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성토요일 파스카 성야 4/11

인쇄

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0-04-11 ㅣ No.4215

성토요일 파스카 성야 4/11

 

코로나 19로 말미암아 그동안 당연하고 기초적인 것으로 전제되던 것들이 하나둘씩 무너져 버렸습니다. 신자들이 매일 아침 미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되고, 그러다 보니 매일 미사로 시작하던 삶의 스타일과 문화가 깨져버렸습니다.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태 9,15)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잃어버린 두 달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삶의 외연으로 습관처럼 형식화된 신앙을 조금 더 본질적으로 내실화시켜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에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라고 말씀하셨고, 또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요한 4,23)라고 하신 말씀이 지금 이 시기에, 우리를 회개와 겉으로만이 아니라 내적으로 진실한 새로운 삶으로의 변화에 도전장을 내면서 초대합니다.

 

그런데 누가 새로워지고 싶지 않아서, 새로워지지 않으려고 하는가?’ 누가 새로워질 줄 몰라서 그렇게 마치 형식적이고 고착적인 신앙생활의 양태를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나 새로워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새로워진다는 것이 가끔은 우리에게 부담을 주고 주저하게 만드는 면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손해를 보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입니다. ‘주님 말씀을 따르다가 나만 손해 보고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결국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남 좋은 일만 벌려놓고 바보되는 것은 아닐까?’ 한계에 도전하는 삶, 한계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죽음에 직면하여, 죽으면 끝나는 것인데 왜 새삼 죽으려고 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우리를 과거로 회귀하게 하고 주저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 대한 심각하고도 본질적인 도전이자 증명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면 끝날 줄 알고 죽여 없앴는데, 죽지 않고, 아니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서 계속 현존할 뿐만 아니라 그 제자들을 통해 교회를 통해 더 커지고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예수님의 부활을 알고 믿는 것이 우리가 죄를 끊어버리고 새로워질 만한 충분한 동기는 되지만, 행동으로까지 온전히 옮길만한 힘이 되지 못함을 느낍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성의 제어능력과 의지만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갖게 해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잡혀가셔서 십자가형에 처해졌을 때, 자신들도 끌려가서 같은 꼴을 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워서 다락방에 숨어있었습니다. 그 때 주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고, 부활을 체험하게 해주셨습니다.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기쁨에 가득 차기는 하였어도 기쁨은 잠시뿐이었고 유다인들의 죽음의 위협 앞에서 섣불리 나설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려오셔서 두려움에 떨면서 자기 한 목숨 건지는 것마저 두려워하던 모습을 변화시켜, 과감하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게 됩니다. “기도를 마치자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사도 4,31)

 

오늘 파스카 성야 미사의 구약의 일곱 개 독서 중에 일곱 번째 독서인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오며 위로마저 줍니다. 나약하고 부족하여 스스로는 자신을 온전히 변화시키지 못하는 우리에게 마치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우리를 주님 사랑의 힘으로 휘감아 변화시켜 주시리라는 약속을 전해주시는 것만 같습니다. “나는 너희를 민족들에게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너희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에제 36,24-28)

 

외적인 시간과 공간이 사라져버린 지금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하는 이 시기에, 우리를 참 생명의 말씀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그 생명의 빛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한 주 하느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들으며, 부활하신 주 에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새로운 생명의 길로 비춰주시는 새로운 빛에 대한 희망을 가져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9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