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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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0-06-26 ㅣ No.4302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6/30

 

언젠가 한 번 모래 위에 새겨진 두 개의 발자욱을 그린 그림을 본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작은 내 발자욱이고 다른 하나는 에수님의 발자욱입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늘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시는 주 예수님의 모습을 주제로 한 그림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에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시는데,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마태 8,24)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24)라는 성서 표현입니다. 이 성서의 표현이 우리를 되새기게 합니다. 예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는 늘 예수님을 의식하고 살지 않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그분이 주무시고 계신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그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너무나 당황하고 그 문제를 풀려고만 하는 스스로의 의지에 빠져서 정작 필요할 때 그리고 예수님께 청해야 할 때는 그분을 찾아내지 못하고, 청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해 이 성서기사에서는 다행스러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내고 청합니다.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구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25)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는 풍랑과 파도를 걷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자들에게 호통을 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26) 그리고 제자들에게 보란 듯이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26)라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믿음이 약하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

늘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호들갑을 떠는 것도 모자라 예수님을 깨우고 예수님께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해 달라고 매달렸다는 점이 문제였을까? ‘어련히 알아서 해 주실 텐데 그렇게 난리를 쳤다.’고 나무라시는 것일까?

 

아니면 왜 겁을 내느냐?라고 성서에 표기된 글자 그대로, 어려움을 닥쳐도,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께 의탁하여 주님과 함께 천천히 풀어나가지 못하고, 마치 주님이 우리 곁에 없는 양, 우리와 함께하셔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양, 겁을 내고 동분서주하고 방황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불현듯 떠오르는 위협감 등으로 스스로 위축되고 거룩한 주님의 말씀을 실현하기를 두려워하고 망설이고 주저하는 우리의 미약한 믿음 생활에서 일어나 풍랑과 파도를 제어하는 주님을 바라봅시다. 우리 생명뿐만 아니라 온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구하고자 하신다는 믿음으로, 신중하지만 과감하고 지혜롭게 복음을 실현해 나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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