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대림 제2주간 수요일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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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0-12-01 ㅣ No.4468

대림 제2주간 수요일 ’20/12/09

 

얼핏 생각해 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도 힘들지 않은 데,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부담이 살짝 듭니다.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구별되는 것이 아닌 데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부담이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세상살이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과 환난에 지친 우리들에게 안식을 주시겠다고 하니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머님 품 같은 주 예수님의 품안에 잠길 때 우리가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편안합니다. 살면서 가끔, 잠시 잠깐 만이라도 세상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뒤로 하고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닌 우리에게 주 예수님의 오늘 말씀은 큰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부담과 망설임이 동반합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님께서 그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또 다른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29) 예수님께서 주시는 안식은 그냥 거져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건네주시는 멍에를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멍에는 내 멍에이기도 하고 다른 이의 멍에이기도 하고 주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하시기 위해 짊어지셔야 하는 그 멍에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멍에라면 좋겠지만, 이 멍에는 누군가는 짊어져야 하는 멍에이므로 내가 벗어난다고 해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6.25 동란이 터졌을 때 태어났으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지금같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하다가 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면, 고생은커녕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십자가는 우리의 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30) 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우리 구원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시는 것이 받아들이기 힘겹고 어려우셨지만, 그 길이 인류 구원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구원의 길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시고 또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을 확실히 알고 믿으셨기에 그 길을 걸어가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세상 구원을 위한 희생이 나를 구원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 텐데도,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선뜻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 부모인데도 불구하고, 배우자나 이웃 친지들을 위해서, 심지어는 자기 자신이 좀 더 거룩하게 변화되는 데는, 어딘지 모르게 아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며 망설여지니 말입니다. 아깝고 아쉬운 생각이 들면 이미 십자가에서 멀어지고 벌써 피하는 것인가 봅니다. 의인도 아닌 죄인인 우리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그 사랑을 믿고 따를 용기와 힘을 청해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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