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달봉 신부의 아주 긴 오늘의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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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현 [dalbong6] 쪽지 캡슐

2004-03-01 ㅣ No.2523

오늘 사순 제1주간 월요일 복음은 복음도 길고 긴 복음에 대한 묵상도 깁니다. 읽으시는 데 많은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리라 사료됩니다. 그렇다고 중도에서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읽어주세요.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 25장 31절에서 46절까지의 말씀으로 그 내용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최후심판의 내용입니다. 그 전문은 이렇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게 되면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 놓고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그들을 갈라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자리잡게 할 것이다.

그때에 그 임금은 자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 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이 말을 듣고 의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또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 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또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이 말을 듣고 그들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언제 나그네 되시고 헐벗으셨으며, 또 언제 병드시고 감옥에 갇히셨기에 저희가 모른 체하고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러면 임금은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이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쫓겨날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재의 수요일 복음말씀을 통해 하느님께 지은 죄와 잘못을 기워갚고 참회하기 위해 세 가지 행동을 실천하라는 요구를 들었습니다. 그 세가지 행동이란 기도와 단식과 자선입니다. 또한 기도와 단식과 자선은 사순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행동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참된 단식에 대한 복음 말씀은 지난 금요일날 들었고요. 오늘은 참된 자선에 대한 복음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면 내일은 기도에 대한 복음말씀을 듣게 되겠지요.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자선은 바로 예수님을 대하듯 가장 보잘 것 없는 형제에게 해 주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두 부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버지께 복을 받는 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 저주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최후심판 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몇 가지를 묵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한테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즉 나의 생명, 시간, 능력 이웃 등은 모두 주인이신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것들을 잘 관리하는 것뿐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나서 인간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 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창세 1,28)라고 말입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모든 것을 잘 관리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이 인간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이 창조하시어 인간에게 맡긴 모든 것을 잘 관리하여 번성하게 만드는 것은 복을 받을 일입니다. 인간은 창조주가 아니며 창조주는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것이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창조주는 하느님이시지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과 인간과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마찬가지로 복을 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시지 내가 아닙니다. 나는 다만 하느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나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맡겨진 가장 작은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것뿐입니다. “너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것이 하느님이 나에게 명령하신 것이고 그 명령을 따라 내가 받은 것을 거저 나누어 주는 것이 오늘 나의 사명이요 복을 받는 일입니다.

 

둘째, 하느님이 최후 심판을 내리실 때 사용한 동사는 현재이지만 심판을 내리시는 내용은 과거 동사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심판 하실 때에는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는 현재 동사이고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라고 그가 한 행동은 모두 과거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후심판은 최후 심판 때에 가서 즉석으로 이루워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그가 살았던 행적을 가지고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후 심판은 먼 미래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현재 내가 사용하는 시간을 통해서 이루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매 순간은 곧 나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실하게 살아야 할 시간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 오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를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삶을 가장 보잘것 없는 이들, 굶주린 이들, 목말라하는 이들, 헐벗은 이들, 병든 이들, 감옥에 갇힌 이들을 위해 써야합니다. 하느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미래에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받아야 할 하느님의 축복은 미래에 받을 것이 아니라 오늘 받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오늘 복을 주시는 분이시지 마지막 날에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마지막 날에는 당신이 나에게 주셨던 그 복을 거두워 드리실 뿐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날에 가서 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것은 하느님께 달린 것이 아니라 나에게 달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시는 복을 오늘 내가 어떻게 사는 가에 따라서 받느냐 못 받느냐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느님이 주시는 축복을 잘 받아들여서 축복받는 삶을 살았으면 마지막 날에 가서 축복을 받을 것이고, 오늘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들이는 삶이 아니라 저주받는 삶을 살면 마지막 날에 가서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셋째,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삶은 어떤 삶이고 저주받는 사람의 삶은 어떤 삶인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하느님이 축복으로 주신 삶을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삶은 축복받은 삶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오늘 내가 복을 받는 삶이란 가장 작은 이들이 굶주려 있을 때에 먹을 것을 주는 것이요,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는 것이요, 헐벗은 이에게 입을 것을 주는 것이요, 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는 것이요, 감옥에 갇혀있는 이들을 찾아주는 것입니다.

 

반대로 저주받은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오늘 가장 작은 형제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는 것이요,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는 것이요, 이방인을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는 것이요, 헐벗을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지 않는 것이요, 병든 이나 감옥에 갇힌 이들을 돌보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즉 거저 받은 것을 거저 나누어 주지 않는 것이 저주 받은 삶이요, 거저 받은 것을 거저 나누어 주는 것이 복을 받는 삶입니다.

 

넷째, 내가 받은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할 가장 작은 이들이란 누구입니까? 가장 작은 이들이란 내가 하느님한테 받은 축복을 나누어 줄 대상입니다. 그 대상이 부자도 아니요,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도 아니요, 지식인도 아닙니다. 가장 작은 이란 내가 언제나 만날 수 있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무엇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그 어떤 댓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아무런 조건없이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나누어 주는 것을 겨우 받을 수 있을 정도의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장 작은 이들이란 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 나보다 더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현재 나의 상황이 어떻든 나는 가장 작은 이들보다는 나은 형편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주위에 그 어떤 사람도 나의 것을 나누어 주지 못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이들이 다 내가 나누어 주어야할 대상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생명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요 그것도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영원히 번성하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축복해주시고 그 축복으로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가장 보잘것 없는 이들에게 잘 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사람은 자기가 심는 것을 거둡니다. 심지 않고는 거둘 수가 없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두는 법입니다.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교황님이 전세계 신자들에게 보낸 사순 메시지에도 오늘 복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예수께서는 형제 가운데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곧 고통받는 사람, 가난한 사람,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사람, 이방인, 헐벗은 사람, 병자, 죄수들, 그리고 어린이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예수께 대한 우리의 태도가 드러난다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되는 것과 보잘것 없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 이 두 가지는 주님께서 우리 시대에 당신 제자들에게 되풀이하여 강조하시는 한결같은 가르침입니다. 자신을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낮추는 사람만이 형제자매 가운데서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을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특별히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이 사순시기에, 단식과 자선을 수행하는 이 시기에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이들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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