며 싸우던 아주머니가 내옆을 스쳐지나간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쿵쿵거림을 느낄수가 있었다.     

 "연희다!! 연희"

세파에 찌들어 얼굴이 많이 상했고 머리카락에 기름이 튀어 푸석푸석해졌고

눈가에 잔주름이 가득했지만 눈매만은 변하지않았다.

황당하고 놀라움에 두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순간 건물주인듯한 남자가

크게 소리쳤다.

"김사장!!!내가 월세를 반으로 깎아줄게 그럼 됐어"

"그럼!! 됐어요! 생맥주 한잔 드시고 가세요" 

환하게 웃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연희가 확실하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가졌다.

테이블과 카운터 옆에서 어정쩡하게 서성이는 것을 그녀는 여러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고 나는  의식적으로 밖을보다가 천장을 보는등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손님 다됐습니다. 10000원입니다."

"고맙습니다.많이 파세요"

그녀에게서 치킨을 낚아채듯 받아들고 돌아서는 순간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저 손님!!! 혹시 혹시 대신초등학교 안나왔어요?"

"허걱!"

목에 먼가가 걸린것같은 감정을 겨우 억누르면서 잠시 맘을 진정시킨다음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지도않은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뇨! 그옆 대흥초등학교 나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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