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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달봉신부의 조금 긴 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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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현 [dalbong6] 쪽지 캡슐

2004-04-10 ㅣ No.2594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성가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신비를 담아 노래합니다. 그 날은 기쁨과 환희가 드러난 밤, 시작의 밤입니다. 또한 부활 대축일 밤미사에서는 ‘오, 복된 탓이여’하며 세상의 죄가 씻겨진 밤, 아름다운 밤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밤, 사랑의 새 계명을 선포하신 이 밤, 역시 거룩한 밤, 아름다운 밤입니다. 성탄이 ‘시작’이 축성된 시작의 밤이고 부활이 ‘끝’을 축성한 완성의 밤이라면, 성 목요일 최후 만찬의 밤은 ‘매일’을 축성하는 과정의 밤입니다. 매일 우리가 거행하며 살아갈 사랑의 잔치인 미사 전례가 생긴 밤이며, 매일을 살아가는 일상의 대원칙이 그 날 명백히 선언되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원칙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발씻김 예식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성체성사와 신품성사를 세우신 것을 기념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제 당신 생명을 바쳐 완성하려고 하는 사랑을 표현하는 최고의 행동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이 행동하고 살아야 하는 모범과 기초를 제공합니다. “주요 선생인 내가 여러분의 발을 씻었다면 여러분도 마땅히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발을 씻겨줌에서 구체화되고 제자들 사이에 같은 사랑으로 새겨진 새로운 관계를 창조합니다. 이제 제자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불릴 것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제자라고 불릴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 건너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때는 수난과 죽음으로 부활이라는 영광에 가까이 간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아버지께로 가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죄인들을 위하여, 악의 어둠을 비추기 위하여 세상에 파견되셨고, 파견의 임무를 완수하시자 그 분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십니다.

 

수난과 죽음을 통한 이 옮겨감은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사랑의 극치를 증거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의 사랑과 세상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과 같은 강한 사랑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최고 표현은 친구들을 위해 생명을 다하는 희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으로 이 신적 사랑의 증거를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에서 발을 닦아주는 행위는 노예가 하는 행위였습니다.

 

당연히 노예가 아닌 사람들은 타인의 발을 씻어주는 일을 아주 치욕적인 일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발을 씻어주기 위해서는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나의 자존심을 기쁘게 낮출 수 있어야만 허리를 숙일 수 있으며 발을 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치욕스러운 일을 그것도 다른 자리가 아닌 제자들과의 마지막 이별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손수 모범을 보이셨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엄숙한 예수님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처럼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지 않으면 우리가 성체성사에 참여해서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해도 결코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 복음사가는 성체성사의 근본 정신은 더러운 발까지도 기꺼이 씻어줄 수 있는 조건없는 사랑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가장 저를 힘들기 했던 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십자가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사제가 되면서 늘상 가난한 사람들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사제가 되겠다고 십자가의 길을 충실히 따르는 사제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으나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가고 있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조롱과 침뱉음과 채찍질로 점철된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 대접받고 칭찬받고 인정받는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신자들에게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강변하면서도 제 자신 십자가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율배반적인 모습으로 사순을 보낸다는 것이 너무나도 힘이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사랑보다는 의무를 앞세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은 어느 순간 대접받고 칭찬을 받으려는 자기애에 물들었었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해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해 흘릴 내 피의 잔이다. 너희는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날마다 그렇게 주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미사를 봉헌해 왔지만 주님의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 모시고 나도 이웃을 위해 제물이 되는 삶을 살수 있기를 희망했지만, 다른 사람의 발을 닦으려는 노력없이 내 발만 내밀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저 부끄럽고 참담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미사 강론을 준비하면서 저는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런 저의 상태와는 무관하게 여전히 예수님께서는 그런 저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그 길을 걸어가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지금은 비록 부족하고 어리석고 당신 사랑을 온전히 느끼지 못 하고 있지만 용기를 내라고 말입니다. 제 발을 닦아 주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용기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이제 당신이 떠나면 스승없이 홀로 남겨질 제자들의 운명을 말입니다. 당신 때문에 세상의 반대에 부딪치고 손가락질과 박해를 받게 될 제자의 운명을 말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런 어려움과 박해 앞에서 당신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랑의 체험을 주시고 싶으셨습니다. 스승인 당신이 자신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체험 말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발을 씻어주실 때 온 몸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정말 이분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구나하는 사실을 발을 씻겨주는 그 순간 느꼈을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백마디 말보다도 발을 씻고 계시는 그 행위를 통해 스승 예수의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박해를 피해 도망다닐 때마다, 예수님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최후의 만찬 때의 자신들의 발을 씻어주셨던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부족하지만 우리는 허점투성이이고 죄 투성이이지만 잊지마셔야 합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이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곤 그 분은 그 자리에서 성찬례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를 예수님의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미사에 참례할 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그 사랑을 기억하도록 해야하겠습니다.

 

교우 여러분, 힘들고 지칠 때,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느끼실 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실 때, 오늘 이 밤을 기억하십시요. 나의 발을 씻겨주고 계시는 예수님의 그 사랑을 기억하십시요. 그것만 잊지 않고 산다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어떤 고난도 예수님과 함께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밤 그래서 참으로 은혜로운 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을 앞둔 이 밤 우리는 마냥 슬퍼만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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