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겨울나그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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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석 [ryu4337] 쪽지 캡슐

2011-02-17 ㅣ No.10826

술김에 내뱉은 나의 말은 민주와 규천이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어 그들과의 관계가

매우 소원해졌고 그래서인지 둘의 만남이 수년간 지속됐어도 그들의 얼굴을 본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가끔 규천이와 전화통화할때 민주와 헤어지는 것이 좋을것같다는 나의 의견을 피력하면

그는 수긍을 하면서도 어찌할바를 모르는 듯 난감한 반응을 보이곤했다.

 

서울로 발령을 받아 이사준비에 여념이 없던 93 12….

갑작스런 규천이의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술집안으로 들아서니 침통한 표정을 한채

홀로 막걸리를 마시고 있고  테이블위에는 서너개의 막걸리병이 어지럽게 뒹글었다.

무슨 일이야???”

민주랑 방금전에 헤어졌어요!!여기서..”

저런!!”

컽으로는 안됐다는 표정을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차라리 잘됐다는 맘으로 규천이에게

막걸리를 따라주자  그는 거푸 들이킨후 담배 한 개비를 입에문후 연기를 허공에

내뿜었다.

! 저는 어떡해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혀꼬부라지는 목소리로 울어대는 규천이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도

현미때와는 달리 안타깝거나 슬픈 감정이 별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규천씨!! 전화왔읍니다!”

!전화???”

전혀 뜻밖의 전화에 고개를 갸웃거리고있는데 카운터옆의 공중전화부스에서 규천이가

수화기에 입을 바짝대고 절규하듯 소리질렀다.

민주야!!민주야!!”

쟤가 왜저러지

뭔가 일이 생긴것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쪽으로 향하려는데 규천이가 뛰어와

다급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 돈좀 빌려줘!!”

무슨일이야?!!”

민주한테 가봐야겠어!!”

안돼!!가지마!!지금 이순간만 견디면…”

!!헤어지더라도 사람은 살리고....비명을 지르고 쓰러졌어요!!”

비명?!!”

더 이상은 말릴수가 없었다.아니 말렸어도 규천이는 갔을것이다.

하는수없이 그와 택시를 타고 대전시 궁동의 민주의 자취방으로 향했고 도착하자마자

방문을 수차례 두들겼으나 불은 켜져있는채 기척이 전혀 없었다.

창문을 통해서 넘어갈수 밖에…”

2미터 정도의 높이의 환기창을 통하여 방안으로 들어서니 대여섯개의 소주병이 어지럽게

굴러다녔고 수개의 맥주병은 심하게 파손되어 대자로 누워있는 그녀의 주위로 촘촘히  

퍼져있었고 자해를 했는지 손목에는 일자로 길게 늘어진 상처자국과  방구석구석에는

피자욱이 선명하게 묻어있었다.

이게 웬일이야!!!

규천아!! 얼릉 병원으로…”

엄청난 충격에 그자리에 멈춰 꼼짝도 못하는 사이 규천이는 눈물을 흘리며 민주를

일으켜 흔들었으나 그녀는 고개를 축 늘어 뜨린채 미동도 하지않았고 의식도 없었다.

민주를 업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하는 규천이의 뒷모습을 본후 그녀의 방안으로 들어가

깨진 병조각등을 정리하는데 눈물범벅이 얼룩으로 변해버린 일기장이 눈에 띄웠다.

규천씨와 헤어진 이세상은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한숨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두사람의 사랑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그리고 내가 상관할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맘이 약하고 쉽게 방황하는 규천이에 비해 민주의 성격은 너무 강하다.

두사람이 결혼하면 규천이는 방황하게되고 좌절하게 된다.

그것이 우려되서 반대했는데 이제는 그런 나의 소신이 막을 내려야 할때가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갑갑한 마음에 호주머니의 담배갑에 저절로 손이 갔다.

민주의 방을 나서면서 내리고 싶지않지만 인정할수 밖에 없는 결론이 맘을 무겁게

짓눌렀다.

두사람은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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