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그래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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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영 [vkddms] 쪽지 캡슐

2011-09-19 ㅣ No.10915

 
 
 
내가 최초로 성당 문을 두드렸을 때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따뜻한 손길을 만날 수 없는 절망 그 자체에 놓여 있을 때였다.

세상은 온통 캄캄했고, 짙은 어둠은 손톱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했다. 남편은 중환자실에 누워 20여 일을 혼수상태로 지냈고, 나는 더 이상은 낮아질 수 없는 가난과 초라한 몰골로 중환자실을 지키며 가슴을 떨었다. 이제 막 세 살이 된 막내와 그 언니들은 똑같이 수두를 앓고 있었다. 이런 잔인한 비극 속에서 나로 하여금 성당 문을 열게 한 분은 누구일까.

누가 불렀다고 하면 ‘오만’이고, 내가 직접 찾아갔다고 하면 ‘착각’일 것이다. 그즈음의 나는 세상의 질긴 외로움에 몸을 떨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그 현실을 극복하기 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찰나였다. 누구에게도 내 아픔을 털어놓고 의논할 수가 없었다.

외롭고 무섭고, 또 외롭고 무서웠던 그 시절. 나는 성당 문을 처음으로 열고 들어선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성모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던 그 백지상태의 종교적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성당을 찾아가게 된 걸까. 아직도 예수님은 말씀이 없으시고, 나도 정확하게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난생 처음으로 성당 문을 열었을 때, 저 벽에 분명한 모습으로 계셨던 예수님의 고상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내 심장은 왜 그렇게 빨리 뛰었으며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을까. 나는 분명 자서전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에 그 기록을 몇 줄 기록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온전한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벽에 걸린 예수님과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그래 나는 분명 지금도 기억한다. ‘덜덜덜’ 온 몸이 떨렸던 그 순간을. 그리고 나는 들었다. 예수님의 목소리는 지금도 분명하게 들린다. ‘그래, 다 안다.’

‘오! 예수님. 어찌하여 저를 아십니까? 어찌하여 제 마음을 다 아십니까? 당신은 도대체 누구시기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초라하고 불쌍한 여자의 마음을 다 안다고 하십니까?’ 나는 ‘으악!’ 소리치며 울기 시작했고, 내 입에서 처음으로 ‘주님!’이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를 안다는 그 분의 옷자락을 붙들고 통곡하고 싶었다.

‘아무도 제 마음을 몰라주는데요. 그 누구도 제 마음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데요. 이미 제 마음은 저 차가운 얼음 바닥에 떨어져 으깨지고 박살났는데요. 주님이 안다니요…’ 나는 온 몸으로 울부짖었다. 내 몸의 물이란 물은 모두 흘러나왔다. 두세 시간의 통곡 끝에 무거웠던 내 몸은 가벼워졌다. 아, 그날의 예수님…. 그 시절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돈이 아닌, 절실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슬픔의 공유자였던 것이다.

당시 나는 사람들의 위로가 나를 더 초라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위로하는 그들의 눈은 나를 아래로 보고 있었고, 때로는 나를 비웃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마음은 이미 어긋난 상태였고, 누군가의 위로는 곧 나를 멸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마음의 질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흔히 사람이 약해지면 그렇게 된다. 남의 진심을 받아낼 줄을 모른다. 그리하여 더욱 외로워지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나는 울었고, 눈물의 홍수 잔치를 이뤘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 하나 ‘그래, 다 안다’를 가슴에 비밀처럼 움켜쥐고 그 어려운 시기를 이겨냈다. 넘어질 때도 그 말씀을 부여잡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 말씀을 부둥켜안았다. 죽을 정도로 외로울 때도, 그 말씀 하나를 온 몸으로 안고 살았다. 그 눈물, 그 말씀 덕분이었을까. 남편은 오랜 혼수상태에서 깨어났고, 나는 그분의 발끝을 따르는 신자가 됐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분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도, 그분의 말씀을 제대로 따르는 동지도 되어 드리지 못하고 있다.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인데도 언제나 내 일에 분주하느라 그분을 알지 못하고, 그분을 외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수렁 속에서 건져 주신 분을 모른척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주님. 저는 압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지금도 듣고 있고, 당시 가슴 철렁 내려앉던 당신의 크신 위로를 압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변하지 않았고, 주님도 그대로이십니다. 이렇게 감히 말하는 것이 제 신앙입니다.’         - 시인 신달자-
 
 
 
카페-가톨릭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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