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달봉신부의 사순 제 1 주일 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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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현 [dalbong6] 쪽지 캡슐

2004-03-01 ㅣ No.2522

주일날 강론입니다. 바로 올렸어야 되는 데, 주일날 무지 바쁜 관계로 이제 올립니다.

 

그 날 복음은 루가복음 4장 1절에서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이었고요. 내용은 여러분들이 너무나도 잘 아시는 예수님의 광야에서의 유혹입니다. 그 전문은 이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요르단강에서 성령을 가득히 받고 돌아 오신 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셔서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사십 일이 지났을 때에는 몹시 허기지셨다.   그 때에 악마가 예수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하여 보시오" 하고 꾀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를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잠깐 사이에 세상의 모든 왕국을 보여 주며   다시 말하였다. "저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줄 수 있소.   만일 당신이 내 앞에 엎드려 절만 하면 모두가 당신의 것이 될 것이요."   예수께서는 악마에게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다시 악마는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 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당신의 천사들을 시켜 너를 받들게 하시리라’ 고 기록되어 있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또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손으로 너를 받들게 하시리라’ 고 기록되어 있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 는 말씀이 성서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악마는 이렇게 여러 가지로 유혹해 본 끝에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를 떠나 갔다.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재의 수요일로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인류 구원을 위해 수난을 당하시고, 마침내 죽으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하면서 회개와 보속의 삶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여 다가올 부활 축제를 잘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제 1독서에 나오는 신명기 본문은 이스라엘이 첫 수확을 야훼께 봉헌한 후 읊던 신앙고백문입니다. 여기에는 야훼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야훼는 이스라엘이 떠돌아다니던 아람인이었을 때에 땅과 자녀들을 주고, 이집트에서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해 주었으며, 후에 억압받고 신음하게 되자 노예생활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신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 곧 고통과 고난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느님,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그냥 넘기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고통과 고난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하느님을 더 잘 이해하고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순시기를 하느님을 잘 만날 수 있는 은총의 시기라 합니다.

 

  사순절의 주제는 뭐니뭐니해도 광야와 고통입니다. 사순절이라는 단어가 40일을 가리키고 있고, 성서에서 40일은 광야에서의 기간, 곧 고통의 기간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랬듯이 예수님에게도 광야는 기도의 땅이요, 시험과 유혹의 터였습니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 이제 막 본격적으로 사명 수행을 시작해야 할 예수님은 그에 앞서 40일 동안의 광야 생활에 들어갑니다. 성부 하느님과의 온전한 일치를 확인함으로써 고난의 장정을 떠나는데 필요한 정신무장을 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이때 유혹하는 자, 곧 악마가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가지 유혹을 들이켜 보면서 우리는 세 가지 ’신앙이 아닌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신앙이란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돌로 빵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곧 신앙이란 돌로 빵을 만듦으로써 증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신앙이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 신앙이란 그럴싸한 데에 절을 하는 게 아닙니다. 곧 신앙이란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이득을 챙기거나 권력으로 남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는 것입니다. 셋째 신앙이란 하느님을 시험하는 게 아닙니다. 곧 하느님은 의심이나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목숨을 걸고 믿어야 하는 분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 주신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병자들을 치유하였으니 병자들이 없는 세상을 만든 것은 아니었고,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을 베풀었으나 기아문제를 해결하지도 않았으며, 변두리 인생들을 특별히 사랑하셨으나 그들만을 위해서 어떤 특별한 사업을 벌이지 않았으며,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기적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들어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적을 통해 당신을 배척하는 이들에게 업적을 보여주고자 하는 유혹에 시달렸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려고 하셨지 당신의 업적을 남기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보여준 것은 신뢰에 찬 ’빈마음’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에 나타나는 그분의 전적인 수동성은 아버지께 의탁하는 자, 곧 믿는 자가 어디까지 가야 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분이 받았던 유혹이 달콤한 데 비해 그가 남긴 말씀은 결코 달콤하지 않습니다. 유혹의 달콤함을 넘어서는 신뢰의 경지를 알았기에 달콤하지 않은 말씀을 남겼는 지 모릅니다. ’믿는 구석’이 없고서야 어떻게 자신을 버릴 수 있겠으며, 빈 마음이 없이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나’가 있는 자리를 ’그분’이 채우도록 맡기지 않고서야 어떻게 나의 십자가를 식별할 수 있겠으며, 전적인 신뢰 없이 어떻게 그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는가? 신앙이란 기여하는 바 없이 다 이루는 일이고, 고통의 역사를 회상하면서도 베푸시는 하느님을 고백하는 일이며, 자신을 비워내고 ’그분’으로 채우려는 몸짓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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