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고통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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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영 [vkddms] 쪽지 캡슐

2011-01-10 ㅣ No.10791

 '고통'은 인간이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 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우리는 그것을 원치 않치만 그것이 전혀 없이는 우리가 결코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고통을 겪지 않아서 미숙한 사람을 '온실의 화초'에 비유합니다. 그런가하면, 풍상을 겪으며 그것을 이겨낸 사람을 '거목'이라든가, 혹은 그 강인한 생명력을 빗대어 '잡초'라 하기도 합니다.

깊은 풍상을 겪어내고 그것으로 성숙한 인간은 누구에게나 신뢰와 경외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들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하기 전에 벌써 사람들은 그들의 눈빛에서 그것을 읽스비다.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자신의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수행자 또는 수도자들은 일부러 고행을 자처해서 합니다. 그들은 고통이 '흙덩이 속의 보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진주를 품으려는 조개'처럼, 상처입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가슴에는 이미 영롱한 진주가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주가 그토록 귀한 것은 '상처'를 기꺼이 끌어안는 조개가 그렇게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고통'을 겪듯이 가정도 고통을 겪습니다. 알고 보면, '힘든 일 하나업슨 가정은 없다' 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그토록 사랑하시다면서, 그들의 혼인을 성사로까지 높여 축복하시면서 왜 그들 가정에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 걸까요?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사람을 보내시고, 그들이 잘 성장하여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처럼, 세상에 가정을 만드시는 것 역시 그 가정이 잘 성장하여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가정이 되기를 바라시기 때무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세상에 난 이유를 '성공해서 잘 살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삶처럼 결혼한 이유가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정은 이기적인 삶을 꾸려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항상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하지 않으면 우리의 결혼은 잘못된 것이다'는 결론을 내리고 맙니다.

 그들은 자신의 상황을 최대한 '온실'처럼 만들고자 합니다. 언제나 따뜻한 햇빛과 알맞은 온도와 적당한 수분이 보장된 상황을 만들려고 온힘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그 가정은 결코 '거목'으로는 자랄 수 없습니다. 아니 거목은 커녕 그들의 생명력은 들판의 잡초보다 보잘 것 없이 약할 것입니다. 그 온실의 환경이 조금이라도 변하는 순간, 바로 그들의 생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IMF라는 경제위기에서 그토록 많은 가정이 해체된 진정한 이유입니다. 그들의 가정은 '안정된 경제'라는 온실속에 화초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또 때로는 열린 온실문 사이로 날아들어온 해충이 순식가에 화초들을 병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시골에 살면서 병들어 죽는 잡초는 별로 본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애지중지 기르는 작물은 어쩌면 그렇게도 잘 병들어 죽는지요. 이것이, 현대의 모든 종류의 중독이나 정신적인 질병등으로 가정이 파탄이 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인간은 진정으로 탐구해야할 내며과 하느님과의 만남대신 오감을 자극하는 모든 매체와 유혹에 자신을 내맡겨 버렸습니다. TV한 시간 보기는 즐겁게 후딱 지나가지만, 기도 한 시간 하기는 지겹고 따분하기 때문입니다. 유혹은 순식가에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온 해충처럼 인간을 병들고 파괴시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망가지는 가정을 일깨우기 위해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그들에게 '돈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도록 하십니다.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그들의 '정신을 지탱하는 것' 이 진정 무엇인지를 생각하도록 하십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이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경험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을 돕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모든 고통중에 있는 가정은 그 고통의 경험을 통해, 다른 가정을 도우도록 훈련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그것을 이겨내면, 그들은 그와 같은 다른 가정을 훌륭히 도울 수 있습니다. 경제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가정이 그 과정을 통해서 깨달은 것은 또 그와 같은 다른 가정이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족의 알콜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가정 또한 그것을 이겨내면 그 경험이 같은 처지의 다른 가정을 돕는데 반드시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 고통을 이겨내라. 너희 가정은 그 경험으로 다른 가정을 도울 수 있다. 그러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중에 우리를 위로하기 위한 모든 방법과 힘을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께 그것을 얻기 위해 손 내밀기만을 기다리십니다. 자신의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하느님께 손내밀줄 아는 가정은 이미 그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저능하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실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알고 깨닫고 그분께 온전히 맡길 때라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정말 힘들다'고 수없이 뇌이면서도, 마음으론'아직은 내 힘으로 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 저는 정말 제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할때, 그 분은 비로소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왜냐면, 그렇지 않고는 아직도 내가 했다고 생각할 거니까요.

 모든 가정은 또 하나의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입니다. 그들처럼 우리도 세상에서 '빛이요 소금이 도라'고, 또 하나의 '구원자 가정'이 되라고 불리움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가정에 그 거룩한 성가정 처럼 고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은 얼마나 고통받은 가정입니까. 사랑하는 외아들의 처참한 죽음을 눈앞에 본 마리아는 실로'고통의 어머니' 였습니다. 그에 비한다면, 우리들이 말하는 '내 가정'의 어려움은 얼마나 '엄살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고통으로 성화된 가정'을 원하십니다. 그 경험으로 다른 가정을 도와줄 수 있는 너그러운 가정을 끊임없이 찾으십니다. 자신의 고통에서 기를 쓰고 벗어나, 다시금 인간적인 행복을 찾으려다 절망에 이르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신, 자신의 고통을 기꺼이 끌어안아 인간적인 행복을 버리고 하느님안에서 희망을 찾는 가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하느님안에서 새로운 가정으로 태어나는 '성화의 길'을 걷습니다.

 지금 우리 가정의 고통,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입니까?.

그 과정을 무사히 넘긴 당신의 가정은 장차 다른 가정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이제 '내 가정만의 행복'을 넘어서 '하느님의 모든 가정의 행복'을 위한 초대로 그대의 가정의 고통을 끌언안는 것은,어쩌면 우리 삶의 가장 아름다운 '마니피캇'이 아닐지요?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잘은 몰라도 하느님은 언제나 이렇게 일하십니다.

이것이 당신 아들의 '고통' 이라는 희생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이것만이 유일한 '나누는 사랑'의 방식이라고 그분은 당신 아들을 통해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사명을, 우리는 우리 개인의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정'을 통해 또다시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가정에 그토록 반드시 '고통'이 없지 않은 이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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