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짝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의 고민을 들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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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연 [wjyhs2] 쪽지 캡슐

2003-06-08 ㅣ No.2149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거든 성령께 기도하십시오."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20,23)

 

성령강림대축일인 오늘(6/8)의 복음은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성령 안에서 그동안 등진 사람과 화해하도록 촉구하십니다.

 

지금으로부터 113년전 한국에서 국가적인 박해가 사라지고 다만 지방적인 박해만 이따끔씩 일어났던 개항기, 강원도 어떤 산골의 교우에게 일어난 실화입니다.

 

한 착한 농부가 오래 전부터 천주교를 믿고자 하였으나 사나운 그의 아내가 항상 그것을 방해했습니다. 어느날 농부는 교우들에게로 몰래 찾아가서 열심히 교리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사나운 아내가 자기 남편을 찾아와서 멱살을 잡고 칼을 들이대면서 당장 이혼을 하든지 아니면 배교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했습니다. 불쌍한 남편은 교우들에게 이내 돌아오겠노라고 약속한 후 아내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심술궂은 아내는 승리감에 도취해서 의기양양했지만,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삿자리에 누워서 꼼짝 못하고 남편이 매일같이 그녀의 영적, 육적 쾌유를 위해 바치는 기도문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쯤되면 왠만한 여성이면 남편의 정성에 감동될 만도 하지만 이 여인은 더욱 완고한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남편의 간호와 기도 덕분에 자리에서 일어난 여인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유명한 점장이의 힘을 빌려 주술로 남편을 굴복시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예 남편이 아침, 저녁으로 바치는 그 기도문을 바치지 못하도록 벙어리가 되게 해달라고 점장이에게 부탁했던 것입니다. 점장이가 말했습니다.

 

"그래, 남편이 천주학쟁이가 되지 못하도록 벙어리로 만들고 싶단 말인가요?"

"그렇소"

"오! 그렇다면 아예 그런 생각하지 말아요"

 

점장이가 갑자기 엄숙하고 신비스런 태도를 취하면서 말했습니다.

 

"천주학쟁들의 교리는 하늘의 큰 신령의 교린데, 이 신령이 내려오시는 때면 언제나 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 두시오. 이 큰 신령님을 화내게 하지 않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큰 일이 일어날거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여인이 벌벌 떨면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냐구요?" 당신 남편 뿐아니라 당신과 당신 아이들, 아니 온 집안이 모두 천주교인이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일납니다"

 

마귀가 본의 아니게 복음의 선교사가 되었으니

과연 그후에 온 집안이 교리를 배우고 있다는 소식을 오늘 들었습니다.(*1890년 꾸데르 신부의 서한에서)

 

아무리 화해하고 싶어도 아무리 용서하고 싶어도 도무지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가슴에 맺힌 응어리들이 있다면, 성령께 한번 매달려보자. 성령께서 마귀들의 수하인 점장이마저 일시적으로 마음을 바꾸어먹게 하셨으니, 우리 보통사람들의 경우야 그렇게 하기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닐까?

 

그러나 한편으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발하게 역사하시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나운 아내에게 온갖 구타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그 아내를 위해 정성된 간호와 기도를 줄기차게 바쳐 주었던 그 착한 농부처럼 우리 자신을 비우고 겸손과 인내로 상대방을 따뜻이 대해주어야 할 것이다.  속에서는 천불이 부글부글 솟아나겠지만, 이를 악물고서 말이다.

 

그리고 사람을 벌하는 일은 하느님의 권능에 매인 것이니, 우리는 다만 그 원수를 위해서 더욱 큰 축복을 내려주시도록 하느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그가 파멸을 당할 운명이라면 우리의 축복기도는 그의 머리에 쌓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거든 성령께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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