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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 3 주간 수요일 달봉신부의 조금 긴 오늘의 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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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현 [dalbong6] 쪽지 캡슐

2004-03-17 ㅣ No.2568

이제서야 오늘의 복음 묵상이 되네요.

 

오늘의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 5장 17절에서 1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하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 날 우리들에게 기도하는 티를, 자선하는 티를, 단식하는 티를 내지 말라고 하셨거늘 저는 너무 티를 냈나봅니다. 단식할 때 오히려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라고 하셨는 데 저는 일부러 굶고 있다는 표시를 냈나봅니다. 제가 사순시기를 힘들게 보내고 있다는 티를 너무 냈나봅니다. 얼마 전에는 어느 신자분이 미사 끝나고 제 손을 꼭 잡으시면서 “신부님, 사순시기가 많이 힘드시죠”하며 위로하시더니 오늘 아침에는 강론 목소리가 너무 작다고 많이 힘드신 것 같다는 걱정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길이 시작되지도 않았는 데, 벌써 힘들면 안 되죠.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다만 전에 보다 좀 웃을 일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수적 우의를 내세운 국회의원들의 탄핵안 가결도 그렇고요. 제가 좋아하는 T.V와 여자를 끊었으니 삶의 낙이 좀 없어진 것 뿐입니다. 저 별로 힘들지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티 좀 그만 내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올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예언서 그리고 복음과의 차이점을 명확히 하시는 것입니다. 즉 율법과 예언서가 완성시키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이 완성시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예언서만으로는 항상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것을 예수님이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즉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시키는 것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선 이런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주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언쟁을 벌이시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또한 율법중의 율법인 안식일 법을 자주 깨뜨리시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에게는 율법이나 예언서가 아무 소용이 없는 것같은 사문화된 규정이나 조항으로 비쳐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율법이나 예언서의 본 뜻을 생각하지 않고 마치 무시해도 되는 양 생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완성하러 오셨다”는 말씀은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율법과 예언서에서 말하는 것은 "... 하지 말라. 죄를 짖지 말라. ... 하라. 안식일을 지켜라. ..계명을 지켜라."등 금지 규정이나 지켜야할 조항을 제시해주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지킬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자세한 방법과 가르침이 없습니다. 다만 규정만을 제시해줄 뿐입니다. 그것이 율법의 한계입니다. 예언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예언만 하는 것이지 그 예언을 실제로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 할 것이다. 동정녀에서 아들을 낳을 것이다. .....말을 할 것이다.  ... 올 것이다. ..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가게 될 것이다. 해방 시켜 줄 것이다."등 예언만 하는 것이지 그 예언을 완성시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모든 예언을 완성시키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따라서 모든 구약은 예수님을 위해 있고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시키십니까? 예수님이 나자렛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펴시고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묶인 이들에게는 해방을, 눈먼 이들에게 다시 볼 수 있음을 선포하며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라는 내용을 읽으신 후 "오늘 이 성서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가 4,18-21)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읽으셨던 이사야 예언서의 내용은 장차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언들이었습니다. 즉 예언이었지 그것을 실제로 완성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예언을 읽으시고 "오늘 이 성서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그 예언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와 예수님과의 차이점입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서의 모든 내용을 이루시고 완성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건물을 지을 때 율법과 예언서는 하나의 설계도라면 예수님의 말씀은 그 설계도대로 건물을 지어 완성시키신 분이십니다. 설계도만 있으면 장차 건물이 어떻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알 수는 있지만 그 건물을 짓지 않으면 하나의 꿈이고 바램이지 실제적으로 완성된 건물 안에서 생활할 수는 없습니다. 설계도도 중요하지만 그 설계도 대로 건물을 완성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완성시키십니다. 결국 모든 율법과 예언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서를 어떻게 완성시키시겠습니까? 구약에서는 가르치기만 했지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예를 들면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 하면 말로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 걸어가게 해주셨습니다. 눈 먼 이에게 "눈을 뜨라!"하면 말로만 눈을 뜨라고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눈을 뜨게 하여 보게 해주셨습니다. 즉 완성시키셨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이에게 "손을 펴라"하였으면 오그라든 손이 펴지게 해주셨습니다. 죄인에게 "너의 죄를 용서한다." 하였으면 죄가 용서되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말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말만 하시고 실제로 이루시지 않는다면  율법과 예언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만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언이 아니라 "오늘 이루어졌다"라고 오늘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완성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을 완성한다는 것은 율법과 예언서의 본래 정신으로 산다는 의미입니다.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이 그냥 조항이나 규정으로만 존재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 조항과 규정을 살아낼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서의 핵심 본래 정신인 “사람을 살리는 일”을 직접 실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실천의 내용이 바로 복음에 나와있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은 모든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이 완성되려면 복음을 통해서 완성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완성시켜야할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5,48)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아버지를 닮아 가는 모습이 나를 완성시켜 나가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많은 면에 있어서 부족합니다. 많은 부분 병들고 망가져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손을 써야 다시 회복되고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그런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 가능성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 앉아버려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아니 나를 다시 완성시켜 주러 오셨습니다. 망가진 나를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완성시켜 주러 오셨습니다. 병든 나를 다시 건강한 모습을 되찾게 해주시도록 오셨습니다.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아서 완성시켜 주러 오셨습니다. 따라서 나를 완성시켜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예수님은 오늘 나를 완성시켜주기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주십니다. 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한 점 한 획도 소홀히 다루지 않고 정성껏 받아들이고 실천한다면 분명히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나를 완성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은 나를 완성시켜 나가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망가진 나의 모습을 다시 되찾고 병든 나를 회복시키고 잃어버렸던 아버지를 되찾아 허전하고 외롭던 나를 하나하나 채워나가서 완성시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뒷날 임이 보시고 날 닮았다 하소서. 이 뒷날 나를 보시고 임 닮았다 하소서."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나를 완성시켜 나가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나를 완성시켜나가는 일은 복음의 말씀을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는 일입니다. 아무리 복음을 많이 알고 읽는다 하더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완성시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순시기 복음의 말씀대로 살 것을 결심하고 살아내는 시기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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