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사순 제 2 주간 수요일 달봉 신부의 조금 긴 오늘의 복음 묵상

인쇄

류달현 [dalbong6] 쪽지 캡슐

2004-03-10 ㅣ No.2554

오늘의 강론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마태오 20장 17절에서 2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도중에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불러 조용히 말씀하셨다.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가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며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왔는데 그 어머니는 무엇인지를 청할 양으로 엎드려 절을 하였다.예수께서 그 부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은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였다.그래서 예수께서 그 형제들에게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마실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내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과 내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열 제자가 그 형제를 보고 화를 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의로운 이의 죽음이라는 주제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독서의 예레미야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매우 잘 예고해주는 구약의 예언자입니다. 그는 하느님 백성의 오만함을 꾸짖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에 박해를 받았습니다. 백성들이 모여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예언자에 대한 이 살해 음모는 장차 예수님을 살해하기 위해서 펼쳐질 음모를 예고해주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사람들에게 보호를 청하지 않고, 하느님께 달려가 정의를 보여 주시라고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주위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참 예언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독과 고립, 소외와 열악한 환경에 대하여 신랄한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였으나 자신의 삶 안에서 이러한 반대와 고통이 피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자체가 자신의 예언직의 일부라는 사실을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어려움을 고통을 피해가기 위해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잘 걸어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봅니다. 자신의 길을 의연하고 꿋꿋하게 걸어가시는 그 분의 모습을 말입니다.

 

그 수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기 전에도 무수하게 많은 마음의 고통을 당하십니다. 오늘도 그 과정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살펴보면 가슴이 아려 한참을 머물게 됩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깝고 슬펐을까하고 말입니다. 제자들을 부르고 그들과 함께 지낸 시간이 벌써 3년입니다. 3년이면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다는 시간입니다. 3년이면 이제 스승의 마음을 알만도 할 텐데, 스승이 말씀하시는 것을 알아들을 만도 한 데, 도통 이들에게는 진전이 없습니다. 당신은 비장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것도 당신께서 죽음을 맞을 도성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제자들을 불러 이야기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손에 넘어가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며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한마디로 이 스승은 예루살렘에서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은 서당개 3년만도 못 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수난 예고에서는 이게 뭔 소리여 하는 반응 정도였는 데 이번에는 더 멀리 나갑니다. 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 즉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와 함께 와 청탁을 합니다. “주님께서 왕이 되시면 저의 두 아들을 하나는 왼팔로 하나는 오른 팔로 써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스승은 죽음을 이야기하며 안타까와 하는 데 두 제자는 논공행상에만 젯밥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우의정, 좌의정은 자신들 몫이 되어야 한다고 청탁을 합니다.

 

다른 제자들의 반응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다른 제자들의 반응은 더 기가막힙니다. 이번에는 나머지 열명의 제자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두 제자에게 따집니다. “너희들이 어찌 그럴수가 있느냐?”여기까지 본다면 스승의 뜻을 알아 그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뒤는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더 상하게 합니다. “평상시 행동으로 보나, 업적으로 보나 내가 좌의정이 되야지 어찌 니가 좌의정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다”또 다른 제자가 “아니다 내가 좌의정이지 어찌 니가 좌의정이냐, 어머니 동원하면 다냐”하며 서로 높은 자리가 자신의 자리라고 스승앞에서 싸움박질들을 합니다. 그것을 지켜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셨을 것입니다. 자신은 수난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데 자신이 3년 동안이나 모든 애정을 다 쏟았던 제자들은 엉뚱하다 못해 자신의 가슴에 못을 박습니다.

 

제자들이 왜 이런 반응을 보였는 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소식의 선포와 거기에 따르는 행동들이 급기야는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셨습니다. 이 수난과 죽음에 대한 예언은 동시에 당신께서 죽음 안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부활하실 것이라는 확신도 동시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은 이 수난예고에 대해서 전혀 다르게 반응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단지 예수님의 약속 즉 새로운 세상이 오면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라는 영광된 미래의 시간만을 머리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들과 어머니는 새로운 세상이 와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으실 때 그 밑에 있는 첫 자리들을 달라고 미리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인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느냐?”물음은 거절과 승낙 두 가지를 다 포함하는 내용입니다. 제자들이 고통과 수난의 잔을 마실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이 하느님 나라에 머물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주려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는 일은 당장 지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수난의 길을 걸어가야 하며, 사람들을 지배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삶을 고통을 당하시는 하느님, 종의 모습으로 이해하시면서, 이 종의 삶도 결국에 가서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여 주셨으나 제자들은 지금 고난과 수난의 순간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광된 순간만이 보여 그런 반응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영광의 길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의길,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자들의 그런 반응에 안타깝고 참담하고 괴로운 마음이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불러모아 다시 간곡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 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다시 한 번 당신이 하시고자 하시는 당신이 원하시는 공동체의 삶의 기준을 마련해 주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봉사와 섬김의 나라임을 분명하게 하십니다. 남을 섬기는 사람, 종이 되는 사람이 대접받는 나라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는 높음도 낮음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 아래 한 가족이 있을 뿐입니다. 그 나라에는 오직 서로 섬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만이, 서로 봉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만이, 서로 나누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입니다. 나눔과 섬김과 봉사가 일반화되어 있는 나라가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교우 여러분,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처럼 반응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마음을 너무나도 크게 상해드린 적도 많았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제자들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그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편하고 쉬운 일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낮은 자가 아니라 높은 자가 되려고 하였습니다. 남과 더불어 살려고 하기 보다는 남을 누르고 밟고 올라서 출세와 성공만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남편이나 아내에게, 식구들에게 자녀들에게 신자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하라고 요구했지 저는 그 짐을 함께 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접을 받고 인사 받기를 좋아했지 남을 대접하고 먼저 인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주 말만 하였고 실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랬던 저의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며 이 사순시기에 나를 계속 낮추어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3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