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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1 주간 화요일 달봉신부의 긴 오늘의 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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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현 [dalbong6] 쪽지 캡슐

2004-03-02 ㅣ No.2527

오늘도 역시 길다. 길다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닐진데... 아무튼 깊이 있는 내용이 되기를 바래본다. 오늘 강론의 주제는 기도다. 우리 모든 신자분들이 기도를 하는 신자분들이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기도하는 사제이기를 바래본다.

 

오늘의 복음은 마태오 복음 6장 7절에서 15절까지의 말씀이다. 그 내용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신다.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여라.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오늘 복음 말씀은 어제 예고해 드린 대로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고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당신께서 직접 기도의 모범이라 할 수 있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기도’를 수없이 바칩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 기도를 매일매일 몇 번이고 바칩니다. 그러나 별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때가 많습니다. 이 좋은 기도를 좀 더 그 정신을 깨닫고 되새기면서 한다면 참으로 큰 은혜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우선 ‘주님의 기도’가 어떤 기도인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문중에서 가장 좋은 기도문이라고 합니다. 이 기도는 제자들이 기도가 하고 싶어서 청하자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우리 마음에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은 마음이 심란하거나 허전할 때 또는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생길 때 기도하고 싶은 심정이 들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싶은 심정은 하느님께서 인간 마음 속 깊은 곳에 심어주신 타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모양으로든 기도하게 마련입니다. 사람은 기도하면서 마음의 평온을 얻고 흡족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기도 중의 기도이고,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이기 때문에 할 때마다 즐겁고 마음을 평안케 해주고 많은 은혜를 내려주는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저희가 기도할 때 교송할 때나누어지는 부분입니다. 전반부는 우리가 아버지께 청해야 할 내용들이고 후반부는 전반부의 기도의 내용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청하는 내용입니다. 그럼 전반부에서 우리가 아버지께 청해야하는 내용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기도할 때 누구에게 기도하는 지 조차 모르고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지금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는 지를 안다면 나의 기도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고 내가 청하는 기도의 내용도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누구에게 기도하는 지를 잘 모르고 기도하기 때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도의 자세와 기도의 내용을 바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아버지의 이름을 제일 먼저 부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라는 것을 인식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녀 대 데레사는 “아버지”라는 말을 한 후 몇 시간이고 머물렀다고 합니다. 아버지라는 말 이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아버지의 넉넉함이, 아버지의 포근함이, 아버지의 버팀돌이 아버지의 굵은 손이 자신을 포근히 감싸주시는 사랑을 느낍니다. 그러니 자녀가 아버지께 말씀드리는 것이니 무슨 말을 못 하겠습니까? 어떤 내용이면 어떻습니까? 자녀의 어떤 말도 넉넉하게 받아주시는 아버지께 우리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입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야훼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고 우리 또한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나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거룩한 삶을 통해서 빛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나게 할려면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이와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청해야 하는 내용은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나라란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나라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이 실현되어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의 가치관이 실현되어지는 나라이며 복음적인 정신으로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 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말씀처럼 이미 왔으나 아직 오지 않은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기를 위해 애쓰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일 때 그리고 복음에 따른 삶을 살아갈 때 내 안에서부터 아버지의 나라가 실현되어 질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가 11,20)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끝으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입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간절히 청하는 ‘아버지의 뜻’은 무엇입니까?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맡기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그렇다.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모두 살릴 것이다.”(요한 6,39-40) 아버지의 뜻은 모든 이를 구원하는 것이다. 모든 이들 속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나의 원수까지 포함됩니다. 나를 못살게 하고, 미워하고, 욕하고, 나를 저주하는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그 누구도 제외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거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다음으로 판단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어떤 것을 선택할 때, 그것이 나와 모든 이들의 구원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 아니면 나 개인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해가 되는 일인가를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즉 나에게도 다른 이에게도 선익이 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중요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나와 모든 이들의 구원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바치면서 나와 내 이웃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생각하고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뜻을 찾는 사람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나의 시간, 능력, 나의 재산, 나의 지식, 나의 일은 모두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아버지의 자녀가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아버지께 인도해서 그들도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오도록 해야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그 사람을 구원에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기도 전반부의 내용이라면 후반부의 내용은 이런 것들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청하는 내용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청하고 저희 죄의 용서를 청하고 우리가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이유도 유혹과 악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마다 매번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뜻을 기억하고 그 뜻을 이 땅에서 이루려고 노력할 것을 결심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습니다. 보통 천주교 신자들은 개신교 신자들에 비해 기도를 못 한다고 합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기도를 시키면 큰일 나는 줄 알고 개신교 신자들은 기도를 안 시키면 큰일 나는 줄 압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우리 신자들은 기도를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고, 개신교 신자들은 기도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생활 속에서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들이나 우리나 뭐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그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열심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다만 기도에 대한 교육과 생각의 차이에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기도는 누구나, 아무 때나 간절하게 열심히 하면 된다고 가르치고 배웁니다. 반면에 우리들은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길게 멋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기도 한 번 해보시라고 하면 무슨 큰일이나 난 것처럼 못 한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근데 한 번 생각해보세요, 아버지 하느님과 대화하는 데 무슨 주제가, 내용이, 길이가 상관이 있겠습니까? 오늘 예수님께서도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지만 기도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미 우리의 기도 내용을 알고 계신 그분께 말씀만 드리면 됩니다. 길고 짧은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미사여구를 넣어 화려하게 잘 하고 못 하고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의 마음을 담아 주님께 전달하기만 하면 됩니다. 못 하고 잘하고가 아니라 기도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주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하찮은 이야기라도 자주 예수님을 부르고 예수님과 대화하십시요. 장소나 시간을 정해놓고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버리십시요. 언제 어느 때든 틈만나면 예수님을 부르시고 그 분께 어떤 이야기든지 나누십시요. 기도는 쉽고 편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기도는 잘 하고 못 하고가 아니라 하고 안 하고의 문제 입니다. 자꾸 자주 하셔야 합니다. 해보지 않고는 그 맛을 알 도리가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참된 단식과 참된 자선에 대해서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도 들었습니다. 이제는 이 사순시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실천하시는 일만 남았습니다. 모쪼록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는 단식과 자선 그리고 예수님과 대화 많이 나누시는 기도의 사순시기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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