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곡성당 자유게시판

김대건, 최양업 신부님의 발자취를 따라(2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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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연 [wjyhs2] 쪽지 캡슐

2007-08-24 ㅣ No.8061

 
지난 광복절 전후하여 열심한 가톨릭 신자분이 운영하는 여행사를 통해서 4박5일간의 일정으로 중국 길림성 일대를  가족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속칭 "만주"라고 하는 역사용어는 중국의 동북3성(=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을 통틀어 일컫는 것이지요. 그 넓은 만주벌판을 우리 교회의 두 선구자 신부님이 열심히 걸어서 또 뜀박질하면서 누비고 다니셨습니다. 
 
 
삼성산에 계신 세분 프랑스 성직자가 순교하신 기해박해(=1839년) 이후 국내에는 성직자가 안계셨습니다.  이에 마카오에서 신학공부를 하시던 김대건, 최양업 두 분 신학생이 만주 땅 소팔가자 교우촌으로 옮겨와서 신학공부를 계속하시면서, 동시에 선교사가 국내로 다시 입국할 통로를 개척하고자 그 머나먼 길을 직접 도보로 답사하셨던 것입니다. 
 
 
두분 신부님의 2,000리 도보여행의 출발지이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이름을 따서 이곳 소팔가자의 중국인 신자들이 명명했다는 "김대건로"입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런 이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 도로를 따라 걸었던 저희 순례자들의 감사하고도 서글픈 현실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70년전 기해박해 후 압록강을 건너 의주로 통하던 기존의 "밀사 길"이 엄중한 감시로 힘들어지자,  김대건 신부님은 아직 학사 때이던 1843년 초에, 최양업 신부님은 부제 때이던 1846년 초에, 각각 소팔가자에서 약 1,500~2,000 여리나 떨어진 두만강 어귀까지 황량한 만주벌판, 얼음과 눈으로 덮힌 그 험난하고 거치른 땅을 씩씩하게 걸어 가셨습니다. 

 
그 옛날 두 분 신부님께서는 2,000리 여정 중에 백두산 일대의 밀림을 지나면서 호랑이, 승냥이 등 산짐승의 울부짖음을 들으면서, 또 잦은 도적떼와 실랑이를 벌이면서, 그렇게 그렇게 두만강 하구의 훈춘까지 가셔서 그곳에서 함경도 경원으로 남몰래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우리 일행은 그 옛날 두 분의 위대한 발자취를 따라서, 장춘시에서 소팔가자 교우촌, 백두산 부근의 무송현을 거쳐 그리고 마침내 백두산 정상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우리를 반겨준 것은 백두산의 그 유명한 호랑이가 아니라, 당장에 공룡이라도 뛰쳐 나올 것 같은 험난하고 기괴한 바위들과 대협곡이었습니다.
 
마치 쥬라기 공원처럼 그곳을 지나가는 널판통로를 따라 우리는 조심스레 한발짝씩 전진하였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지정해준 버스에 올라 해발 2,400고지에서 내린 우리들은 1,236계단으로 된 등반길에 임했습니다.  부슬비가 내리고 사방에 안개가 자욱한 그 길을 따라 1시간 후 산정에 도착했으나, 천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온 국민의 한결같은 염원인 평화통일과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며, 약 2시간의 기다림 끝에 우리는 마침내 하느님의 큰 축복이 눈 앞에 펼쳐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순간 답답한 가슴이 한 순간에 탁 트이면서 웅대하고도 장쾌한 기상이 온 천지에 가득찼습니다.
 
 
 
 
  
 
그 옛날 우리네 선조들은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며 이곳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펼쳤으니, 그 유명한 안중근(토마) 의사의 3차례 의병전쟁이 벌어졌던 무대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흐르는 강이 셋 있으니, 동으로 두만강, 서로 압록강, 그리고 북으로 송화강인데, 우리 일행은 그 송화강 가에 위치한 길림시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한국의 수원교구와 결연을 맺고 한국인 신학생이 두 명이나 파견된 길림 신학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학원은 당국의 비밀스런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었는데, 김대건 신부님의 정신을 본받아 불굴의 의지로 신학생을 양성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신학교를 찾아간 날은 마침 수원교구가 사제서품식을 거행하는 날이었는데다가, 성 김대건 신부님이 약 160년전(=1845년)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한국교회 최초의 방인사제로 서품되신 날인 8월17일이었습니다.  그곳에 모신 김대건 성인 신부님의 귀한 유해에 입을 맞추며, 우리는 모두 감격에 겨워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루르드의 성모동굴 앞에서 잠시 멈추어선 우리들은 중국 교회의 발전과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영화 "마지막 황제"로 유명한 만주 황제의 찬란했던 궁궐에 들러
부귀영화를 꿈꾸는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느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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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만 느껴졌던 중국 순례길이 
아쉬움을 남긴 채 끝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순례는 계속될 것입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잠시 와서 머물다가
영원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순례자의 길입니다.
 
 
불완전한 죄인들이
완전하신 하느님의 영광을 찾아서
 
끊임없이 헤쳐 나아가야 할
고해의 바닷길
 
미완성의 그 순례길을 즐겁고도 힘차게 걸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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