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22/1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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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월요일 ‘22/10/03 언젠가 어느 부부가 “신부님, 정말 사랑해서 좋았던 시절은 1~2년이고요, 자식 때문에 살고, 고운 정 미운 정 특히 미운 정 때문에 살아요.”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그런 것인지, 부부관계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야기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오늘 알렐루야에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라고 하신 것과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라고 하신 말씀 중에 나오는 ‘서로’와 그 ‘한 사람’이 내 삶 속에서는 누구인지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강도만난 사람을 사제와 레위 등 누가 보아도 도와주어야 할 종교 지도자들이 모른 척 지나쳐 가는 데 반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라고 하십니다. 저기 저 멀리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TV에 나오는 걸인이거나 내 생애에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사고 현장의 주인공들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가족과 친지들에 대해서 되돌아보아야 할지 모릅니다. 내가 가장 가깝고 위로와 사랑을 주고받는다고 하지만, 동시에 나에게 가장 큰 슬픔과 괴로움을 안겨주는 이들 역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하신 말씀이 유난히 깊이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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