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사순 1 주간 수요일 긴 달봉신부의 오늘의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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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현 [dalbong6] 쪽지 캡슐

2004-03-03 ㅣ No.2530

요나의 기적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기를 바래봅니다. 우리 모두 회개하는 삶으로의 초대에 기쁘게 응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루가 복음 11장 29절에서 3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기적을 요구하는 악한 세대에게 보여줄 것은 요나의 기적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군중이 계속 모여들자 예수께서는 "이 세대가 왜 이렇게도 악할까!" 하고 탄식하시며 말씀하셨다. "이 세대가 기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 줄 것이 없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요나의 사건이 기적이 된 것처럼 이 세대 사람들에게 사람의 아들도 기적의 표가 될 것이다.

 

심판날이 오면 남쪽 나라의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그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는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려고 땅 끝에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솔로몬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심판날이 오면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요나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요즘 뉴스나 신문을 보는 것이 무척이나 부담스럽습니다. 뭔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보다는 마음이 철렁하고 아프게 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밝고 기쁜 이야기를 만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죽음의 이야기, 살기 힘들어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돈 때문에 자살하고 아이를 한강변에 던지는 무정한 부모들의 이야기, 평화가 아닌 전쟁과 테러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이 2004년의 대한민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기가차고 어이없는 일들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에 군중이 계속 모여들자 예수께서는 “이 세대가 왜 이렇게도 악할까!” 하고 탄식하시며 말씀하셨다. “이 세대가 기적을 구하지만 요나의 기적밖에는 따로 보여줄 것이 없다. 니느웨 사람들에게 요나의 사건이 기적이 된 것처럼 이 세대 사람들에게 사람의 아들도 기적의 표가 될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생활하셨던 시대를 가르켜 “이 세대가 악한 세대이다”라고 단정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사는 세대를 보시고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강론 서두에 밝힌 것처럼 악한 세대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이 세대가 악한 세대이다”라고 현재 동사를 사용하신 것을 보면 2천년 전의 세대를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가 사는 세대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사는 이 세대가 왜 악한 세대일까요? 무엇을 보고 악한 세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연일 계속되는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의 검은 돈 거래는 우리를 그저 억하고 놀라게 만듭니다. 어느 노동자는 30만원도 안되는 월급 때문에 살기가 힘들어 자살하는 데, 그 노동자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은 몇 백억을 잘 보아달라고 정치자금으로 바칩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점점 살기 힘들고 가진 사람들만 호의호식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계속 죽음으로 내몰립니다. 살기가 힘들어 가장이 부인, 아이들과 함께 가스를 틀어놓고 자살을 합니다. 부정부패는 극에 달하고 전쟁과 테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집에서는 소외되고 청년이 되어서는 일자리가 없어 방황합니다. 그러기에 이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물론 이런 것만 본다면 분명 이 세대는 악한 세대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악한 세대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좋지 않은 사건들을 보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보도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사회가 꼭 좋지 않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보도되지 않는 좋은 일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사회가 이나마 돌아가고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좋은 일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이 세대가 악한 세대이다”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말씀하신 악한 세대란 무엇을 가르키는 것이겠습니까? 무슨 뜻으로 예수님께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셨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좋지 못 한 사건이나 부정부패등에 대해서 언급하신 것이 아니라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기적밖에는 어떠한 기적도 받지 못 할 것이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라고 요나 예언자와 당신에 관한 것입니다. 즉 “이 세대가 기적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기적밖에는 어떠한 기적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하였는 데 이 세대의 사람들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와서 말씀하시는 데도 전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기적만 요구하기 때문에 악한 세대라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 여러 악한 모습 때문에 이 세대가 악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할 줄 모르는 우리의 모습 때문에 악하다 하신 것입니다.

 

그럼, 요나 예언자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기적이 되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요나가 니느웨에 들어가 하룻동안 돌아 다니며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잿더미가 된다고 외쳤다. 이 말에 니느웨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하였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없이 모두 굵은 베옷을 입고 단식을 하였다. 이 소문을 듣고 니느웨 임금도 용상에서 일어나 어의를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 단식하였다. 그리고 대신들의 뜻을 모아 니느웨 시민들에게 아래와 같이 선포하였다. 사람이나 짐승, 소 떼나 양 떼 할 것 없이 무엇이든지 맛을 보아서는 안 된다.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에게까지 굵은 베옷을 입혀라. 그리고 하느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어라.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남을 못 살게 굴던 나쁜 행실은 모두 버려라. 하느님께서 노여움을 푸시고 우리를 멸하려던 뜻을 돌이키실지 아느냐? 이렇게 사람들이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시었다”(요나 3,4-10) 이처럼 요나의 말을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보여준 태도야 말로 기적입니다.

 

즉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징이 되었던 사건은 니느웨 사람들이 요나의 말을 듣고 “하느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하였다”는 것입니다. 요나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단순히 요나의 말만 듣고 하느님을 믿고 단식을 선포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그것도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그리고 임금도 용상에서 일어나 어의를 굵은 베옷으로 갈아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 단식한다는 것이 오늘 우리 세대에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을 요나의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대에는 요나보다 더 크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직접 “때가 차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고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셨지만 과연 이 말씀을 듣고 하느님을 믿고 회개하고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오히려 복음을 믿기는커녕 내가 잘 믿을 수 있게 기적을 보여달라고, 하느님이 계심을 증명하는 기적을 보여달라고 떼를 쓰고 있지는 않은 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 세대가 악하다는 것은 어떤 부정을 저지르고,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을 죽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신 예수님이 복음을 선포하셨는 데도 그 말씀을 믿지 않는 것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복음의 말씀대로 생활하지 않는 것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미 선포된 복음은 믿지 않고 어떤 특별한 표징(기적)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악한 것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만을 듣고도 회개하였는 데 이 세대 사람들은 요나보다 더 큰 분이신 하느님이 직접 복음을 선포하시는 데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지 않는 것이 악한 세대인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는 어떤 지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께 기적을 보여달라고 기적을 보여주어야 확실히 믿겠다고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내 아들을 대학에 합격시켜주시면, 내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게 하시며, 내 병이 다 나으면, 혹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잘 되면 열심히 성당 다니고 예수님 믿을께요하며 예수님과 거래나 흥정을 하고는 있지 않은 지요. 이미 와 계시며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신 그 분을 만나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기적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신앙이란 빛으로 오신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삶에 나의 삶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지 못 해도,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 해도, 지금 병이 나기는커녕 더 악화되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더 나빠져도 예수님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예수님 때문에 인내하고 예수님 때문에 손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 우리는 스스로 악한 세대임을 고백하며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이며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일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가 회개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순절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사순시기를 잘 보내기 위해 우리는 교회에서 지정된 날에 단식을 하고 금육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복음의 삶을 생활해야 합니다. 즉 복음과 달리 생활하였던 생활에서 다시 복음적인 생활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어떤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포된 복음를 믿고 그 복음을 생활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변하는 것보다 완고한 나 한 사람이 변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변하는 데에는 더 커다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노력이 수반되어 내가 변화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입니다. 이 사순시기 기적을 한 번 일으켜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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