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4주간 금요일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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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0-02-06 ㅣ No.4133

연중 제4주간 금요일 2/7

 

우리는 흔히 개죽음이라는 말을 합니다. 전혀 예기치 않은, 그야말로 아무런 보람이나 가치가 없는 죽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어처구니없고 부당하며 억울한 죽음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자신을 미워하는 여인의 딸이 권력자의 앞에서 춤을 추었다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요구된 것입니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마르 6,21-24)

 

세례자 요한의 이 억울한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암시하기라도 하듯이, 우리에게 어처구니없고 부당하며 적절한 재판조차 없이, 마치 처리되듯이 사라져가는 의인의 죽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는 처리되듯 치워졌지만, 그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내려옵니다. 한 개인의 죽음이라 하더라도,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있고 하늘에서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처럼, 의인들의 죽음도 사라지지 않고 인류사회의 의식 속에 그리고 역사 속에 살아있음을 바라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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