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주일(나해) 요한 1,35-42; ’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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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01-09 ㅣ No.4507

연중 제2주일(나해) 요한 1,35-42; ’21/01/17

 

 

 

 

 

세상에는 그야말로 만물이 있지만, 그것들이 다 나에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고 다 내 마음에 드는 것도 압니다. 심지어는 제 눈의 안경이라고, 어떤 때는 내 눈에 내가 관심이 있는 것만 보입니다. 제가 주일학교 교사일 때 동네를 돌아다니면, 여기저기 여름성경학교 현수막만 보였습니다. 한창 성당에서 어린이집을 지을 때는 여기저기 어린이집만 보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36) 제자 둘은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는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이렇게 요한의 제자 둘이 예수님을 따라가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찾느냐?”(37) 그들이 답합니다. “라삐, 스승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38) 왜 그 제자들은 예수님께 어디에 묵고 계시는지를 물었을까? 예수님께서 묵고 계신 곳이 얼마짜리 집일지 알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그 집에 가서 어떻게 차리고 사는지를 발견하려고 했을까? 아니면, 누구랑 사는지 알려고 했을까? 스승이 예수님을 가리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까지 했으니, 그 집에 가면 무엇인가 새롭고 신기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가보고 싶었을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39) 라고 허락하십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39)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두 제자 중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 형 시몬을 만나서는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41) 라고 전합니다. 도대체 안드레아가 예수님과 함께 묵으면서 무엇을 보았을까? 함께 지내면 그 삶의 좋은 면 나쁜 면 등 진면목이 다 드러납니다. 아마도 안드레아와 또 다른 제자는 유명한 강사나 부자들이나 권력가들이 가진 겉모습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보다,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예수님의 인성과 인격, 생각과 사상, 행동과 태도, 삶의 습관 등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살아있는 진실. 예수님의 신성을 발견하였나 봅니다.

 

잠시 이 시점에서, 안드레아와 또 다른 제자가 요한의 옆에 서 있다가, 요한이 하느님의 어린양이라 지칭하는 말을 듣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간 순간을 연상하며, 우리의 삶을 성찰해 봅니다.

요즘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인지?

요즘 나는 어떤 관심을 가지고 무엇을 바라보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안드레아가 예수님과 함께 하루를 보내면서 예수님을 체험한 순간을 연상하며, 내 신앙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언제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었는지?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예수님을 발견하고 체험했는지?

그 때 만난 예수님은 내게 누구셨는지?

 

안드레아가 자기 형 시몬에게 가서,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하며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신앙고백삼아 전하는 순간을 연상하며, 오늘 이 자리에 서서 내 신앙의 본질과 진실을 생각해 봅니다.

내가 신앙의 여러 덕목 중에 가장 귀하게 여기고, 꼭 지키려는 덕목은 무엇인지?

누가 뭐라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내 신앙의 진실은 무엇인지?

무엇이 어떤 점이 내 신앙을 확고히 잡고 있는가?

 

이제 다시 예수님께 다가가 서 봅시다.

안드레아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십니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42) 요한 복음사가는 게파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라고 알려줍니다.

 

내가 주 예수님을 처음 찾았을 때, 내가 주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의 그 기분 그 상황을 떠올려 봅니다.

그 때 주 예수님께서 나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셨는지?

그리고 그 날 이후 내 삶 속에 각인된 그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그분은 내게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내게 누구이십니까?

나는 그분을 누구라고 부릅니까?

 

예수님께서 시몬을 처음 부르시며 그에게 게파라는 이름을 지어 주시는 순간을 연상하며, 주 예수님께서 오늘 나에게 어떤 이름을 지어주실지 상상해 봅시다. 오늘의 내 삶, 내 성격, 내 인성, 내 역할, 내 신앙의 상태와 정도를 고려해 볼 때, 주 예수님께서는 내 이름에 추가하여 나를 누구라고 부르시며 어떤 새로운 소명을 주시리라고 여기는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와서 보시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1981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전국 신앙대회의 표어였습니다. 그날 사제단의 입장 때 하늘에 십자가 형상의 구름이 떳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시대에 우리 교회는 이 사회에 어떻게 비췄을까요? 그 날 김수환 추기경님은 합동 참회예절을 하면서 보속으로 미사를 드리고 있는 광장의 쓰레기를 다 집어가라고 하셨고, 80여만명이 참석한 대회가 끝난 후 청소하시는 분들이 감탄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한국사회에 비쳐진 우리 천주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 하신 주님 말씀이 무색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헐뜯고 짓밟는 세상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희생봉사하는 교회정신이 사그라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하신 주님 말씀이 무색하게, 점점 더 부유해지고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서, 주님을 향한 영의 갈망과 비움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고,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루카 6,32-33) 하신 주님 말씀이 무색하게, 교인들끼리만 방문하고 거래하여 일종의 게토처럼 닫힌 조직을 형성하면서,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고자 헌신하신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천주교회 안으로만 가둬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우리 천주교회는 이 시대 이 땅에 무엇을 드러낼 수 있을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부활하신 주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전하고 우리가 전한 그 말씀을 우리 삶으로 이루고 채워가며 복음화되는 모습.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서로 아끼고 덮어주고 감싸주며 용서하고, 끌어주고 함께하고 밀어주며 복음의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모습.

 

주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 주변의 이웃들, 특별히 제일 어려운 형제자매들과 우리의 시간과 열정과 재물을 나누며 희생봉사하는 모습.

 

새해 새롭게 시작하는 주 예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서, 우리 신앙의 진실을 되새겨 보고, 오늘 내게 마주치는 세상에서, 주님 말씀에서 길을 찾고 양식을 얻어 힘차게 걸어갑시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1코린 6,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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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주일 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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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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