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사순 제 3 주간 목요일 달봉신부의 조금 긴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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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현 [dalbong6] 쪽지 캡슐

2004-03-23 ㅣ No.2569

작업을 하는 중에 컴이 나가서 작업이 안 된 줄 알았는 데, 다행이도 작업 중이었던 것이 등록이 되었네요.

 

지난 목요일 강론입니다. 그 날 복음은 루가 복음 11장 14절에서23절까지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벙어리마귀 하나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벙어리는 곧 말을 하게 되었다. 군중은 이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더러는 "그는 마귀의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마귀들을 쫓아낸다" 고 말하였으며  또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하늘에서 오는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갈라져서 싸우면 쓰러지게 마련이고 한 집안도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하는 법이다.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는데 만일 사탄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가 어떻게 유지되겠느냐?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면 너희 사람들은 누구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냐? 바로 그 사람들이 너희의 말이 그르다는 것을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힘센 사람이 빈틈없이 무장하고 자기 집을 지키는 한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센 사람이 달려들어 그를 무찌르면 그가 의지했던 무기는 모조리 빼앗기고 재산은 약탈당하여 남의 것이 될 것이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며 나와 함께 모아 들이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

 

 

하느님께서는 종살이하는 이스라엘인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고 험한 광야에서 그들을 보호하며 인도하셨습니다. 시나이 산에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시어 그들의 하느님이 되시고,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데려와 좋은 것을 먹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해방과 선택과 구원의 역사는 단순히 이 민족의 과거 역사만이 아닙니다. 이 바탕 위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존속할 수 있었기에 이스라엘은 항상 이 역사를 되새기며 실현시키고, 미래를 위한 좌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미 초창기부터 하느님을 찾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구원역사의 정점에서 곧바로 배신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제들은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뜻을 묻지도 않고, 정치 지도자들은 하느님에 대한 충실성을 잃어버린 채 반역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언자들은 오히려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이방신을 추종합니다. 오늘 독서 역시 40년 동안 광야에서 반복되었던 이스라엘 민족의 불순종이 예레미야 예언자 시대까지 계속 되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에집트에서 나오던 날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나의 종 예언자들을 줄곧 보냈지만, 너희는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25-26절)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하느님과의 계약관계를 깨뜨리는 것이며 동시에 성전에서 거짓 예배를 드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느님께 돌아서지 않고 계속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반대하는 자들의 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내모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벙어리 마귀를 쫓아 내시자 사람들은 "저자는 마귀들의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을 쫓아고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공동번역의 번역이고 새 번역에서는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다"로 번역되었다. 이 번역이 더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마귀들을 쫓아 내신다든지 아니면 병자들을 낫게 해주실 때 사용한 단어들을 보면 "하느님의 팔을 뻗치시다. 하느님의 손가락으로"라는 말을 사용하십니다. 이 말은 하느님의 능력, 또는 하느님의 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하느님의 손가락으로"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섬세한 면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섬세한 작품을 만들 때에는 주로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만들고 다듬습니다. 또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거나 치료할 때 "손가락"으로 만져보고 손가락으로 치료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는 마귀들을 쫓아내실 때 그마만큼 정성스럽게 그리고 섬세하고 사랑스럽게 다루면서 쫓아 내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작품을 만들듯이 하나 하나 내 안에 있는 마귀들을 쫓아 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들로 인해 망가졌습니다. 내 영혼이 병들고 이그러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망가진 나를 치료하시려면 당신의 손가락으로 구석 구석 치유시켜 주시고 닦아주고 원상 복구시켜야 합니다. 마귀들로 인해 망가진 내 영혼이 당신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던 본래의 나의 모습으로 복구시키고 치료해주시기 위해서는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치료해주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마치 엄마가 넘어져서 얼굴에 피가 나고 상처가 난 자녀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일일이 닦아주고 약을 바르고 하듯이 예수님은 마귀들과 함께 놀아 나 상처투성이인 내 영혼을 치유시켜주시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 사랑의 손가락으로 구석구석 닦아주고 어루만져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도 깊은 상처투성이 뿐인 내 영혼을 치유시켜 주실 수 있는 전문가이시며 유일한 능력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손가락을 통하지 않고서는 치유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가장 위대한 예술가이십니다. "보시니 참 좋더라"고 당신 자신도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나의 모습이 마귀들에 의해 망가지고 찢기워 지고 이그러지고 잃어버렸던 나의 본래의 모습을 복구시키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를 빚었던 그 감탄하올 손가락이 아니면 감히 손을 댈 수 없습니다. 내 영혼을 다시 복구시키시는 예수님의 손가락은 위대한 예술가의 손가락이며 내 영혼을 본래의 모습대로 복구시킬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마귀들의 잔재는 내 깊숙이 베어있습니다. 겉에 묻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 깊이 파고 들어 있습니다. 마치 암세포가 퍼져있듯이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손가락이 내 안에 깊숙이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 안에 들어와서 어루만져주고 닦아주고 싸매어 주지 않으면 도저히 치유될 수 없고 북구 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손가락이 내 안에 까지 들어와야 했습니다.  이미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는 즉 마귀를 쫓아 내는 일은 내 안에서 시작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섬세한 손가락은 이미 내 안에서 움직이고 있고 치유시켜 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느님의 손가락이 일하실 수 있도록 내가 동의하고 도와 드리는 일입니다. 협조하는 일이고 맡겨드리는 일입니다.

 

치유시켜 주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의 손가락이십니다. 즉 성령이신 하느님의 힘이며 능력입니다. 아무리 천지 창조를 하신 능력자체이시고 섬세한 손가락을 가지신 분이시라 하더라도 내가 받아들이지 않고 동의하지 않으면 그리고 협조하지 않으면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유를 존중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용한 의사라 하더라도 대수술을 받아야 살아날 수 있는 환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수술을 할 수 없듯이 전능하신 능력을 갖고 계신 하느님이라 하더라도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하실 수 없으십니다. 병든 내 영혼을 치유시킬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섬세하고 능력있는 손가락과 그분께 내 영혼을 완전히 맡겨드리는 자세가 함께 어울려질 때 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하느님께 내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손가락을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받아들이고 맡겨드릴 때 이미 내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와 있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가장 힘센 하느님의 능력이 내 안에 깊숙이 들어오지 않으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마귀들을 쫓아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예수님께 협조한다 혹은 협력한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이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이다”라며 경고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편에 서는 것,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마음과 몸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 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 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피조물치고 하느님 앞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라는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손가락인 말씀이 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 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올바로 잡아주고 교정해주고 치유시켜 줄 때 바로 내 안에 있던 마귀를 내쫓아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란 하느님의 생각과 다른 것, 하느님과 반대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알아듣고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한다면 이미 내 안에 있는 마귀들을 쫓아내 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오직 말씀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내가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알아들을 때 나의 손가락은 또 다른 사람들을 치유시켜 주는 하느님의 손가락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바오로가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로마12, 2)라고 말씀하신 대로 내가 말씀을 통하여 진리를 올바로 깨닫는다면 나의 손가락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이며 내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하여 하느님은 찬미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도 “나는 내 말을 들으라고만 하였다. 그래야 내가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된다고 하였다. 잘 되려거든 내가 명한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고 하였을 뿐이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분명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 들어날 수 있도록 하느님께 협조하거나 아니면 하느님의 능력을 보면서도 비아냥 거리거나 그 중에 하나를 우리는 선택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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