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22/02/10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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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2-02 ㅣ No.4927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22/02/10 목요일

 

새해 벽두부터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우리의 주회합과 활동이 더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마치 마귀의 발악과도 같은 어두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는, 누가 우리를 향해 기도하고 활동한다고 박해를 하기 때문에, 주회합과 활동을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두려움과 어둠에 빠져 위축되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의 어떤 집으로 몰래 들어가셨는데,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알고 쫓아와 예수님께 고쳐 달라고 청합니다.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의 어떤 부인이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마르 7,26) 라고 거절하십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28) 라고 애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의 간절하고도 겸손하며 굳건한 믿음을 보시고는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29) 라고 격려하십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고 전합니다.

 

우리가 지금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성모님께 기도한다고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습니다. 카톡으로 주회합을 한다고 해서 코로나19에 전염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두려움과 주저함에 빠져 우리의 믿음과 선교 열정이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적 게으름 때문입니다. 비대면으로 기도한다고 기도가 기도가 아닌 것으로 평가절하되지 않고, 비대면으로 회합한다고 주회합이 주회합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거의 방식에만 사로잡혀 과거의 그 방식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기도도 주회합도 비대면 활동도 스스로 포기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에 가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바치는 신상을 바라보고는, 그 신과 연관하여 예수님을 선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사도 17,23)

 

우리가 처한 상황과 처지가 어떠하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어떠하든, 우리가 기도하고 선교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기도와 선교를 하고 싶으냐?’ 또는 하고 싶지 않으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환경과 처지에서 어떻게 하면 복음을 선교할 수 있을까?’하고 연구하고 모색하여 기도와 선교의 열정을 불태우시면 좋겠습니다.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처럼 간절하면서도 겸손하고 굳건한 믿음으로 청하고 비대면이라도 활동하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와 염원과 활동들을 다 모아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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